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항거와 암살의 변증법 그리고 과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6. 7. 22:34

40. 여성 그리고 장애와 독립운동

항거와 암살의 변증법 그리고 과제

 

김헌식(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카이스트미래세대 행복위원회위원)

 

 

한동안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 특히 독립운동 영화는 흥행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 영화계의 불문율이었다. 제작진도 상당히 부담감을 지고 임해야 하는 소재의 영화였다. 비장함으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사료에 충실해야 하며 독립 운동과 투쟁의 정신을 진지하게 투영해야 한다. 대표적인 영화가 아나키스트’(2000), ‘도마 안중근’(2004)이었고, 이 영화들은 이념을 가로지르며 묵직한 주제의식은 보여주었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러한 불문율을 깬 것이 영화 암살’(2015)이었다. 영화 암살은 할리우드 방식의 연출 기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하이 컨셉 영화 방식이었다. 독립군이 암살단을 조직해 특정 시점에 요인을 저격하는 내용은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쉽다. 그 최종 목적을 위해 모든 내러티브가 엮이고 전개되어 마침내 현장에서 통쾌하게 수렴되는 것을 기대하고, 영화는 그것에 부합해야 대중 흥행이 폭발한다.

특히 마지막에 친일파 처단 장면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못한 역사를 대리 실현해주었기 때문에 더욱 통쾌감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일제시대가 특히 대중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여서 일제 시기 관련 영화들의 잇따라 제작되었다.

여기에서 더 공헌점을 한가지 이야기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조명이었다. 흔히 독립운동하면 남성들이 전부 주도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분명 여성들의 역할도 컸고, 대표적인 여성들도 꽤 있다. 영화 암살이라는 안윤옥(전지현)이 스나이퍼로 등장해 이채로웠다. 대개 이런 오락물 형태의 독립운동 관련 영상 콘텐츠에서는 여성이 주로 미모의 공작원 스타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직접 총으로 저격할 수 있는 면에서 스나이퍼는 여성의 육체적 특성에 잘 맞을 수 있다. 전장을 누비거나 육탄전을 벌이는 것은 남성의 물리력에 대한 또다른 콤플렉스 일 수 있다. 체구가 작고 정신적 안정감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서 요인 저격에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여성을 포함하여 자신의 역량에 맞게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장애인 독립운동가이다. 영화 암살에서 마지막에 염석진(이정재)가 반민특위 재판정에 나가 친일파 단죄를 받게 된다. 그러자 웃통을 벗고 자신의 몸에 있는 총알 자국군 흉터를 가리키며 자신이 친일파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임을 호소하여 법정에서 풀려 나온다. 그는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나서지만 변절하여 친일파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 구금 고문을 하여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 총을 맞아 흉터가 몸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전투나 고문으로 부상을 당하거나 몸이 훼손당하여 장애를 얻게 된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독립운동가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여성 시각 장애인 심명철이었다. 영화 항거’(2019)는 애초에 유관순 열사를 중심에 두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같이 갇혀 있었던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를 부각하여 화제를 일으켰다. 8호실 갇힌 19명은 17세에서 43세 서울(당시 경성), 황해도 재령, 강원도 통천, 경기도 개성, 경북 김천, 부산, 광주 등의 여성들이었다.

남성들은 주인공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고 전적으로 여옥사에 여성들이 갇혀 있는 실내 공간이 주요 공간으로 등장한다. 좁은 옥사 안에서 끊임없이 서서 움직이며 노래 부르기, 만세 부르기 등 자신들이 할 수 범위 내에서 어떻게 분투했는지 드러내고 있다. 오로지 유관순에게만 초점이 맞춰질 수 있는 영웅 사관 차원에서 벗어난 연출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심명철 지사는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애초에 심명철(임윤진)1896년생으로 23살이었으나 영화에서는 1887년생 32세로 설정했는데, 역할 비중이 없었다. 더구나 시각장애인으로 등장하지 않으며 그런 특성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일화가 없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일제 경찰에게 연행되어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신문을 받는데 검사가 심명철에게 장애인이 무슨 독립만세냐라고 했다. 그러자 심명철은 그때 '내 눈이 멀었다고 내 마음도 먼 줄 아느냐'라고 했다. 그 때 나이가 23살이었다.

이런 내용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각 장애인 독립운동가에 대한인식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각장애인 심명철 지사는 호수돈 여학교 기숙사관이었던 신관빈과 함께 호수돈 여학교와 미리홈 여학교 학생들을 모아 거리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노래극 ‘8호실의 여성독립운동가 언니들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또하나의 공헌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911, 심명철 열사의 아들 문수일이 언론사(한국일보)에 제보한 내용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유관순 열사 등 7명이 한 감방에서 노래를 지었고, 어머니(심명철 지사)에게 들었던 가사를 적어놓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매우 놀랍게도 옥중에서 같이 부른 노래가 알려진 것이다. 아들 문수일의 언론사 인터뷰 증언에 따르면 이 노래를 감옥 안에서 수시로 불렀고 간수들이 제지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민간에 불렸던 곡에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노래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1.‘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2.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이 노래는 심명철 지사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기억해서 아들에게 전한 것은 강력한 독립운동 정신이 체화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영화 항거에서는 주로 아리랑을 같이 부르는 모습이 담겼다.

애초에 심명철 지사는 여섯 살에 약을 잘못 복용해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역시 시각장애인이었던 남편은 아들이 아홉 살 때 사망했고 평생 사과장수, 삯바느질 등을 하면서 남매를 키워냈다. 시각 장애인이었음에도 개성의 호수돈 여학교 졸업생이었고 나아가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생활을 했고 독립운동에도 나섰던 것이다. 고문을 심하게 받아 귀에서 고름이 나왔다고 그의 아들 문수일은 증언하기도 했다. 몸에 상당한 휴유증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영화 항거보다는 20193월 개봉한 유관순과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1919유관순에서는 유관순만이 아니라 어윤희, 권애라, 심명철, 노순경, 임명애, 신관빈 열사의 삶을 기록과 인터뷰 등을 통해 재구성했다. 여성운동가들에 대한 콘텐츠를 소설, 뮤지컬, 드라마 등으로 만들 계획을 밝혀 고무적이었다. 앞으로 시각장애인 독립운동가 심명철을 중신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염원하지 않을 수 없다. 가능성의 영화에서 공존 상생하는 영화로 말이다. 심명철 지사만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독립운동을 했거나 장애를 얻고 나서도 여전히 독립운동을 했던 지사들을 조명해야 할 필요는 있다. 중도 장애인이 된 독립지사들의 삶도 극화할 필요가 있다. 김구 선생도 총탄을 심장 부근에 맞은 장애인 이었지 않았나.

김헌식 codes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