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들어와도 개고생.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17. 09:43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개고생은 ‘어려운 일이나 고비가 닥쳐 톡톡히 겪는 고생’이다. 국어사전에 오른 말이니 엄홍길과 변우민의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는 심의를 통과했겠다. 불황 속에서 최소한 지출을 줄이려는 소비자 심리에 거꾸로 어필했다.

집의 의미는 복합적이다.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며, 익숙한 공간이나 전문영역을 포함한다. 조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나와바리(なわばり)는 줄을 쳐서 경계를 정하거나 건축 터에 줄을 쳐서 건물 위치를 정하는 것이다. 노름꾼·폭력배 등의 세력 범위, 세력권을 뜻하고 때로는 남의 침범·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영역, 전문 분야를 말한다. 또 집은 지역공동체나, 나라 혹은 국가와 같은 상징체계를 의미한다.

가수가 소설가가 되고, 배우가 화가로 등장하면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때론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자신의 집(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내에서만 활동하니 결과에 비해 덜 고생스럽다. 월드투어 취소로 연이은 소송을 당한 가수 비는 ‘집 나가 개고생’의 사례다. 조혜련은 어떤가. 일본에서 기미가요에 손뼉치고 웃음지은 장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국내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는 상황은 아예 없을 것이다. 역시 어쨌거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다. 김연아와 WBC 대표팀과 같이 집을 떠나서 해외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정말 개고생만 하다 돌아온다. 아니,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고봉준령에서 불귀의 객이 된 이들처럼 개고생만 하다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개고생할 때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개고생으로 만든 열매만 따먹으려는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고려대가 등교 한 번 하지 않은 김연아를 자신들이 키웠다고 홍보한 것도 그렇고, 한나라당이 야구선수건 피겨스케이팅 선수건 자신의 당리를 위한 홍보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도 그랬다. 이른바 ‘숟가락 수상 소감’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황정민의 겸손 멘트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말은 집안의 모순을 덮은 캐치프레이즈가 된다. 과연 집은 돌아갈 만한 곳인가. 해외로 조기 유학 갔다가 널뛰는 환율 때문에 개고생만 하다가 돌아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집)에 돌아와도 개고생이다. 이명박 정부가 교육지옥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3불‘(고교등급제·본고사제·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폐지와 특목고·자사고-명문대로 이어지는 학벌 터널의 쾌속질주는 생존을 막막하게 한다.

교육정책뿐 아니라 모든 정책이 약자와 서민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도록 만들고 있다. 집도 집 나름이다. 돌아오고 싶은 집, 나라를 만들어줘야 오고 싶다. 그래야 처음부터 개고생을 안 한다.


위클리 경향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