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ID의 영어 발음 논쟁에서 빠진 것~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5. 11. 23:52

걸그룹 EXID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데뷔 후 곧 사라질 찰나였던 그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던 직캠으로 강제 소환을 당했던 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직캠은 숨겨진 팬심을 상징했기 때문에 SNS를 통해 그들을 수직 상승시켰다. 직캠이 주목했던 성적 동작을 의미하는 춤, 그것으로 그들은 일약 유명해지더니 이번에는 더욱 뜻하지 않게 영어 발음논쟁이 그들의 대중적 인지도를 더욱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영어발음이 그래도 괜찮지만 조롱을 받은 피해자로 말이다.

 

발단은 미국 연예기자 등이 연예전문방송 토크쇼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미국을 방문했던 EXID 멤버의 영어발음을 문제 삼아 조롱하고 희화화했고, 이 때문에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연예인들의 발언이 매체를 장식했다. 예컨대 옥택연이 "미국 갔더니 많은 팬들이 와줘서 영어로 답해준걸 놀린다는 멘탈이 그냥 와우"라고 했던 사례가 대표적이었다. EXID 소속사에서는 고소를 검토하기로 했다는 말도 나왔다. 국내 JTBC의 유명 저널리스트는 EXID의 발음이 괜찮았다는 발언을 했고, 좀 엉뚱하게 그의 영어 실력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한편으로 우리가 그러한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지적도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의 한국 발음을 희화화하는 코미디 프로그램도 많았기 때문이다.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은 유행어가 되었고 연변 조선족 말투를 크게 강조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외국인의 영어 발음을 조롱하는 발언 때문에 반한류에 휩싸인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0년에 벌어진 필리핀인 영어 발음 조롱이었다. 한 국내 배우가 필리핀 사람들의 영어발음을 희화화한 일이 필리핀에 알려지면서 반한류 정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EXID 인종차별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미국 연예 매체 TMZ 방송

 

이러한 사례는 EXID의 영어발음 논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EXID의 영어발음논란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인 이유가 따로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들썩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점은 더욱 그렇다. GOD의 박준형은 '그냥 못 배워 먹은 바보짓했다'라며 해당 연예매체를 비난하기도 했다. 다만, 외부에 대한 평가 이전에 우리 스스로 미국식 발음을 위한 자학과 비난, 조롱 속에 있지 않은지 그것을 성찰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었다. 우리가 외국인들의 한국어발음을 조롱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 스스로 미국식 발음에 대한 지나친 과몰입 현상이 있고 이 때문에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을 서로 힘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언어조롱이 일어난 국가가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별스럽지 않게 받아 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어발음 희롱이 일었던 방송국의 소재지가 미국이었고 이 때문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낳았던 것이다. 한국은 영어 가운데 미국 식 발음에 신경을 쓴다. 원래 영어의 나라인 영국식 발음을 배우려하거나 그에 가깝다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단지 언어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나 열정이 아니라 경제적인 진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영어 원어민은 미국인을 가리킨다. 더구나 원어민은 백인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게 현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일도로 더욱 미국식 발음을 연습하면서 케이팝 가수들이 미국을 방문할 듯싶다. 뭔가 나름의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

 

닮으려고 한 사람에게서 비슷하지 않다고 듣는 것은 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닮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비슷하지 않다고 말한들 별스럽지 않다. 영어발음과 인종차별논란에서 생각해야 할 점은 성찰의 요구도 있지만 우리안의 성찰이 요구되는 점이다. 우리 스스로 미국식 발음에 대한 강한 열망과 그 반대로 엄청난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더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한국인일수록 당연히 영어를 못하는 것이 평균적이고 일반적인 모습이다. 오히려 잘하는 것이 이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거부하고 무시하며 심지어 조롱한다. 더구나 상류층과 재력의 상징은 바로 미국식 발음이다. 그것으로 한국인다운 이들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하는 영어발음 프레임이다.

 

이런 현실에서 외국어를 우리 방식대로 적용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식 발음을 위해 엄청난 돈이 투입되고 있으니 말이다.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발음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회 후생비용으로 다른 데 더 건강한 곳에 쓰여야할 돈이 엉뚱한데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 부터 미국식 발음을 위해 혀를 비틀고 싶어 하고 가족과 별거하거나 국적을 바꾸려고도 한다. 이런 자기 소외적이며, 자기배반적인 행위 등에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발음 괜찮은데 왜 그러지'가 아닌가. 과거 오래전 이두 식으로 한자를 받아들이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그만도 못한 듯싶다. 다시 그런 날에는 가수가 노래가 아닌 영어발음 논쟁으로 인지도를 얻어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언어의 기능은 과시와 멋이 아니라 소통과 뜻의 전달에 있을 뿐인데 말이다.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