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미물들도 자신의 공은 내세우지 않는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2. 3. 07:05

-<조선 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를 읽고

 

하찮은 사물에서도 수기치인의 철학을 읽어내는 조선 선비의 맑은 신독의 정신과 행동 양식이 돋보인다. 하찮은 사물이란 정말 하찮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여길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울타리, 부엌, 방, 온돌. 선반, 마루, 섬돌, 지게문, 바라지창, 벽, 창문, 서가, 문, 길, 평상, 삿자리, 처마, 굴뚝 등등.

가시나무 울타리를 보고는 절망 속에 심는 희망을 생각하고, 온돌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선반에서는 겸손의 철학을 모색하며 대야 에서도 가득 차면 넘치리라는 지혜를 읽어 들인다. 마루는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공간임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낙천당이다. 바라지창 에서는 비움과 채움을, 창에서는 소통과 균형의 미학을 느끼려 한다. 허리띠를 통해 긴장과 해이의 중요성을, 빗을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라고 보는가 하면, 베개를 성실한 자기반성이라는 키워드로 읽는 것은 이채롭다. 또한 젓가락에서는 둘이 하나 되는 비결을 논한다. 섬돌은 역시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올라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모든 사물들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위하고 자신은 그것을 묵묵하게 받혀주고 드러내지 않는다. 요즘말로 하면 1인자가 되려는 모습보다는 2인자로 남아 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나서지 않으려는 철학과 혜안을 지닌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세상을 변화시킨다. 솥을 예로 들어보자.

- 김정국(金正國, 1485~1541)

현(鉉)이 가로로 걸쳐 있고

다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여기에 잘 놓여져 있으며

그 용도는 물건을 변혁하는 것

기울어지면 잘못되어

솥 안의 음식이 엎어지나니

너의 몸을 진중히 하여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라

-<구방심>에서(이성호 옮김)

"솥의 용도는 물건을 변혁하는 것이니, 날고기를 변하여 익게 하고, 단단한 것을 바꾸어 부드럽게 한다."<이천역전伊川易傳>의 정괘(鼎卦)에 나오는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2인자 리더십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자신의 안에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변화시킨다. 이를 위해서는 겸양과 포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선반은 어떤가. 기준이 말했듯이 유종판(有綜板)이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아서 제 몸을 보존하고 아래로 임하여 받아들이니 그 공이 성대하다." 라고 했다.

정공(定公)도 "교만하고서 망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驕而不亡者 未之有也 교이불망자 미지유야)"라고 했다. 곧 교만을 경계한 말이다. 삶은 언제나 부드러워야 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고 거꾸로 그것이 살아있다는 징표다. 굳은 것은 죽은 것이요 부드러운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이는 유연성과 포용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살아있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살게 만들기에 천하의 으뜸 지혜가 된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머물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게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강한 것을 지배한다."

2인자의 겸양에는 반드시 집착에서 자유로운 태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인지 노자는 "공(功)이 이루어지면 그 속에 살 생각을 마라.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야 한다." 라고 했다. 항아리, 대야, 술잔, 사발을 볼 때도 시경에서 말한 만족의 혜안을 생각할 수 있다. "가득차면 곧 상함을 부르고 겸손하면 곧 이로움을 받는다. (書經, 滿則招損 謙則受益 만즉초손 겸즉수익)"

송곳이나 칼로 쉽게 망할수있는 것은 이러한 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만 지팡이와 같이 지조가 있는 상태에서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좋을 것이다. 지팡이도 너무 딱딱하면 부러진다.

하찮을 것 같은 미물과 사물에서 지혜를 탐구하는 것은 모두 맹자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 아니겠는가.

"너에게서 나간 것이 너에게로 돌아온다."(孟子, 出乎爾者 反乎爾 출호이자 반호이)


글: 김헌식(교보문고 북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