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아직도 유행가에 편견이 있으십니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2. 7. 6. 07:59

-김형수에세이 유행가들 리뷰.

 

사실 책을 접하고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이름 때문이었다. 저자는 민족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해왔고, 특히 5.18과 떼어낼 수 없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유행가라는 단어를 책에 턱 써놓고 있으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것도 편견이겠다. 세월이 흘러 이제 트로트도 지식인들의 입에서 자주 회자되거나 관련 책들이 집필되고 있을 만큼 문화적으로나 음악적인 인식이 바뀌었다. 사실 바뀌었다기보다는 본령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책의 필자도 트로트에 관한 소설까지 썼으니 이 책이 나올 만 했다. 민중문학에 애정이 있다면 민중이 사랑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처음에 가볍게 쓰는 듯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와중에 역시 저자는 유행가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은 대중가요를 다룬 책들 가운데 독특성이 있다. 대중가요에 관한 책들은 몇 가지 유형인데 그 하나는 장르별 음악 기교에 관한 책이거나 연대를 기준으로 사회학적인 관점의 평론물이다. 대개는 시를 분석하듯이 가사를 분석하는 유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은 에세이 글쓰기 방식으로 유행가를 분석하고 있는데 보통 음악 에세이는 대개 개인의 감상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매우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에 자칫 공감을 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매우 많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면, 그 주관적 세계관의 필치를 동의하기 때문에 독자의 확보는 어려움이 덜 할 것이다.

 

이 책은 에세이이기 때문에 자신의 내밀한 경험이 많이 버무려져 있기에 사회적이거나 평론적인 내용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역사적 화두와 시대의식을 적절하게 반영시키려고 노력한다. 주관성에 객관성을 견지하면서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넓히려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노래 경험이 있는 지는 서술하기 쉬워도 이 책처럼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곁들이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문학가이기 때문에 다양한 소설들이 노래의 배경과 메시지를 풍부하게 설명하는데 등장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점은 같은 노래라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어떻게 달리 목적적으로 활용되는가 하는 점이다. 마치 모디슈머(Modisumer) 현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부각되어 세계인의 먹을거리가 된 짜파구리같이. 예컨대 1930년대, ‘목포의 눈물은 호남 저항운동의 주제곡이 된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귀향자들이 심정을 대변한 박재홍의 유정천리는 유석 조병옥 박사를 위한 추모가로 마침내 이승만 독재의 숨통을 끊는 노래로 회자 된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다른 현미의 보고 싶은 얼굴은 중립화통일론자들들의 애창곡이 되기도 하며 무엇보다 3.15부정선거 뒤 국회의원 0원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는 4월 시인 신동엽 선생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장르적으로도 민요에 해당하는 포크송은 한국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노래 흐름을 만들어냈다. 노가바(노래가사바꾸기)도 한몫한다. 5.18 이후 늙은 군인의 노래는 투사의 노래로, 독재 정권이 군사 훈련을 위해 만든 노래 향토예비군가도 투쟁의 노래가 되었다. 이런 사례들은 노래의 생명력은 노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르는 자의 마음에 있다.”라는 말에 동의하게 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말대로 음악을 잘 알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감동의 기억들은 내영혼의 세포에 스며들어 오늘도 나와 함께 숨쉬고 있기에 쓴 책이다. 사실 지식인들이 쓴 책들은 너무 교훈적이기 때문에 획일적인 도식에 머물기 쉽다. 저자는 아예 그 추억들에 기대어 논평하는 나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우리 유행가의 수준을 너무 낮잡아 본다는 혐의를 오랫동안 지우지 않고 살았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19311호 대중가수라는 채규엽만 성악전공자라는 점을 부각하는 이유인데 사실 앞서 활동했던 기녀출신의 근대가수들도 예술 전문가들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실 에피소드에 눈길이 더 가는 점을 숨길 수가 없다. ‘가을편지세노야가 술값이 없어 시인이 즉석에서 써준 시라는 에피소드가 전문적인 평론보다 더 재미있다. 홀로그래픽으로 부활한 김광석에 관한 일화는 비록 연가(戀歌)의 가수로 더 알려졌지만 시대 상황 속에 서 있던 그를 다시 추억하게 해서 소중했다. 단순 재미의 에피소드는 다른 책들에도 많지만,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이 대학 가요제 출신이라거나 특히, 이한열 열사의 애창곡이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였다는 사실은 과거 애창곡이었던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흥미로웠다. 개인과 개인이 유행가를 통해서 역사와 매개되어 있음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신명직 작가도 인용한 유행은 사회를 화석에서 구원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행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대다수가 향유하는 문화예술로 정착하는 과정에는 반복적 소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자가 어떤 노래가 한 차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해서 그것이 곧 대중정서의 밑바닥에 들어앉는 것은 아니다. 가요라는 예술 장르의 성격이 그렇다. 한편의 노래는 여러 번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문화적으로 중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나 리메이크가 세대 가교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전국민적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다. 특히 지금 세대는 과거의 노래라고 해도 자신의 취향에 맞으면 적극 호응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시킨다. 모바일 디지털을 통해 문화적 채굴이 가능해진 덕일 것이다.

 

책에서는 X세대 이후의 노래에 대해서는 탈공동체성이라는 점에서 접근한다. 다만, 모든 유행가는 청년기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다. 비트제너레이션을 언급하는 저자의 세계관도 그때 유행가에 호응한 것이다. 유행가는 언제나 기성세대의 비판에 직면하고 그것이 예술사조의 본질이다. 좀 아쉬운 점은 전문적인 음악적 탐색이다. 예컨대 채규엽이 일본의 엔카를 수입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부각할 뿐 한국에 살며 엔카를 만든 선린상고 출신의 고가 마사오(こが まさお)1932년에 전수린의 황성옛터’(1928)를 모방했다는 점의 누락이다. 트롯풍 가요는 한국에서 시작해 엔카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글/김헌식(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정책학 박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