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그래 봤어’라는 대답을 향한 분투기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0. 6. 15. 06:51

-‘그거 봤어?’ 리뷰.

 

대개 대학생들이라면 교수 저자들이 쓴 방송 비평서나 방송 프로그램의 사회적 분석서보다는 피디들이 쓴 책을 좋아한다. 대학생들이 가장 되고 싶은 직업군이 피디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니 말이다. 피디도 여러 유형인데 선망 하는 게 교양 피디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꼰대 세대에 가깝다. 이미 청춘들 사이에서 피디 가운데 예능피디가 꼽힌 지 오래라면 격세지감일까. 예능에 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고, 유재석이라는 걸출한 예능 스타를 두고 가볍게 여기는 인식은 전혀 없다. 의사들도 배우자로 예능인을 선택하는 시대니까 말이다. 예능 스타하면 개그맨 등을 생각했지만 이제 예능피디도 거물 셀럽들이 탄생해왔다. 그 사례로 나영석 피디를 들면 이의가 없다. 언론에 알려진 바로 연봉 40억이라고 했으니 드라마 피디도 절대 따를 수 없는 액수임은 분명하다. 물론 전략적으로 CJ ENM이 인센티브 자극제로 활용하고 있지만 40억의 연봉을 받는 스타 피디가 책을 쓰지는 않을 듯싶다.

 

김학준의 그거 봤어?’는 그 선망의 대상이라는 예능 피디들의 방송제작과 프로그램에 관한 생각과 숨겨진 삶을 담아낸 책이다. 장르를 규정하자면, 방송 프로그램을 만든 과정에서 겪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 에세이라고 하겠다. 화려한 피디의 삶보다는 존버하는 조직 생활자의 고군분투의 적나라하게 부각하면서 꼭 크게 성공 하리라 다짐했다고 거푸 강조하니 저자가 요즘 세대답다. 이 책을 주목한 이유에는 그는 비교적 젊은 피디가 쓴 책이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저자가 방송과 인터넷의 융합의 환경 속에서 성장한 피디 세대라는 점이 있다. 사실 그가 만든 건 방송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방송 콘텐츠라고 불러야 한다. 디지털 모바일 환경에서 방송 원리에 바탕을 두고 영상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영석만 해도 이제 세대가 다르다. 그는 아날로그 방송체제에서 성장했을 뿐이다. 새롭게 선을 보인 금요일 금요일밤에는 숏폼 콘텐츠를 지향하며 유튜브를 활용하지만 그 정서는 여전히 텔레비전 방송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 주요 시청자 코드도 청춘들이 있지 않다.

 

사실 지명도는 덜해도 김학준 CP와썹맨이나 워크맨을 안다면 젊은 세대와 말이 통할 가능성이 높다. 기성세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방송 콘텐츠이지만 청춘들에게는 많은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저자 이름은 더욱 낯설고 생경해도 와썹맨이나 워크맨이 디지털 콘텐츠를 기반으로 올드 레거시 방송과 연관되어 주목을 같이 받을 수 있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펼치면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인 셀럽의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점과 양준일 신드롬이 일었던 공통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이타마르 시몬슨과 엠마뉴엘 로젠은 '절대가치'(Absolute Value)를 말한 바가 있다. 절대가치는 실제 상품이나 서비스를 체험하고 얻은 가치를 말한다. 진정한 가치를 발견했기에 팬이 되고 팬덤 형성으로 진전된다. 이는 디지털 영상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것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동인이다.

 

기본 방송 시스템에서는 포맷과 아이템, 설정, 메시지, 정보 등을 중시했다. 여기에 등장인물은 하나의 구성요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디지털 방송 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이다. 얼마나 그 캐릭터에 감정이입에 이은 몰입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와썹맨에서 활약하는 쭈니형은 GOD의 박준형. 비록 50대 반백의 나이지만 세속적 욕망이 없고 순수하며 진정성이 그 자체인 캐릭터다. 방송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던 쭈니형이라는 캐릭터로 전달되었고 이에 나이차가 30년 이상 차이나는 청춘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다. 순수와 솔직함은 펭수 캐릭터에서도 마찬가지로 관통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라이브는 연출이나 설정으로 그런 모습을 만든다고 해서 먹히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 자체가 어필할 때 반응은 폭발한다. 양준일이 온라인 탑골 공원을 통해 재소환된 것은 그의 순수한 아티스트의 면모였다. 역시 50대의 나이인데도 변하지 않는 청춘의 모습은 젊은 세대는 물론 중장년도 불러들였다. 그는 꼰대 같은 권위적인 면이 없고 항상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언제나 존중하고 자신을 낮췄다. 이는 디지털 콘텐츠의 허브가 된 유튜버 크리에이터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실제 공간에서는 어린 녀석이라며 네가 뭐 안다고 라고 무시할지 모르지만,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에서는 깍듯이 모셔야하는 구독자다. 수용자의 관점에서 박준형의 와썹맨이 주로 핫플레이스를 중심에 뒀다면 장성규의 워크맨은 청춘들의 관심이 초집중 되어 있는 일자리와 노동의 현장을 진정성 있게 다뤄내어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단기 알바의 현장은 더욱 더 관심 폭발이었다. 리얼리티와 관찰예능 형식의 방송 프로그램이 주로 여행 놀이 포맷이었던 것과 달리 노동을 중심에 두었고, 젊은 세대가 유희에만 열광한다는 믿음을 편견이라고 확증시켰다.

 

무엇보다 밀레니얼로 일컫는 지금 젊은 세대는 절대 가치에 자신을 직접 드러낸다는 점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을지로를 힙지로로 만들고 김연자의 트롯 아모르파티를 픽한 것은 밀레니얼 세대였다. 송가인을 비롯한 미스 트롯 열풍의 시작은 물론이고, 90년대 온라인 탑골 공원의 양준일을 픽한 것이며, 영화 타자의 곽철용을 다시 재소환한 것도 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치를 발견하면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선택하며 공유한다. 다만, 그들이 재발견하는 콘텐츠 광부로서 특징은 있다. 씨름이 대표적인데 그들은 기존 천하장사 백두 장사에는 관심이 없고 매끈한 건강미 넘치는 기술 중심의 태백, 금강 체급에 열광했다. 다만, 열광의 대상들은 절대 꿀 빠는 꼰대처럼 구독자들이 절대 나이 어리다고 비정규직 알바생이라고 낮춰 대하지 않는다.

 

갈수록 힘든 그거 봤어?’라는 질문에 대한 그래 봤어를 듣고 싶은 저자는 결론 즈음에 여러 차례 시니어들을 위한 방송 콘텐츠를 매개로 세대 통합의 의지를 강조한다. 그것은 분명 기계적 통합이 아니라 공통의 절대가치에 대한 세대를 가로지르는 보편성의 확보 문제를 숙제로 남긴다. 다만, 문화예술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정신없이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의 결과들을 새로운 세대가 재발견하고 재창조해왔고 그것이 진일보의 원동력이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매스미디어 시대의 방송은 수요자를 일방향적이고 강요되었으며, 계몽하고 세뇌시켰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팬들과 같이 공유하고 수평적이며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우선이다. 서로 지속적으로 절대 가치를 체험하고 공감할 때 존재할 수 있고 영속이 가능하다.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방송 프로그램들도 이점을 놓친다면 영속할 수 없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김헌식(대중문화평론가, 문화콘텐츠학 박사)

 

*기획회의 4월호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