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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엣 열풍, 예술계 대작 풍토에 답일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5. 23. 10:39

최근 방송가에는 듀엣 바람이 거세다. 크로스 콜라보가 듀엣의 형태로 가요계에 유행을 하더니 이제 방송 프로그램에 진출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새로운 장을 여는 진화의 끝판왕이라는 평가도 있다. 애초에 '판타스틱 듀오'나 '듀엣가요제'라는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계를 깨는 포맷이라서 주목을 받았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오디션 단계가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듀엣가요제'에 듀엣으로 출연한 산들과 조선영. MBC 듀엣가요제 화면 캡처
MBC 예능프로그램 '듀엣가요제'에 듀엣으로 출연한 산들과 조선영. MBC 듀엣가요제 화면 캡처

처음에는 스타탄생이라는 결과물을 지켜보기 위해 참여하는 맛이 있었지만, 스타탄생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디션 프로에서 주목하는 것은 갈수록 외모 등의 스타성에 치우칠 뿐 개성이나 스타일, 가창력 있는 가수들의 무대는 사라지게 했다. 또한 현역 가수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훈수나 두고 독설이나 뿜는 것은 뮤지션이 할 짓은 아니었다.

'판타스틱 듀오'나 '듀엣가요제'는 이미 이름을 얻은 스타 가수와 무명의 아마추어 가수가 같이 협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타 가수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을 듀엣공연 컨셉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의 역할도 같이 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전적으로 자신이 통제감을 반영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대신 누가 매니지먼트나 코칭을 해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이나 개념을 통해 무대를 꾸밀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물론, 스타와 같이 노래를 부르는 아마추어 가수들은 직접 무대 출연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프로들이 주지 못하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모습들을 가미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아마도 기존의 프로들만의 무대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소한 아마추어들과 같이 콜라보 무대를 갖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신인들은 스타의 도움으로 자신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된다. 스타뮤지션이 자신만 드러내거나 심사만 하고, 아마추어끼리 경연만 하는 음악 프로그램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외에도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래 경연 방식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 선보인 ‘노래의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주인공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었다. 완성된 노래를 잘 소화하거나 그 창작의 뜻에 부합할 때, 그 음원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기존의 음악 관련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형식이었다. 같은 노래라해도 누가 어떻게 부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형식을 통해서 노래를 창작한 사람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유명한 스타라고 해서 무조건 그 노래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작품을 잘 살리는 아티스트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흔히 겉으로 드러나는 아티스트들만이 중요하게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보이는 스타들만이 중요하게 선호되는 것이다. 한 곡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 오디션이나 경연 프로그램에도 매주마다 편곡작업을 하는 이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물론 그러한 편곡 작업 조차도 정당한 대가들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수많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는 리메이크 작업이나 편곡 작업들이 있는데 도대채 누가 했는지 그것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래를 부른 해당 가수가 잘한 것으로 그냥 평가되고 치부되는 경향만이 있을 뿐이다.

이번 조영남 사태로 불거진 대작이나 조수 개념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관행이라고 합리화할 수 없는 측면이 강했다. 이름이 있는 이들은 이름이 없는 이들의 도움이나 협력을 받고도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편취하는 행태들을 반복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비판조차 받지 않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조영남 사건이 일어난 초기부터 비등하게 제기되었던 것이다. 미술계에도 널리 있어 왔다. 대학가에서도 지도교수에 협력하는 학생들은 그 노고에도 불구하고 같이 참여한 작업 자체가 거세되는 것이 당연한 진리같이 받아들여진 채 계속 대작의 재생산이 이뤄졌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욱 십자 포화를 맞은 조영남 케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관행이라고 묵인되던 미술계의 조수와 협력 작업에 대한 부정적인 모순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는 계기 효과를 낳았다. 많은 기여를 함에도 불구하고 도제식 시스템이라는 이유로 합리화되었던 것을 개선해야할 명분과 이유를 충분히 드러내주었다.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음악계나 미술계에도 모두 마찬가지다.

어느 창작 영역을 막론하고 반드시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창작의 동기와 내적 인센티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예술가들은 돈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역할이란 자신을 넘어서서 실력있는 창작자들을 많은 이들에게 연결해주고 드러내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단체나 아프리카에 돈을 기부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듀엣가요제'같은 프로그램이 오디션 방식을 통해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이유이기도 하다 . 유명하다는 이유로 이름이 없는 이들을 착취하는 구조가 없을 때 대한민국은 좀 더 창조적인 사회가 될수 있으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 마찬가지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