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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는 대통령감이 아니고 의원감?(어셈블리) 또 지역정치 실종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7. 16. 11:27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 동영상 화면 캡처.
해고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된다는 드라마 '어셈블리'의 설정은 워싱턴 입성기를 담은 미국 드라마의 포맷이나 약자의 정서를 다룬 정치관련 드라마,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맷을 빌린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요인을 추가해 주인공 상필(정진영)은 오랜 동안 용접을 한 노동자로 정치에 대한 분노와 성토를 실제 의회 활동을 통해 실천하고 현실적 결핍을 해소하려 한다. 자신의 대리자인 정치인을 매개로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실현자가 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리자를 찾았던 그가 스스로 나서는 순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을 찾을 때는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일단 국회의원이라는 대리자가 되는 순간 자신을 그러한 이익에서 분리시켜야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러한 분리를 하지 못하고 만다. 역시 이 드라마도 그러한데 이 때문에 역시 모순에 빠지고 만다.

상필이 국회의원이 될 때 해고 노동자가 국민의 정치적 정서를 대변하는 직업군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작지만 거대한 착각이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이들을 뽑는 것이다. 아무리 현실에서 지역주민과 관계없이 후보자가 결정된다지만, 어차피 상필과 같은 해고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꿈같은 설정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넘어서려 한다면, 지역구의 주민을 대변하는 인물이 국회에 가야 한다. 이 드라마도 지역 주민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언론플레이나 정치적인 전략이 난무한다. 결국 상필은 노동자라는 직업군을 대변하지만 지역주민의 민생과는 분리된 인물이다. 즉 자신의 이해관계속에서 정치를 하는 인물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게 된 셈이다. 

국회의원이란 무엇일까. 흔히 국민의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도 주인공을 통해 그렇게 말한다. 다른 악역 캐릭터들은 자신을 위해 정치를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추상적인 말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 실현하는 것일 지 생각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하는 일은 법안을 만드는 일이다. 법안을 통해 정책을 실현하고 그것이 민생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정치 드라마와 영화에는 법안이 등장하지 않는다. 법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오로지 정치 음모와 전략, 그리고 파워 게임만이 등장한다. 국민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반영한다는 영상 콘텐츠들이 정잘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 조차 그려내지 못한다. 그것은 결국 정치를 재미로 그려내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어셈블리'에도 입법 활동을 통한 국회의원의 활동은 고려 대상도 아니다. 오로지 슈퍼맨과 같은 결단과 용기를 통해 세상을 바꿔 줄 파워맨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이상적인 소망의 현실적 고투와 좌절을 중심에 둘 뿐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정치 대표자의 출발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그것이 현실에 좌절하더라도 어떻게 계속 그것을 견자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관점에서 정치 대표자는 자기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자기를 강조할수록 그에 부합할 수 없는 존재가 돤다. 자신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한다고 강조해도 말이다. 자신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정치 대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대리하고 실현해 주어야할 이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대의 정치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구분이 안될 만큼 대리정치의 구분과 그에 따은 역할과 기능조차 반영되지 못한다. 

각 지역에는 현안이 많다. 이는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주민들의 오랜 민원사항과 숙원을 중앙 정치에서 실현해주길 바라는 염원이 국회의원이라는 대표자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때로는 이를 위해 위험한 일을 자초 하거나 악인이 되어야 한다. 반드시 검은 세력과의 협상이나 타협와 같은 정치권력의 음모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인 성격을 다룬 드라마는 없어 보인다. 언제나 정치 파워 게임 놀이판이 계속된다. 상필은 오로지 자신을 중심으로만 역학구도 밖에 모르는 인물일 뿐이니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괴상하다. 

어쨌든 그를 중심에 두고 정치혐오와 선악구도 속에서 놀이판을 지켜보는 맛이 있겠다. 정치를 논하는 명대사 퍼레이드도 이어지겠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인지 국회의원인지 구분이 안되는 정치담론에서 소외되는 것은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지역주민들이다. 해고 노동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모를까. 정말 그는 국회에 갈만한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못하다면 즉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것을 파고 드는 것이 대중을 위하는 정치 드라마이다. 그렇게 못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해고노동자가 대통령감은 아니고 국회의원 수준이라고 이미 한계를 긋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