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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그 어떤 것은 어떻게 만드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5. 03:30

인생의 그 어떤 것은 어떻게 만드나

영화 <애니씽 엘스 anything else)>를 보고

김헌식 (codess)

인생은 그만 그만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지만, 각자의 삶은 예상보다는 알 수 없는 어떤 것들로 곧잘 채워진다. 선한 사람들은 그 선함 때문에 그 어떤 것을 놓치고는 한다. 선한 사람들은 대개 인내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그것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우왕좌왕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기도 한다.

우디 알렌(도벨 역)은 영화 <애니씽 엘스>(anything else)에서 매니저와 여자 친구 문제에 정신과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제리 포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태초부터 겁먹고 불행했지, 죽음과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 때문에 목사와 주술사가 있었고 오늘날에는 정신과 의사들이 있어. 그들은 항상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도움이 안 되어 왔어. 현재의 삶은 그냥 삶 자체이기 때문이지.”

또 이렇게 말한다.

“정신과 의사를 신처럼 받들지만 정신과 의사는 아무런 말도 못해, 신이 죽은 것처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우리는 두려워하게 만들어진 거야. 그러나 아무도 너를 대신할 수 없어. 네가 서바이벌 키드를 만들어야 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그러면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니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도벨은 자학하거나 더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필요없다고 한다.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이니 말이다. 따라서 자신이 부족하고, 무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말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도벨은 포크에게 계속 캘리포니아로 새로운 코미디 대본 일을 하러가자는 제안을 하지만, 포크는 여자친구와 현재 매니저가 걸려 주저하던 참이었다. 포크는 매니저나 여자친구의 행동이 불합리하고 문제가 있어도 그냥 참으려고만 한다. 그리고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도벨의 말은 미래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이나 불안에 안절부절해 하지 말고 남의 말에도 좌지우지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현재의 삶에 맞서 나가라는 말일까? 마치 구체적으로는 말할 수는 없지만, 삶에서 불현듯 마주치게 되는 어떤 것과 같다. 에니씽 엘스!

그럼 그렇게 충고하는 도벨은 어떻게 행동할까?

우디 알렌(도벨)은 포크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던 중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한다. 그러나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데 마침 차 한 대가 빠져나간다. 한 5분 동안 기다리는데 앞차가 빠져나가자, 잽싸게 뒤에 있던 녹색차가 들이밀어 차지한다. 도벨은 차에서 내려 그 녹색 차에 달려든다. 그러나 차에서는 거구의 흑인 둘이 나와 오히려 도벨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아무 말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두 사람. 포크는 그 둘은 힘이 있고 우리는 없으니 물러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도벨에게 말한다. 그리고는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글 쓰는 힘으로 흑인들을 신랄하게 꼬집자고 한다.

정신과 의사나 목사, 카운슬러는 어떻게 이야기 할까? 아마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용서하고 관용해야 오히려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할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아마도 그러한 말에 따를 것이다. 그러나 도벨은 차를 돌려 그 자리로 가서는 철근으로 녹색 차의 유리와 전조등을 몽땅 깨버린다. 포트는 밤에 그날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도벨이 격분하는 미치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그를 이상하게도 존경하게 되었다. 나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깡패니까. 그러나 그는 불공평한 것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저항했다. 그렇게 저항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는다.

“‘노’라고 말할 자유를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도벨은 나찌가 인류를 벌준다면서 사라지게 하고 정당화 한다면 이는 엄청난 범죄가 된다고 했다. 반면 도벨은 나찌가 아니다.”

포크의 글대로 도벨도 일어난 일을 떨치지 못하고 담고 있다가 다시 되돌아가 차를 부수었다. 스스로 도벨은 자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정신과 의사나 목사의 말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한 말들을 벗어버리고 말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도벨도 착한 사람이다. 불의에 참지 못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스스로 부담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불의에 참지 못하는 마음의 부담 때문에 일이 벌어진다.

속도 위반에 걸렸는데 경찰에게 일방적으로 맞자. 도벨은 때린 경찰 중 한 명을 밤에 찾아가 총으로 쏴버린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사실인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도벨은 포크와 같이 가지 못했고 혼자 포크는 떠나 혼자 독립을 해야 했다. 그것이 도벨이 목표로 삼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면서.

도벨의 말은 여운을 하나 더 던지면서 흐른다.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하지 말 것 할 것이라면서 요모조모 이야기 할 것이네. 그럼 자네는 단지 ‘네, 좋은 말이네요’ 하면서 응수하게. 그리고 물러나서 결정은 자네가 하는 거야”

포크와 택시 기사의 동의대로 삶은 별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딱 뿌러지게 말할 수는 없는 어떤 것과 같다. 에니씽 엘스!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갈 때 그 어떤 것이 된다.

영화 <레이>에서 레이에게 주는 어머니의 말은 뻔해 보이는 삶에 대응해서 다른 그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와 연결된다. 곧 장님이 될, 뻔한 불행의 삶이 펼쳐질 레이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네가 장님이 된다 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으니 울지 마라, 울음을 그쳐, 이제 첫째, 네가 할 일을 알려 준다. 두 번째, 그것을 너는 따라 해 보아라. 세 번째, 너는 그것을 따라하지 말고 혼자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기 때문이야!”

그리고는 넘어져 도와 달라는 말을 하는 레이의 절박한 모습을 보고도 어머니는 애써 모른척 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듣고 움직이고자 노력했고 스스로 설 수 있었다. "스스로"에서 어떤 무엇이 일어난다. 스스로 레이가 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에 그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