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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아톤>의 감동과 남겨진 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5. 03:26

영화 <말아톤>의 감동과 남겨진 일

자폐 관련 제도적 변화와 사회적 관심 필요

05.04.20 06:30 ㅣ최종 업데이트 05.04.20 10:49 김헌식 (codess)

명칭에 대한 논란이 있는 장애인의 날, 관련 영화 이야기를 한다면 단연 <말아톤>일 것이다. 자폐 증상을 가진 사람에 대한 감동스런 인식 전환을 시켜준 영화 <말아톤>.

그 문화적 감동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게 된 지 오래다. 수백만 사람들이 공유한 영화의 감동은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관심과 북돋음, 그리고 초원이가 인간 한계로 보였던 것을 상대로 벌이는 도전에서 비롯된다.

초원이는 마라톤을 통해 인내와 절제, 끈기 등 세상과 맞닿아 자신을 열어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초원이는 작은 가능성이 풀어놓는 큰 울림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초원이에게 마라톤은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통로였다. 자기 발견과, 세상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세상과 자신의 소통 행위 그 자체이기도 했다. 점차 자신이 스스로 열림을 선택할 수 있는 여력을 마라톤을 통해 체득해 나간다.

자폐아 초원이에게 어머니와 마라톤은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길 자체였다. 다만, 모성주의와 마라톤에 대한 극찬이 궁극적인 현실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자폐증이 정상인과 같다는 인식의 전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식만 전화한다고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공간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면 현실은 그렇게 따뜻하지만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원점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과 가족이다. 현실에서 영화처럼 어머니나 마라톤에만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면 가혹할 것이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만으로 자폐증 문제가 해결된다는 오해를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영화 <마라톤>의 감동이 다시 현실적 수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벅차기 때문에 사회적인 지지와 제도, 방안의 모색이 중요하다.

제도적 개입, 정책 프로그램과 예산집행이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자폐아는 약 4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20%는 매우 심한 중증이라고 한다. 대략 5천~6천명은 매우 심한 중증이어서 깊이 있는 치료를 받거나 기관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자폐아는 증상 초기 하루 8시간, 일주일에 40~50시간 2년 간 집중적인 지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폐아 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자폐아인지조차 발견하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기에 자폐아 증상을 짐작한다고 해도 상담 한번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이루어져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겪게 되는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나 가족들의 보살핌, 마라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게 여실하다. 초기에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된다면 <말아톤>같은 영화가 나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당사자들의 고통은 훨씬 덜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와 방안을 모색하고 반영해야 하는 정책 영역이나 정치권에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작년 연말 '중증 자폐아 치료모델 개발' 에 필요한 1억8천만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예산안이 국회 보건복지 상임위를 통과된 적이 있다. 시범적이지만 자폐 어린이의 자해행위 치료와 전문치료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3개년 프로그램 운영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것이었다.

액수로 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의미가 대단해서 전국의 자폐아 가족들과 관련 단체 전문가들은 기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어렵게 올린 예산안은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사라져 버렸다.

영화 <말아톤>의 감동이 너무 커서 일까? 너무 커서 마라톤과 어머니의 사랑만 있으면 자폐아 문제가 해결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영화 <말아톤>이 제기해놓은 문제의식에 대해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국회 차원에서 영화 단체 관람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정 안되면 <부모님전상서>의 준이라도 한번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문화적 감동을 제도적으로 실현시키는 마라톤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아직 영화의 감동이 제도적 감동으로 이어지기엔 방바닥은 차갑다. 장애인의 날인 오늘도 차가운 현실에 많은 이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나약하지 않다. 이 순간에도 자폐 혹은 몸의 불편함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노력은 제도개선과 변화의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자활 복지 문화의 개선을 끊임없이 진화시켜온 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지지가 그들이 일어서는데 든든한 주춧돌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 : 영화 <말아톤>의 감동과 남겨진 일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