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82년생 김지영의 ‘빙의’는 정신장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11. 7. 09:02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정신 장애 빙의

 

상담의는 김지영(정유미)의 남편 정대현(공유)에게 이렇게 말한다. 상담 받으러 오기까지가 제일 힘들다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과 달리 강조하는 점이 있는데 바로 빙의라는 설정이다. 빙의(憑依)는 본래 초월적인 의식 세계를 경험하는 현상을 말한다. 다른 혼이 들어오는 현상이라고도 하고 흔히 귀신이 들렸다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친정어머니 목소리와 감정이 튀어나오기도 할머니 말투로 변해서 말하기도 한다. 본인은 무엇을 누구의 말투로 말했는지 전혀 기억을 못한다. 대개 빙의라면 초인적인 능력이 부각되고는 한다. 장르물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오컬트 문화가 좀 더 확산되는 정도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정신 장애 범주에서 볼 수 있게 했다. 가사와 육아 노동에 시달리는 김지영이 빙의를 하는 이유는 미뤄짐직 하건대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하거나 의사표현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제작진은 이 영화가 가족 영화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빙의를 통해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의 입장을 김지영의 입을 통해 대리표현을 하게 했다. 그 빙의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으로 살고 여성으로 경험한 느낌과 생각을 오늘날의 김지영의 현실에 투영하여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빙의 현상이 오늘에만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 영화가 82년생이 아니라 62년생, 72년생 김지영을 다룬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90년생 가운데에도 가사와 육아를 여성이 당연하게 해야 한다는 가풍에서 자란 여성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같은 자극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는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음을 말한다. 정신장애의 발생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좀 더 양성평등의 원칙에 맞게 교육 받거나 그러한 기대감을 갖고 성장했을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욱 현실의 상황을 대하는 감각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보다 나아졌기 때문에 지금은 힘들지 않으며 나아가 힘들어하는 것은 의지박약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대감에 따른 현실간의 괴리는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고 그것이 정신 장애로 연결될 수가 있다.

이 영화에서 또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신 장애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빙의 현상을 정신 장애로 본 남편 정대현은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다. 하지만 정작 아내 김지영에게 말하지 못한다. 점점 증상이 심해지면서 남편은 장모님에게 아내의 상황을 알리게 된다. 이 상황을 알게 된 김지영의 어머니는 슬픔과 분노에 차게 되고 마침 아들에게 개소주를 챙겨주는 모습에 두 부자에게 화를 격하게 내쏟는다. 아들만 신경 쓰고 달이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 모른다는 것. 부부갈등이 치달은 것은 김지영이 경력단절녀를 극복하고 다시 일을 하고자할 때였다. 빙의 증상이 있는 아내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한다? 마침내 남편 정대현은 본인 김지영에게도 이같은 사실을 알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사와 육아노동의 고통이 정신장애의 빙의 증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는 상대적인 고통인데 이른바 문화적 가치와 현실의 괴리현상에서 발생하는 신경증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의 차이에서 정신적인 갈등은 심해진다.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의 강도가 강할수록 그것이 만약 사회집단화가 더 넓다면 이 갈등은 비단 개인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정신 장애 현상이 단지 개인의 물리적 정신적인 기능성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에서 비롯할 수 있음을 82년생 김지영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치유나 치료법도 같은 맥락에서 모색되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 김헌식(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