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목소리를 넘어선 화해와 사랑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7. 9. 11. 09:36


-애니메이션은 '목소리의 형태()’ 리뷰

 


목소리의 형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진실은 승리했다. 아무래도 우회하기보다는 깊이 장애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독보적인 작품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각장애와 왕따 문제를 그렇게 담은 작품은 없었다. 애니메이션은 '목소리의 형태()'는 원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본에서 2016년까지 360만부 이상 판매된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이다. 본래는 주간소년 매거진에 연재되며, 2014년 코믹 그랑프리 1위와 코믹 나탈리 대상에서 1, 19회 데즈카오사무 문화상 신생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만화다. 이런 작품을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만화에는 청각장애인이 등장하고, 그 내용이 청각 장애인을 둘러싼 차별과 괴롭힘에 대한 차별 과정이 정면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애에 관해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사례는 한국에서 찾기 힘들다.


그런데 정작 이 작품은 세상에 버려졌던 작품이라는 사실을 접하면 일본이라는 사회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여전함을 짐작하게 한다. 이 작품은 본래 무명작가의 단편이었는데 주간 소년 매거진에 투고되었고 작품상을 인정받아 신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은 세상에 공표되지 않았다. 애초에 매거진 SPECIAL’에 게재하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어떤 매체에도 실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고,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청각장애인 왕따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데뷔작은 묻히는가 했다. 그런데 상황은 뜻하지 않게 흘러갔다. 이 작품의 작가 오이마 요시토키(大今 良時)SF 소설 원작 <마르두크 스크램블>을 연재하게 되는데, 이 만화가 인기를 얻자, 작가의 데뷔작에 대해 궁금증이 일게 되었다. 그래서 원직이 20112월에 해당 잡지에 공개됐고, 마침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당시 최고의 인기작인 <진격의 거인>, <악의 꽃>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 2년 뒤 리메이크작이 게재되는 데 보통 때마다 6만부 이상이 판매되면서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한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 때문에 이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일까. 이 작품은 단지 청각장애인이 차별적인 현실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주변의 인물들이 겪게 되는 경험과 상황을 내밀하게 보여줌으로써 갈등과 상처를 해결 치유하는 통합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일상이 무료 따분했던, 남자 주인공 이시다 쇼야는 마침 전학 온 여학생 니시미야 쇼코를 이상하게 한다. 니시미야 쇼코는 공책에 글자를 써서 필담을 했기 때문이다. 쇼코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 글자를 통해 소통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곧잘 처음 시작은 사소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일이 꽤 있다. 어린 호기심이었을까. 그러나 단지, 괜히 건드리고 장난치는 수준에서 심한 폭력이나 위해가 벌어진다. 그 상징이 보청기였다. 이시다 쇼야는 니시미야 쇼크의 보청기를 5개월 동안 8개나 망가뜨리는데 모두 합해 가격이 17200만원이나 된다. 이 정도면 범죄였다. 더구나, 점차 왕따로 번져 나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시다 쇼야가 혼자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같은 반 급우들이 참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집단 역학 심리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두 번 했던 심한 행동들이 하나둘 모여 집단적으로 무감각하게 한 것이다.

결국, 청각장애인 니시미야 쇼코는 엄청난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고 학교를 옮기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악화되었다. 이시다 쇼야는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는 순간 담임교사가 직접적으로 그의 이름을 호명하게 된다. 모든 책임을 쇼코에게 지우며 무엇보다도 급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쇼코는 왕따를 하던 위치에서 왕따를 당하는 위치에 처하게 된다. 니시미야 쇼코는 그런 일련의 상황에서 항상 밝게 웃고 대한다. 반발 저항심일까. 그것 자체가 못마땅해 더 강하게 괴롭히고 만다. 그러나 이시다 쇼야는 뒤늦게 쇼코가 책상에 씌인 낙서가 자신의 책상에 있던 것임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쇼코의 책상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쇼코에게 가한 자신에 대한 비난의 말을 다른 학생들이 쓴 책상이었던 것이다. 쇼코는 청각장애인인 자신 때문에 쇼야가 그런 비난의 왕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쇼코는 뒤늦게 쇼야를 찾아 나서지만 자신과 마지막으로 크게 싸우고 다른 학교로 간 뒤였다. 그리고 6년이 지난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쇼코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절대 고독의 생활이었고, 친구하나 없이 모두 다 낯선 타인들일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으로 사과를 위해 쇼야를 찾아보기로 한다. 마침내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 때 친구들과도 같이 접하게 되면서 초등학교 시절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계기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때의 상처가 더 커지거나 아프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장애인 학생을 중심에 두고 주변 학생들의 상황과 처지가 어떠했는지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 장애인 편을 들지도 않고, 또한 비장애 학생들을 악인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같이 화해 통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영화에서 장애인을 왕따를 시켰다는 소문은 결국 쇼코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 연출자는 가해자를 단지 나쁜 행위를 한 자로 규정하고 격리하는 것을 넘어 장애 비장애인을 통합의 주체로 세웠던 것이 인상적이다. 괴로움에 쇼코는 사과를 할 뜻으로 수화 교실에 다니는 쇼야를 찾게 되고 도망치는 쇼야에게 노트를 돌려주면서 수화로 자신의 뜻을 전한다. 수화를 배운 쇼야를 보고 쇼쿠는 "그 때,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하면서 자신의 후회를 쇼코에게 전하며 "지금은 알 것 같아. 너의 목소리. 너와 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라고 말을 한다. 마침내 쇼코는 이런 쇼야의 손을 잡기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일선 학교의 교육도 중요해 보였다. 학교 측과 교사는 통합적 관점에서 전혀 교육을 하지 않는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자 그 문제의 원인을 어린 학생 에게 돌려 자신의 책임을 면피했다. 참으로 무책임한 형태이며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화해와 상처 치유는 학생들 스스로 각고의 노력 끝에 간신히 했을 뿐이다. 교실에서 잘 대처 되었다면 두 사람의 목숨을 일으킬 뻔 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