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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는 과연 WBC 희생양이었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25. 09:30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다시 미국 사람들 이야기를 해야할듯 싶다. 미국사람들은 축구(soccer)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야구와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를 좋아한다. 미국이 월드컵을 열어도 정작 미국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기 일쑤다. 그렇다고 미국 축구팀의 실력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왜 미국인들은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까?

일본의 한 분석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강한 팀이 지는 이변이 속출하는 축구를 싫어한다고 말이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강대국이기 때문일까, 강한 팀이 이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편 강한 것은 열심히 성실히 노력한 대가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강한 영웅을 다룬 문화콘텐츠가 많다. 강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습성이 생긴 것은 소명 의식과 직업에 따른 성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청교도정신이 미국 특유의 개척 정신과 맞물린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축구를 좋아한다. 한국인들에게 약자의 피해의식 문화도 있지만, 약자를 배려하는 정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이변을 기대한다. 따라서 강자만을 배려하는 스포츠 제도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심리학자들은 일반적인 자기 중심적 편향이라고 말할 것이다. 한편 일본인들은 강자앞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약자위에서 군림하는 문화가 있다.

이번에도 한국팀은 WBC의 편파적인 제도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WBC는 ´더블엘리미네이션(double-elimination)´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전력이 강한 팀을 최대한 상위 라운드에 진출시키려는 제도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일본과 다섯 차례의 대결을 벌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강한 팀과 맞붙는 약한 팀은 결국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억울할 수 있지만 미국식 사고방식에서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각에서 강한 팀이 억울하게 탈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니 말이다.

한국팀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 개인주의적인 미국식과 조직적인 일본식 야구를 결합해냈다거나 세대교체를 이루어내고 팀워크에 바탕을 둔 세밀한 조직 야구를 해냈다는 평가도 있다. 토털야구라는 말도 유행했다. 거포중심의 공격야구와 아기자기한 작전야구(스몰볼)도 잘 구사했다고 한다.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과 용병술도 빛을 발했다.

물론 10회 미스사인은 아쉽다. 정말 열심히 잘했다. 그런데 우리의 언론매체들은 일본 팀이 강하다는 것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우리팀 추켜 세우기에 바쁜 일방성을 보인다. 한국팀을 세계 네티즌과 언론, 일본팀이 칭찬해주기를 바란다. 하라 감독이 한국 팀을 칭찬했지만, 그것은 일본 특유의 겉과 속이 다른 빈 찬사이다.

분명 일본 팀은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 결승전에서 많은 안타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출루도 많았고, 그에따라 한국보다 득점 기회도 많았다. 물론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애써 지적하지 않고 너무 강한 팀을 애써 높여보았자 뻔한 소리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민족 감정 차원에서 일본 팀에 대해 차분히 분석하지 않는 것은 다음 대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고 한국야구발전에 도움이 안될 것이다.

일본 해결사 봉중근이 결승전에서 힘을 못 쓴 것은 현미경 야구 같다는 일본의 분석야구 때문이었다. 김태균도 침묵 시켰다. 한국도 분석야구를 구사했지만, 밀렸다. ´스몰볼´ 야구도 무시할 수 없다. 거포가 힘을 못 쓰면 스몰볼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더구나 일본 야구팀이 갈수록 조직력을 확보하고 한국을 제압해 간 과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들은 능력과 개성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경기를 겪을수록 조직력을 갖추어 간다. 메이저리거들이 많은 것이 절대적인 실력이 될 수는 없지만, 훌륭한 선수들이 많을수록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 뉴욕타임스 > 가 보도했듯이 일본이 한국보다 약간 좀 더 나았다는 점(Japan was a little smarter, a little more aggressive and a little better)은 결국 이 두 나라의 야구가 최고의 야구는 아닐 수도 있다.

정신력과 투혼만을 강조하는 야구는 결코 1위에 오를 수 없으며 설령 그래도 그것은 자칫 일시적일 수 있다. 항상 불안불안하다. 또한 김인식 감독의 개인적인 리더십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고교 야구가 60개밖에 안 되는 가운데에서 놀라운 경기를 보인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

야구 경기장은 50년 이상 노후했고,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경기장도 별로 없다. 복합문화시설인 돔구장 마련이 시급하고, 적자구조를 탈피해야할 과제도 있다. 그러한 면에서 일본은 인프라와 저변의 확대와 구축이라는 면에서 여전히 우리보다 강하다. 제대로 된 물적 토대 없이 약자인 우리가 강자인 야구 강국들을 항상 이기기만을 바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열매만 따먹으려는 국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고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