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짬뽕은 중국 음식인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2. 3. 06:59



음식에도 족보가 있다

‘생명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생명이다. 움직임은 생명의 징표이다. 그러나 생명체만이 움직일까. 움직이면 생명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할 때는 더욱 연원과 계보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지구상에 어느 날 갑자기 현재의 모습으로 떨어진 존재는 없겠다. 진화론을 따르든 그렇지 않든 현존재 이전의 존재를 인간은 조상이라고 부르며 조상의 계보를 기록한 것을 족보라고 한다. 인간에게만 조상이나 계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개나 고양이에게도 조상이 있고 계보가 있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고 정립해내지 못했을 뿐이다. 생물체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의 산물도 연원과 계보가 있고 그것을 학자들은 변천사로 정리하기도 한다.

우리가 날마다 섭취하는 음식도 연원과 계보는 인식을 하지 못했을 뿐, 그것은 분명 존재했다. 주영하의 『차폰, 잔폰, 짬폰』은 동아시아 음식의 역사를 추적한 책으로 일종의 음식 족보를 탐색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음식 여행 동기를 자극하는 동아시아 근대시기의 음식교류사와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 결국 이 책의 관점은 음식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동의한다면, 음식의 독자적 기원을 고집하는 행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놓치지 않고 항상 생각해야 할 화두가 있다. ‘음식의 변천과 새로운 탄생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이 화두의 답은 우선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음식은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다른 사회에 전파되거나 수용되기 쉽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은 언제든지 주변으로 퍼지고, 그것은 현지에 맞게 재가공 되거나 다른 음식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음식에서 역사의 증거를 발견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도드라지게 재인식하게 되는 것은 음식은 그 자체로 존재하거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문화기호론보다는 문화유물론의 관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즉, 단순히 음식 기호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물적 토대의 상태와 변화에 따라 음식의 탄생과 변화, 소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음식문화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를 분석의 담론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이 때문에 제기된다.

예컨대, 중일 전쟁 당시 청군의 면(麵) 비상식량이 일본에 들어가면서 라멘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전쟁과 음식문화의 변동을 생각하게 한다. 이후 일본의 라멘이 한국에서 라면으로 변천되고, 그 맛이 매콤하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 속에서 정책적 지원까지도 받게 되었다. 이 같은 음식문화의 변화는 단순히 자장면이 중국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다는 식의 음식의 재탄생과 역수출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차원에서 음식은 민간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규정되고, 뒷받침을 받으면서 다른 사회와 국가에게 결합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는 한식의 세계화와 같은 정책적 프로젝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폰, 잔폰, 짬뽕 그리고 제국 이데올로기

음식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시키는 사람들도 사회와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장면이 중국에서 이주한 화교가 중국의 면과 장 문화를 한국식으로 재탄생 시켰듯 차폰이 시나우동(支那うどん)을 거쳐 잔폰으로, 잔폰이 짬뽕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행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동아시아의 격변기 속에서 전쟁과 침략 그리고 경제적 변동의 와중에 음식을 움직이게 했다. 차폰이 짬뽕이 되기까지 여기에도 전쟁과 국가주의가 개입되어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1930년대 침략한 지역에 잔폰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륙의 공산화라는 화교들의 무역업을 불가능하게 했고, 그들은 중국집을 개점하면서 호구지책을 삼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장면과 짬뽕은 탄생하게 되었고 하나의 음식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음식문화였다.

자장면을 두고 국가주의가 대결하듯이 국가주의는 하나의 통합된 음식 문화를 성립시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며 다른 음식 정체성을 파괴한다. 그것이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맞고 있는 위기이다. 상대적으로 중화주의의 부흥은 생각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획일화된 음식을 탄생, 확장시키고 있다. 소수 민족의 음식문화에 위기의식은 다른 한편으로 세계화 시대에 다양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소수 음식에게도 치명적이다. 국가주의와 음식의 상관성은 외국의 일만은 아니다. 제주도의 음식이 외부의 음식유입으로 정체성을 잃거나 박제화 되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와 일본에 편입된 섬들의 음식운명이 닮았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가고시마 특히 아마미 군도에서 벌어져온 제국주의와 국가주의의 양상은 음식의 변화에 강제적 주입을 낳기도 해서 국가권력과 제도 그리고 음식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주체들을 도출시키기도 한다.

독창성은 곧 상품화의 과정이다

음식의 독창성과 전통성의 부각은 경제 이데올로기가 결합된 국가주의와 밀접해졌다. 물론 처음에는 경제적 사회적 변화와 맞물리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음식은 그 조상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현재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다. 독창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변용 자체가 하나의 독창성이다. 이 때문에 자장면도 중국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중원에 널리 퍼진 면 문화도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끊임없이 차별화 하면서 음식을 움직이는 요인은 ‘상품화’의 과정이다. 비단 근대 자본주의 구조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시장이 존재하는 인류의 공간에서는 언제나 있어온 일이다.

상품화의 과정에서 음식은 다른 독창성을 확보하거나 그러한 독창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게 된다. 일상생활에 산재하던 음식이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는 상품화가 필수적이다. 이는 떡볶이나 비빔밥의 사례에서도 나타났다. 궁중에서 먹던 담백한 고급 음식 떡볶이는 널리 알려지지 않고, 한국전쟁 이후 고추장에 버무린 인스턴트 방식의 떡볶이가 크게 확산되면 떡볶이의 아이콘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비빔밥도 여러 가지 기원설이 있고 연고를 주장하지만 결국 1960년대 서울에서 전주비빔밥이 판매되면서 그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곱돌을 만들어 비빔밥을 만들어낸 창조력은 다시금 전주비빔밥의 상품성을 배가 시켰다.

키포인트는 그것이 국가제도와 결합하는 것이다. 한류도 그렇거니와 세계화의 상품 경쟁 주의에서 각 국가와 민족은 자신들의 음식이 가지는 고유성을 경제적 가치와 연결시키면서 음식전쟁이 격화되어 왔다. 민족주의나 국가이데올로기가 당위적이고도 원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국가 브랜드화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의 획일성과 무차별성에 대한 반격은 로컬푸드 운동으로 격화되고 있어, 다양성의 음식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왜 ‘맛’을 필요로 하는가

무엇보다 음식의 변동에서 최종 결정권자들은 생산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는 이들이다. 음식에 대한 관심과 선호의 변화를 짚어보는 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면서 음식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준거점을 마련해주는 준다. 이점은 ‘한국의 음식이 본래 매웠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한국음식의 세계화에 김치와 비빔밥, 떡볶이, 불고기 같은 음식은 외국인들에게 매운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갈수록 매운 맛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불닭, 홍초, 땡초 등 매운 닭볶음, 불타는 삼겹살, 고추장삼겹살, 매운 갈비찜, 매운라면, 육개장 우동, 매운수제비, 고추자장, 땡초김밥, 매운 햄버거 등등. 사실 예전 한국의 김치는 그렇게 맵지 않았지만, 이른바 근대화를 겪으면서 매워졌다. 전통김치는 고추가 들어가도 오히려 담백했다. 나아가 전통 음식은 붉은 색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담백하던 일본의 라멘은 한국에서 매워졌다. 한국 음식이 맵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전통적인 것이 아니었고, 시골의 음식보다 도시에서 먹는 음식이 맵다. 결국 급격화,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겠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매운 음식을 찾고 갈수록 독해지고 있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매운 맛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일까?

우선, 매운 맛의 물리적 기능을 살펴보자. 통각 세포에서 매운맛을 인지하면 뇌에서 매운맛을 없애기 위한 반작용으로 엔돌핀을 분비한다. 따라서 분비된 엔돌핀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에서 좋아진 기분은 쾌감이다. 쾌감은 중독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매운 음식을 찾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반복된 학습에 따른 것이다. 매운맛에 의존하는 것은 대부분 맛도 그렇지만 심리적 쾌감에서 찾을 수 있고, 개인들의 인지여부와 관계없이 사회문화적 상황과 밀접하다. 세계적인 경제대국 한국은 어쩌면 매운 맛을 통해 이루었는지 모른다. 노동에 힘든 몸을 매운 맛으로 잊고 쌓인 스트레스도 매운 맛으로 털어버리려고 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서 바빠진 한국인들은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일상에서 매운 음식은 힘을 발휘하게 하는 원천이었다. 지금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바쁘다. 빨리 먹고 힘을 내서 일을 해야 한다.

요컨대, 매운 맛 음식은 한국의 전통성이라기보다는 근래의 상품화 경향이며,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사회 구조 환경의 개선 과제가 담겨 있다. 담백한 음식을 먹는 사회가 될 때 정말 안정되고 평안한 행복의 사회인지도 모른다.

글 : 김헌식 (문화평론가)

교보문고 북CEO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