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1 대 99' 1%는 적이고 99%는 동지인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8. 2. 7. 11:27

'1 99' 1%는 적이고 99%는 동지인가

<김헌식 칼럼>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과 복지란 무엇인가의 고찰

 



 

흔히 진짜 부자는 1%라고 칭해진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그들은 한편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생활을 알고 싶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보고도 싶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 괜한 시기와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막상 그러한 1%의 부자를 자신의 친구로 삼게 된다면 보통은 기뻐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으니 그러한 점이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 전이되지 않을까 싶은 심리가 생긴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에서 활동보조인 모집에 응모했던 사람들이 품은 생각이기도 하다. 일부는 노골적으로 돈을 많이 받고 풍족한 삶을 같이 공유할 수 있을 거 같아 지원했다고 밝힌다. 하지만 그들은 곧 얼마 견디지 못하고 떠나고 만다. 장애인 활동보조가 만만치 않은 일이고 그것이 비록 돈이 주어진다고 해도 수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정신만을 강조해도 한계가 있었다.

 

영화 '언터처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필립이 드리스를 다른 전문보조인을 제치고 선택한 이유는 자신을 장애인으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비장애인과 같이 대했기 때문에 비록 전과자 흑인 청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그를 보조인으로 채용한다. 물론 풍족한 필립의 삶에 참여하게 된 드리스는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한 생활을 접하게 된다. 고급스럽고 품격이 있으며 풍족하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본 생활이 펼쳐진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부자 주인공을 만난 또다른 서민 출신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그동안 못해본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드리스에게는 생경한 승무원이 있는 전용기와 몇 대의 고급자동차, 화랑, 음악회 등등이 이채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무조건 그 삶에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페라를 비웃고 클래식 음악대신 자신이 즐겨듣는 대중음악을 선사한다.

 

그러한 점이 필립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자신 앞에서 항상 소심하고 고분고분 하는 이들은 자신의 개성과 느낌이 철저하게 탈색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드리스는 그 과감하고 직선적인 태도로 사랑을 다시 필립에게 찾아준다. 품격과 격식의 안에 있는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거꾸로 드리스를 통해 필립은 자신이 잃었거나 간과했던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다. 빈민청년에게서 말이다.

 

두 사람은 정말 죽이 잘 맞지만 필립은 드리스를 내보낸다. 드리스가 평생 자신의 휠체어를 끌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이는 드리스를 필립이 아끼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가 영원히 필립의 옆에 있기를 바랐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필립은 드리스가 활동보조인으로 있기 보다는 자신의 일을 찾아 더 성장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드리스가 짐을 싸고 나올 때 활동보조인 직에 응시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은 어쨌든 1% 필립에게 오히려 의지하려는 이들이다.

 

자신의 삶을 찾으러 나간 드리스는 결국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가족을 영위하는 가장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우정은 계속된다. 통속적일 경우, 필립 옆에 드리스가 행복하게 계속 살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 '언터처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하지만 이 영화는 자립을 강조한다. 부유한 장애인 옆에서 보조인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내맡기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드리스의 모습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부유한 사람이 결핍된 것을 채워주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신데렐라형 드라마나 영화와 다른 점이 쿨 하게 다가온다.

 

또한 필립과 같이 비록 부유한 자가 아니더라도 복지는 그런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그들의 소통방식은 오히려 복지정책에서 더 큰 함의를 줄지도 모른다. 진정한 친구라면 단지 테크닉 차원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옆에 두기보다는 영혼을 교감할 것이다.

 

그들처럼 흑인과 백인, 빈자와 부자를 떠나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수평적인 인간유대이고 그에 따를 때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된다. 그것이 없을 때 누구에게도 복지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장애가 된다. 테크닉 차원의 복지 정책은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반추 되고 성찰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 영화를 통해 알 수가 있겠다.

 

무엇보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1% 필립이었다. 그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생활보조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리스는 필립이 없는 걸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소통할 수 있었다. 무조건적인 시혜나 배려는 없다. 만약 그가 장애를 갖지 않았다면 그의 1%의 기고만장함은 이카로스의 운명과 같았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장애를 통해 낮은 곳의 드리스를 만났다. 오히려 이는 그의 장애가 주는 이점이었으니, 세상만물이 모두 이면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