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헌식(사회문화평론가, 중원대학교 특임교수,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한 제과업체가 전통 간식인 강정을 1982년에 출시한 적 있는데, 이 자사 제품을 새롭게 선보이며, 이를 이름하여 힙트레디션(Hip Tradition)이라고 내세웠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이렇게 과자에 이를 줄은 미처 몰랐다. 힙트레디션의 본격적인 부각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때문이었다. 방탄소년단 RM의 작업실에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포착되면서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품절 사태까지 빚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만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만이 아니라 백화점 팝업스토에서 선보인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도 1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인데 모두 판매되는 등 크게 주목을 받았다. 즉 단지 유명 연예인 때문에 이런 문화유산 굿즈가 판매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동조와 모방 효과가 아니라 20~30대에게 뭔가 소구하는 매력이나 가치가 있기에 이런 굿즈가 판매되는 셈이었다.
힙트레디션은 개성 있고 멋지다는 뜻의 힙(Hip)과 전통을 뜻하는 트레디션(Tradition)의 합성어로 전통적인 물품이나 사물이 크게 주목받거나 인기를 끄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유산이나 문화를 감성적으로 즐기고 이를 공유하거나 현시(顯示)하는 행동을 포함한다. 힙트레디션이라는 말이 회자하기 전에 여러 유사하거나 하위 개념들이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살피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원리나 코드를 정리해볼 수 있을 때, 미래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등장했던 아티젠은 '아티 제너레이션(Arty Generation)'의 약자인데, 상품에 예술이 더해진 아트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이른다. 특히, 전통 그림을 화장품이나 샴푸, 가전제품에 입히는 사례들이 있었다. 할머니 취향의 세대를 뜻하는 할매니얼은 음식에 연관되는데, 약과는 물론이고 고려 시대의 도넛으로 불리는 개성 주악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관련 기업은 인절미 막걸리, 흑임자 막걸리, 인절미/흑임자 초코파이 등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패션에서는 그래니룩(Granny Look)으로 불릴 수 있는 할미룩이 주목받기도 했다. 고궁 체험도 대표적인 힙트레디션이라고 할 수 있다. 고궁 체험에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창덕궁 달빛기행처럼 특정 궁 안의 체험을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예약과정에서 궁케팅 현상이 발생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체험 행사가 아니기에 더욱 절실하게 원하는 가치 부여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궁 체험의 또 다른 하나는 앞선 유료의 제한적 상품 체험이 아니라 개방적 체험이다. 대표적으로 한복을 입고 궁궐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현상을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복장인데, 자신의 존재가 좀 더 빛날 수 있는 컨셉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따라서 한복의 고증은 부차적이고 예쁘거나 화려해야 한다. 고궁 굿즈는 문화유산을 그대로 압축한 형태로 제작 판매되는데, 아티젠처럼 무늬나 디자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피규어처럼 대상 그 자체의 모습을 압축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전통시장 투어링이 해당할 수 있다.
힙트레디션이 일어나는 것은 정말 전통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증가한 것인지 곱씹어보게 된다. 곱씹어보지 않는다면, 자칫 뉴트로(Newtro) 현상을 복고(Retro)라고 혼동하는 기성세대의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 뉴트로 현상은 복고 스타일이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인데, 기성세대의 눈에는 복고의 요소로 보일 뿐이다. 이러한 면은 힙트레디션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대는 전통이나 옛것이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대는 청년 심리 차원에서 볼 때 이전 세대와 차별화시키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촌스럽다고 외면받은 것들에서 새롭게 가치를 찾아내면서 자신에게 이롭게 쓰임을 취하는 일은 낯설 수 없다. 여기에는 포용력과 수용력에 대한 현시의 심리도 있다. 젊은 세대에 대한 편견에 대한 저항도 있다. 젊은 세대는 낡은 것, 옛것을 싫어하고 신상만 선호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관념적 명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점이다. 예컨대, 할매니얼 음식을 선호하는 것은 자극적이지 않고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건강을 챙기면 이전 세대는 ‘엄살을 부린다, 유난을 떤다.’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 세대는 오히려 건강기능식품까지 더 소비하는 행태를 보이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헬시 플레저 현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예 맛이 없다면 손을 뻗지 않는다. 즉 어느 세대보다 실용적이고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이는 거꾸로 쓸데없는 허례허식이나 체면 의식이 덜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흘러간 과거의 인물이나 대상, 사물, 유산, 콘텐츠라고 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재해석하고 가치를 창조하면서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의 공동체, 문화 부족(cultural tribe)을 만들어간다는 점이 스마트모바일 시대에서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