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인들은 왜 매일매일 멘붕에 빠지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2. 8. 15. 12:34
<김헌식 칼럼>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하는 한국인들의 자화상
김헌식 문화평론가 (2012.07.12 10: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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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안
"쟤는 하루 종일 왜 그러니?"

"어제 오늘 화장실에 핸드폰을 빠뜨려 ‘멘붕’이야"

멘붕이 뭔가? 맨봉도 아니고? 무엇을 매었는데 붕~떴다는 말인가. 여기에서 멘붕이라는 말은 어느새 젊은층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공유하던 이 말이 이제 트위터나 블로그, 카톡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한다. 당황스러운 일을 당하거나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멘붕이라는 단어로 통일된다. 멘붕 직전, 멘붕할 지경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가수가 노래하다 옷이 벗겨져도, 축구선수가 실축을 해버릴 때, 학생이 성적이 떨어져도, 친구가 약속을 안 지켜도 멘붕이라고 해버린다.

멘붕은 멘털붕괴의 줄임말이다. 멘털(Mental)이 멘털리티(Mentality)의 줄임말로 정신을 뜻하기 때문에 멘붕은 정신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물론 진짜 정신이 무너지면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무너지다’라는 말은 온전한 건축물이 부서지거나 쓰러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요즘 젊은 애들은 그렇게도 쉽게 정신이 붕괴된다는 말인가.’ 이렇게 기성세대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멘붕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상태를 일컫는다. 좀 더 고상하게 말하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할 지경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를 뜻하는 은어다. 또한 돌발적인 상황이나 위기 상황에서 어쩌 줄 모를 때 사용한다. 정말 믿기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도 그 놀라움을 멘붕이라는 말로 사용한다.

멘붕의 상태가 되려면 사건이나 일이 벌어져야하고 그것 때문에 정신적 영향이 있어야 한다. 멘붕이라는 말만 들으면 붕대의 종류 같다. ‘정신붕괴’는 너무 고리타분해보인다. 멘털이라는 영어단어에 자극 받은 정도를 과장하는 ‘붕괴(崩壞)’를 사용했다. 표준어법으로는 절대 탄생할 수 없고 권장될 수도 없지만 하나의 중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럼 도대체 이 말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멘붕의 기원을 다시금 따져보면, 원래 온라인 게임과 커뮤니티다. 이러한 신조어는 온라인커뮤니티를 통해 발생하고 처음에는 소수만이 사용한다. 그러다가 마치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언어의 사용이라는 인식이 높아지면 점차 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른바 백로효과이고 이것이 점점 더 세를 얻으면 밴드웨건 효과처럼 따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때 방송과 연예계가 이런 단어를 만나면 급속하게 확산된다. 멘붕도 마찬가지였다. 멘붕은 대표적인 신조어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서 2011년 최고의 유행어 1위에 뽑혔다. 지금은 연예인들의 행동을 나타내는데 어김없이 등장한다.

본래 특히 게임에서 아이템이 사라지거나 자신의 캐릭터가 쉽게 허물어질 때 갖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말했다. ‘멘붕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정신력이 무너지는 것인데 정신력이 무너지면 곧 패배를 하게 되어 공황에 빠져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오랫동안 공들인 게임구성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때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한 것. 물론 이러한 게임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전혀 동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게임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이 멘붕에는 본래 몇 가지 코드가 얽혀있다. 멘털 붕괴 이전의 단계는 멘털이다. 흔히 스포츠 선수들에게 멘털이 좋다고 쓴다. 위기나 돌발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때 그 선수는 멘털이 좋아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못하면 멘털이 안좋은 선수다. 멘털붕괴가 된 선수는 칭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잘 흔들리는 선수는 유리멘털이라고 평가된다.

한편 멘털이 붕괴되는 상황이라면 정상이 아니다. 이럴 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자신은 본래 실력이나 온전함이 있는데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나 일 때문에 적절한 실력을 낼 수 없을 때, 멘붕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상황이다.

이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 이들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조사한 결과 이 멘붕은 주로 남성들이 검색하고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자는 뿌잉뿌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뿌잉뿌잉은 귀염성을 강조한 말이다. 멘탈붕괴와 같은 좀 과격한(?) 단어와 다르다. 물론 여성들이 멘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정도와 비율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은 이러한 말을 주로 사용하는 것일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게임과 경기에서 정신력을 유지할 때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기에서 게임과 경기는 승리와 패배, 생존과 비생존의 갈림길에 있다. 전쟁터에서 정신줄을 놓으며 죽음을 맞듯이 게임과 경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신을 차려야 살 수 있고, 승리와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이 말이 우리 일상생활로 확산되어가는 점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일상이 안정적이고 변화가 없다면 멘붕이 있을 수 없다. 게임의 경우 정말 변화무쌍하다. 다이내믹해야 한다. 멘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당황스럽고 난처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함의하는지도 모른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도 유행한 것에서 보듯 한국과 같이 역동적인 나라도 없다는 점은 이를 대변한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은 이제 아무도 한국을 나타내는 말로 생각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이 많이 생길수록 멘붕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의 집중성은 세상 오만가지 일들을 접하게 만드니 그 정보들 속에서 당황스럽고 황당하게 여길만한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일들 속에서 멘붕되면 큰일이다. 하지만 거꾸로 그런 일을 많이 당하고 있다는 것은 고생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인의 불안 장애와 스트레스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추측해보면, 멘붕은 비록 진짜 정신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시간으로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상황에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하는 한국인들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절대 정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심리도 내재해있다.

어쩌면 멘털이 붕괴되어 멍을 때릴 때 잠시 인간의 정신이 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단 부정적인 점만은 아니다.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가운데 멘털붕괴는 당연한 것이고, 그때 잠시 쉬며 새로운 적응을 준비해야 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