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와 문화 콘텐츠

디카시 SNS 시에 담긴 현대인의 자화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3. 11. 16:10

디카시 그리고 SNS에서 다시 진화한 시(詩)

-디카시 SNS 시에 담긴 현대인의 자화상

                  

                                                                                           김헌식(문화콘텐츠학박사, 평론가)



초기 인터넷 만화는 종이 만화를 스켄 하는 단계에 있었다. 퍼스널 컴퓨터 시대에는 이러한 점이 불편함이 없었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종이 만화보다 더 빨리 볼 수 있었고, 만화책방을 애써 가지 않아도 자신의 머무는 공간에서 편리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단점이 있었다. 종이 만화는 가로로 넘기면서 보았지만, 인터넷은 세로본능에 충실했다. 이른바 스크롤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우스 기능이 더욱 향상되면서 웹툰의 진화를 가속화했다. 웹툰은 말그대로 웹에 최적화된 창작 만화였기 때문에 단지 종이만화를 스캔하던 수준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되었다. 


하지만 스마트 모바일로 진행이 되면서 웹툰은 다른 형태로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맞게 웹툰이 제작되었다. 스크롤을 뛰어넘어 한 컷씩 움직이거나 세로에서 가로본능에 충실해지기도 했다. 얼굴을 중심으로 한 감정의 흐름에 더 알맞게 만들어지거나 터치 줌 인을 통한 접사를 통해 수용자의 심리를 더욱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전되어 나갔다. 이러한 점은 인터넷 소설 즉 웹소설에도 같이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 SNS 시가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에 많이 화제가 된 시인이 여럿 있었는데 새삼 주목을 받은 것은 국립중앙도서관이 관련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종이 책만 관련되어 있을 줄 알았던 국립중앙도서관이 이런 전시를 했다는 것은 그동안 애매했던 SNS시가 갖는 입지를 확실하게 인정한 셈이었다. 시는 이제 디지털 시대에 맞게 창작되고, 있는 셈인 것이다. 한국은 시인이 많고 시집이 줄기차게 출판되는 나라이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는데 이런 SNS시를 통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특징을 보면, 우선 원고지는 종이가 아니라 디지털 디바이스다. 시가 다루는 것들은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또한 매우 짧아 두 줄 세 줄에 이르는 분량이 전부이다. 유형은 풍자시, 반전, 압축, 패러디 도치 형식들을 취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고민하고 있거나 겪고 있는 애환이나 화두를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시상을 옮겨서 바로 공유할 수 있다. 


디카시의 경우에는 디지털 카메라와 시의 합성어인데, 광경이나 풍경을 촬영하고 이에 관한 시상을 글로 옮겨적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점은 언어의 힘으로만 광경이나 풍경을 적던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글자와 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은 시화전의 특징과 한계를 포함하거나 뛰어넘으려 한다. 이러한 디카는 순간적인 감흥을 다른 이들과 즉시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공간적인 특징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지역공간을 담은 사진과 시의 결합은 명소화를 통해 관광객의 유입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지털 시를 아직 문학으로 본격 편입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왕설래일수있다. 그것이 시인인가,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할수 있는가 문제를 얼마든지 삼을 수 있다. 시상의 감성을 압축적인 글로 운에 맞추어 작성하는 방식이라고 하면 분명 시라고 할수 있지만 그 이전의 시 양식과는 분명 다를 수 있다. 관건은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공유를 많이 하는가에 모아질 것이다. 특정 장르에 대한 인정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아지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의 장르가 새롭게 정립하려면 그것을 창작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것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 공유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겠다. 


앞에서 스마프 모바일 환경을 언급했지만, 이러한 시들도 결국 마찬가지다. 이런 디지털 시들은 스마트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되어 창작되고 공유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오랜동안 집중할 여력은 많지 않다. 이런 스마트폰 콘텐츠로 순간적으로 몰입하고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가 선호된다. 웹 소설만 해도 공유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문장도 간략하고, 분량도 짧아진다. 요컨대, 디카시나 SNS 시가 주목을 받는데는 피시 웹을 넘어서서 스마트폰 콘텐츠의 확장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를 읽는 순간에 자신의 삶을 지적하거나 꼬집는 내용들은 감흥을 배가한다. 잠을 설치고 있다가 불면증에 대한 짧은 시를 만지작 거리던 스마트폰으로 접할수 있다. 또한 눈둘 데 없어 스마트폰을 볼 수 밖에 없는 지옥철을 오가다가 출퇴근이나 휴가에 대한 디지털 시를 대할 수 있다. 손 안의 퍼스널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이러한 내밀한 시들은 더욱 깊숙히 파고들 수 밖에 없다. 그 중간에 시인 등단이나 문단, 출판사라는 제도적인 장치들이나 요건들은 없어지고 직접적인 매개를 디지털 공간이 실시간으로 연결해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시가 미래의 시라도 볼 수는 없다. 다만, 디지털 모바일 디바이스에 최적화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형식이 아니라 그안의 콘텐츠가 일으키는 정서적인 효과에 더 기울어 있다. 이러한 시들을 통해서 볼 때 기존 시와는 달리 이제 시가 형식이나 제도에서 해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은 작가나 비평가가 아니라 그것을 공유하고 즐기는 이들의 선택권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므로 대중문화권력 시대의  징후 가운데 하나라고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