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인의 대표의상은 한복 아닌 아웃도어 ´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20:02

<김헌식 칼럼>한국인의 대표의상은 한복 아닌 아웃도어 ´왜´?

 2011.02.04 09:18 | 수정 2011.02.04 09:19

 




[김헌식 문화평론가]어느 공무원 일행이 한-중-일을 오가는 '한중일 크루즈' 체험탐방길에 올랐다. 사실 크루즈 참가자는 바다풍경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루즈 선박 안에서 여러 가지 시설과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이 주요 일과다. 하지만 그 안의 프로그램에 재미가 없었다. 더욱이 남성들끼리 체험에 나섰기 때문. 망망대해에서 지루했던 공무원이 마침내 일본에 도착해서 육지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는데, 매우 익숙한 복장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 복장을 보고 한국 사람인줄 알았다는 것. 

특히 그것은 해외여행에 나선 아저씨 아줌마들 복장이라고 했다. 한복을 입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 한국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은 아웃도어였다. 즉 그, 일군의 군중들은 등산복 패션을 입고 해외여행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그 일부 사람들만의 패션은 아니다. 어느새 아웃도어는 한국인의 일상복이 되었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이를 쉽게 용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일종의 스포티즘 패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웃도어를 비롯한 스포티즘 의상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추리닝 패션'이라고 부르겠지만 이제는 그 차원에서 평가할수 없게 되었다. 왜 아웃도어를 비롯한 스포티즘 패션은 한국인들이 애용하는 의상이 될 수 있었을까. 

트레이닝-스포츠복 계열의 옷은 이전에 과히 좋은 의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이전에 추리닝은 백수계열 패션에 속하기도 했다. 2005년 KBS2 < 개그콘서트 > 의 ´현대생활백수´ 코너로 큰 인기를 끌었던 개그맨 고혜성은 '추리닝 복장'으로 이십대 백수의 모습을 코믹스러우면서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추리닝 복장'은 차브족 패션에서와 마찬가지라도 백수의 이미지 아이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세 시장에서 고혜성이나 차브족이 입는 '추리닝'은 고가였다. < 개그콘서트 > 의 '달인' 코너에 등장하는 개그맨 노우진이 착용하는 파란색 '추리닝'도 마찬가지다. 2010년 영화 < 심장이 뛴다 > 에서 박해일이 입었던 옷도 결국 백수 컨셉에 맞춘 것이었다. 하지만 고가의 스포츠룩-체육복 패션이었다. 

한쪽으로는 정말 실제로나 영상 이미지나 모두 해당하는 럭셔리 계열의 '추리닝'도 있다. 2000년대 초반 CF계의 여왕은 이영애였다. 이영애의 하루라는 유행어가 나올 만큼 연간 30억 원 정도의 CF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영애의 하루라는 유행어는 하루 종일 이영애가 출연하는 광고가 나온다는 말에서 비롯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각인되었던 것은 우아하고도 여유 있는 싱글 여성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반이 신용카드인 것처럼 다룬 CF였다. 물론 빚을 안겨주는 카드였다는 비판이 이후에 비등하기도 했다. 

여하간 이때 이영애가 카드 광고에서 선보인 추리닝은 감각적 특성으로 대중적 인기를 크게 선도했고, 더 이상 '추리닝'은 단순히 추리한 후줄근한 복장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추리닝'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뀐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추리닝'은 명품과 연결되었다. 단적으로 2010년 드라마 < 시크릿가든 > 에서 김주원(현빈)은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었다는 수제 '추리닝'을 선보였다. 

이로써 차가운 도시남의 이미지에 맞는 '추리닝'은 까도남의 또다른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들이 입기에는 부담스러운 럭셔리 명품이었다. 소개팅 자리에 슬리퍼에 추리닝을 입고 나오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없겠다. 하지만 현빈과 같은 차도남이나 까도남이 나온다면 달라질 것이겠다. 더구나 그 츄리닝이 그냥 추리닝이 아니라는 점은 바로 이 같은 행동을 더욱 이끌어낼 것이다. 신분의 상징이기도 하니 말이다. 

현실에서는 이제 백수계열과 럭셔리 계열이 대중명품화-매스티지에 혼합되고 있다. 이 같은 점은 바로 최근 몇 년 동안 패션계에는 스포티즘(sportism)이 핫키워드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스포티한 의상이 각광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이전의 단순 스포츠 룩의 진화라고 하겠다. 

백수복장이라는 생활밀착형 패션을 제외한다면 초기에 본격 스포츠 룩은 스타와의 동일시와 감정이입 현상 때문에 일어났다. 즉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 스타의 의상을 그대로 입는 것이다. 예컨대 특정 선수의 등번호, 같은 구단의 유니폼을 착용하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특정 스포츠 의상을 자주 착용한다면 비록 케쥬얼 의상이라고 해도 마니아로 여겨졌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각된 신스포츠룩(Neosportslook)은 하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티즘이라는 용어로 묶을 수 있을지 모른다. 스포츠룩의 진화가 스포티즘 패션이고 매우 광범위한 현상을 나타났다. 

단순 스포츠룩과 스포티즘은 내용적인 면에서도 구분된다. 스포티즘 패션의 대표적 특성은 세련됨과 실용성이 꼽힌다. 스포티즘 패션은 실용성은 스포츠 활동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착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전의 주위시선을 완화시켜주는 아이템이 필요했다. 즉 특정 스포츠를 아주 좋아하거나 스타와의 동일시와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착용할 수 있는 패션이다. 

이는 바로 실용성에 세련됨의 가미로 나타났다. 야구, 권투, 테니스, 등산, 낚시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서 모티브를 얻은 패션들이 나타났다. 마크 제이콥스나 막스마라와 같은 명품 브랜드 등에서 내놓은 스포티룩은 럭셔리 스포티즘을 구가했다. 

스포츠웨어는 여성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반드시 분홍색 아웃도어만을 염두하는 말은 아니다. 2000년대 후반에 여성성 관점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로맨틱 스포티즘'일지 모른다. '로맨틱 스포티즘'은 로맨틱하면서도 스포티한 의상을 일컫는다. 여성스러운 의상과 스포츠의상을 같이 결합시키고, 캐주얼하면서도 건강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로맨틱 스포츠에 참여할 때 입는 의상이 되겠다. 

스포티즘 패션 로포츠(Roports)가 등장하는 것이다. 로포츠는 로맨틱 스포츠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로맨틱 스포츠란 발레, 피겨 스케이팅, 요가 등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스포츠를 가리킨다. 이러한 단어가 나오게 된 이유는 김연아 선수 때문이다. 캐포츠(Casual+ Sports)가 스포츠웨어로 여겨져 온 트레이닝복을 외출용 패션스타일로 변화시켰다면 로포츠는 건강과 뷰티를 동시에 추구한다. 

김연아를 염두하는 것이라면, 스타 후광효과의 연장선상에 있는 패션이라고 하겠다. 여기에는 건강과 고귀함이 자아중심적으로 재구축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점은 럭셔리 '추리닝'건 싸구려 '추리닝'이건 백수와 재벌의 공통점에 연결된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다. 

재벌과 백수의 사회적 신분은 매우 현격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부유함이나 권력의 정도를 포함해서 백수는 가진 것이 없지만, 재벌은 그 반대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이 입은 추리닝은 같은 맥락에서 평가할 수도 있다. 

백수와 재벌의 공통점은 시간의 통제권을 자기가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백수는 어떤 조직에도 구애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의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 남는 게 시간이라는 말은 백수에게 자신의 선택과 계획 같은 통제권을 온전하게 소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직의 상위의 리더에 올라갈수록 시간의 선택권과 계획권은 더 부여된다. 

백수가 '추리닝' 차림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일상의 시간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조직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영애가 싱글여성의 여유를 강조하는데 활용했던 추리닝은 이러한 차원에서 조직과 강제적 질서에서 자유롭고 싶은 여성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 시크릿 가든 > 의 김주원은 여기에 럭셔리 '추리닝'을 선보였다. 

럭셔리 '추리닝'에서는 단순히 일상 공간 속의 삶의 여유만이 아니라 부유함을 다시 결합시키고 있다. 귀차니즘이나 다용도라는 평기기준으로 설명할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아웃도어 스포티즘 의류가 많아진 것은 삶 속의 시간 통제성을 의식적 무의적으로 자신에게 부여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럭셔리한 스포티즘을 따라가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스포티즘은 조직, 질서,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 통제감을 실현하려는 심리가 하나의 문화적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겠다. 노는 장소나 일하는 장소, 주거하거나 여행하는 복장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탈경계의 융합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