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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벅지'가 단지 한 개인의 문제였을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0. 16. 09:48

'꿀벅지'가 단지 한 개인의 문제였을까

이른바 '꿀벅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걸 그룹 '애프터 스쿨'의 멤버 유이. 그러나 이 수식어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하여 논란이 많다.

'꿀벅지'는 핥으면 꿀이 나올 것 같은 허벅지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핥는 주체는 남성이고, 허벅지의 주인(?)은 여성이다. 긍정적이라 할 수 없다. 이 말이 성희롱이라는 네티즌의 주장에 대해 여성부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했다.

성희롱죄의 성립 요건과 같이 수치심을 느끼는 당사자가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해당 여성 연예인은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단어인가. 아니, 연예인의 처지에서는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연예인의 이름보다는 그 연예인의 허벅지만이 인터넷상을 떠돌아 다녔다. 더욱이 이러한 단어는 그 연예인에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었고, 일반인으로 확산됐다. 이러다 '이모님, 허벅지가 참 꿀벅지네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애초의 맥락은 거세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꿀벅지는 처음부터 일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꿀벅지에는 '○○녀'라는 단어들이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가 분명 있다. 여성의 몸을 조각내기 때문이다. 여성의 전인격성보다는 몸을 상품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몸을 잘라내어 대상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여성부는 간과하고 개인적인 문제라고만 입장을 취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여성부는 공신력 있는 정부기관이다. 즉 중립적 태도는 오히려 꿀벅지를 문제없는 단어라고 인증해 준 셈이 된다.

여기에서 중립적인 태도가 오히려 주관적인 개입을 낳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은 인터넷 시대의 미디어 사슬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일단 꿀벅지 같은 부적절한 단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게시판에서 만들어진다. 이를 처음에 인터넷 중소매체들이 다룬다. 몇 개 매체에서 다루면 다시 중앙 일간지들이 다루기 시작하고, 이를 받아 마침내 공중파 방송에도 등장한다. 명분은 지금 인터넷상에 이러한 트렌드가 있음을 알린 단순 보도라고 하지만 이는 부절절한 단어의 확산을 결정적으로 낳는다. 예컨대 몇 년 전에 실체 없는 '된장녀'를 실제로 만든 것은 조선일보였다. 인터넷 게시판과 인터넷 매체에서 떠도는 된장녀 개념이 조선일보에서 다루어지자 지상파 방송사에서 된장녀에 관한 콘텐츠 제작에 앞다퉈 나서기 시작했다. 그 뒤에 '○○녀'는 홍수 범람 같았으며, 하나같이 여성을 대상으로 상품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부기관과 미디어의 행태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몸을 잘라서 파는 예능인이 많아지고 있다. 이유는 기획사 시스템의 폭주 때문이다. 장사가 된다 싶으면 걸 그룹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경쟁이 심화되는 등 쉽게 눈에 띌 수 있는 섹시 콘셉트로 회귀하고 있다. 노출과 꿀벅지 논란은 이러한 와중에 발생했다. 처음 꿀벅지의 당사자가 본업이 가수인지도 모를 지경이 됐다. 어디든 '공유의 비극'을 낳지 말아야 서로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김헌식. 문화 평론가

*위클리경향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