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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예매 추첨제는 암표 근절에 성공할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4. 4. 22. 14:03

-예매 추첨제의 성공 조건

 

글/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교수, 미래학회 연구학술 이사, 평론가)

 

국민권익위가 암표를 방지하기 위해 공연 티켓의 추첨제 도입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다른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한다. 과연 어느 쪽에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구체적인 실행을 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현행 예매 제도와 비교해 추첨제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한국은 선착순 티켓 예매 방식인데, 공연 예매 추첨제는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정해진 기간 내에 공연 예매 신청하고 추첨을 통해 선정되면 시간 안에 입금해야 한다. 한국에서 선착순 예매는 본인 좌석을 확인할 수 있지만, 추첨 예매 방식에서는 본인 좌석을 공연 당일까지 확인할 수 없다. 이런 방식은 선착순 예매가 힘든 관객에게 좋다. 특히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거나 노약자 등에게 공평한 기회를 줄 수 있다. 도와줄 자녀나 동거인 등이 없는 경우에 더욱 그럴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방식에서는 암표를 방지하기 위해 1인당 티켓 구매량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가족 전체나 친구들이 같이 관람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런 방식에서는 한국 예매가 가진 티켓팅이 효도선물이라는 말이 없어지게 된다. 단점은 공연 시간 전까지 자기 좌석을 알 수 없기에 막상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반색이 될 수 있다. 의외의 좌석이나 원하던 좌석이 될 수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요즘 세대가 주목하는 랜덤 박스의 묘미와 같다.

 

무엇보다 티켓 가격 체계가 다르다. 이 때문에 추첨제가 선호될 수 있거나 없을 수 있다. 한국은 무대와 거리를 기준으로 책정을 한다. 예컨대, S13만 원, R10만 원, A9만 원 등이다. 이러한 가격 책정에는 사이드 석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러므로 무대와 거리를 중시하므로 가까워도 사이드 석이 존재할 수 있기에 이를 피해서 예매하려는 행태도 보인다. 그런데 일본은 좌석 유형에 따라 균일하다. 대체로 좌석 위치는 중시되지 않는다. 즉 입석 10만 원, 지정석 11만 원, 시야제한석(스테이지 사이드석) 10만 원 등이다. 시야가 불리한 곳은 모두 지정석보다 저렴한 셈이다. 따라서 추첨으로 공연 티켓을 받아도 실망감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수 장범준이 추첨제 시도를 한 바 있다. 지난 150석 정도의 공연 예매이었고, 구글폼으로 신청을 받았다. 하루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열어 놓고 신청한 관객을 대상으로 추첨 뒤에 현장 구매하도록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10분 만에 매진된 공연 티켓에 2~3배에 달하는 암표로 인터넷에서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규모 공연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 모른다. 물론 솔로 가수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 가운데에서도 실시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7월 보이그룹 세븐틴이 고척돔 공연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불만이 표출된 점도 있었다. 같은 값을 지급하는 데 시야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좌석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운영 방식을 세밀하게 개선을 하면 될 수 있어 보인다. 일단 자신이 희망하는 좌석을 몇 개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선 추첨이 된 순으로 이러한 좌석이 배정될 필요가 있다. 또한, 시야각이 아주 불편한 좌석은 최소화하고 이에 대한 양해의 뜻을 밝혀야 한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불편은 암표를 근절을 위해서 인내하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팬과 관객의 인정과 동의가 필요하다. 특히,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찐 팬에게 더욱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코어 팬덤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수백만 원의 돈을 들여 공연을 봐야 하는 팬들의 등골을 뽑는 암표 행위는 뿌리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업계에서는 추첨제를 하면 암표 세력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점은 아이디를 판매하는 행태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디를 생성해 이를 통해 응모하게 되면 더욱 암표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된다. 이 때문에 추첨제에 응모하는 경우 아이디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추첨제에는 설명으로 응모를 하게 하거나 최소한 본인의 전화번호를 통해 응모하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자신의 전화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력이나 시스템 구축에 관한 예산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단순히 추첨제만 대안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가수들이나 소속사가 자체 시행하고 있는 암표 단속 조치들이 역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 가수 아이유 공연에서는 엄한 팬이 암표 구매자로 몰려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물론 소속사에서는 나름 엄격한 관리 조치를 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찐 팬이 대리 티켓팅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황 소명을 상세히 했음에도 공연 입장은 물론, 환불 조차 받지 못했다. 이 같은 억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속사는 한발 물러섰고, 암행어사제도를 폐지하며, 영구 제명에 대해서는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오래 팬클럽 활동을 한 찐 팬들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연 티켓 판매를 통한 매출 증대에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일까. 여기에 암표 근절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하고 있기에 찐 팬을 도외시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오랜 팬이 암표 구매자로 몰릴 때 얼마나 화가 나고 슬프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의 경우 선행 추첨 자격이 있다. 제일 먼저 우선권은 유료 팬클럽 활동을 하는 팬들에게 주어진다. 이렇게 하면 찐 팬들이 소외되거나 웃돈을 주고 암표를 구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는 티켓 예매 대행사의 회원들에게 주어진다. 예컨대, 티켓 예매 플랫폼 회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남은 티켓을 일반인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다. 매우 인기 있는 공연의 경우에는 이런 일반 판매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방식에서는 평소 공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우선권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평소에 공연이 관심조차 없는 이들에게까지 기회를 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인식해야 한다. 문화 민주주의에 기생충이 꼬이는 현상은 어쨌든 제도적 운영의 개선을 통해서 막아야 한다. 문화적 권리와 공정성에 대해서 암표에 철학과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이를 공유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것이 우선 확립될 때 암표를 재테크로 합리화하는 행태들도 힘을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