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역사를 자유자재로 픽션화하는 ´선덕여왕´의 비결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0. 25. 09:20

 

-역사적 사실, 역사적 맥락, 역사적 본질

드라마 <선덕여왕>은 기존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사실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실은 기존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위서 혐의를 받고 있는 <화랑세기>에만 등장한다. 또한 기존 정사에는 천명공주는 덕만의 언니가 아니라 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제24회에서 독화살을 맞고 죽었지만 사실은 행복하게 마쳤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덕만과 김춘추의 결집을 이끌어내기 위한 원한을 만들어 내려는지 독화살에 맞아 죽은 것으로 설정했다.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는 등장하지 않는다. 54년간 재위를 한 진평왕은 미실보다 일찍 죽는다. 진흥왕 때부터 젊음을 유지하던 미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54년간의 재위를 마치려는 진평왕보다 오래 사는 것으로 그려진다. 덕만이 젊은 나이에 여왕의 지위에 오른 것도 아니다. 학계에서 덕만은 50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낯설게 느끼지 않고 재밌게 보는 것일까. 물론 여기에는 탄탄한 이야기구조와 흥미로운 소재, 극적인 대결구도가 잘 짜여져 있기도 하지만, 다른 점이 작용하고 있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껏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실 자체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덕만이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고, 김유신이 가야계 유민으로 성장했다는 점, 그리고 김춘추와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후에 김유신과 김춘추가 삼국통일에서 큰 역할을 했으며, 신라의 화랑도 큰 기능을 했다는 것이 잘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어차피 미실이나 화랑세기의 내용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내용이기 때문에 미실이라는 가공의 인물과 대적하는 덕만과 주변의 행동은 허구다. 미실이 군사정변을 일으켰는지, 미실의 난이 실제로 있는 지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에 관해서는 역사적 상식에 되도록 어긋나지 않도록 했다.

즉 드라마 <선덕여왕>은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사실과 사실의 골간의 상상력으로 채우면서 대중적 흥미와 몰입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적 사실, 역사적 맥락, 역사적 본질간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창작한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 역사적 맥락, 역사적 본질간의 관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창작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있어왔다. 역사적 사실, 역사적 맥락, 역사적 본질간의 관계는 무엇일까?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은 실제 일어난 일을 말한다.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실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과거에 일어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대개 과거에 만들어 놓은 기존 기록물에 담겨있는 정보를 우리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식한다. 그 기록물을 실제 일어난 일과 다르게 기록해도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만 공론화된 절차를 거쳐 최대한 확증할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확증을 받았거나 받지 않은 사실이라 해도 기재 된 사실과 사실의 전후맥락에서 다른 의미들을 발견해 낼 수가 있다. 즉 이는 해석의 문제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해석이 이루어지며 그 해석은 아무리 객관성을 강조해도 주관적이다. 따라서 끊임없는 해석이 역사적 사실에 가해지면서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다.

이때 해석을 통해 사실과 사실사이의 이격을 발견해 내고 그 역사적 사실이 진정한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개연성을 확보하게 된다. 개연성은 당대의 관찰자가 아닌 바에야 항상 논증의 전제이다. 논거로 전제를 확증하려는 것이 사학이라면, 창작의 관점에서 작가적 상상력이 개입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사극 콘텐츠가 창출되는 계제가 비롯한다.

그런데 그 작가적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할 개연성은 무엇으로 담보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과 사실 그리고 그 맥락을 관통하는 것이 역사적 본질이자 진실이다. 그러한 역사적 본질과 진실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변화하거나 변화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역사적 보편성과 특수성이다. 인간 사회 혹은 인류가 갖는 항구적 가치에 부합하는가가 보편성에 해당한다. 역사적 본질은 인간사회의 변하지 않은 원칙과 가치(類的 가치)에서 일단 추출할 수 있다.

즉 역사적 본질은 인간의 본질이다. 역사는 인간의 행태 간의 교차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특수성인데 이는 공간적 시간적 특수성이 교차하며 존재한다. 원칙과 가치의 불변성이나 공통적 요소는 되도록 잘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해석하거나 받아들이는 양태는 분명 다를 수 있다. 즉, 고려 말의 상황을 바라보는 조선시대 지식인과 현대인은 분명 다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시공간적 차이는 역사적 해석을 다른 맥락으로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개의 사극은 독립예술영화가 아니라 대중문화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동시대인들이 인식하는 통념의 역사적 인식체계가 보편적 원칙과 가치에 공통적으로 일치하는가가 역사적 맥락의 해석에 부합하는 역사적 본질일 것이다. 따라서 사극은 아무리 그것이 사실에 바탕을 두었거나 그 사실에 상상력을 부여한다고 해도 이러한 보편성과 특수성을 관통하는 본질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상식적인 역사적 사실에는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기둥삼아 상상력을 배가 시키고 있다. 또한 역사적 맥락이나 본질을 다루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과 욕망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선악의 구도를 펼치고 있지만 미실은 권력가이면서도 인간적이며, 덕만은 왕을 꿈꾸지만 백성을 위한 군주를 지향한다.

미실은 현대인의 현실적 욕망을 보여주며, 덕만은 이상적 정치지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종 경제관련 현안들을 다루는 등장인물들의 대결구도는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관계없이 보편적인 관심사를 철학과 통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비록 두 여성이 왕의 자리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나 설득력 있는 근거,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 여성 군주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설득력을 높인다. 왕을 향한 두 여성은 단순히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경향을 대변한다.

하지만, 대중적 몰입이 반드시 모든 형상화와 픽션화를 정당화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뒤섞인 역사적 사실들은 분명 존재하고, 그것이 기존에 알려진 역사적 인식에 대해서 혼란을 줄 여지가 있다. 그것은 시청률과 바꾼 <선덕여왕>의 왜곡행위임에 분명하다. 그것을 최소화 하는 데에 매진해야 하는 것은 지상파 방송프로로는 당연한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