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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 돌파 아바타의 역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3. 1. 25. 07:55

-아바타의 환경 역설

 

                                                 김헌식(대구대학교 대학원 외래 교수, 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2009-2010년 영화 ‘아바타’가 개봉했을 때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뒷편에서 직원들이 관객들이 쓸 안경을 닦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3D입체 안경을 착용하고 영화를 봐야 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안경 준비가 필수였다. 이렇게 안경을 닦는 이유는 미처 안경 숫자가 부족한 점이 작용하고 있었고 경비 절감도 생각해야했다. 하지만 이런 직원들의 노동도 곧 사라졌다. 하나는 이미 영화 티켓에 안경 비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당연히 관객에게도 지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했다. 또하나 위생적인 관점에서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아무리 닦아도 다른 관객이 한 번 쓴 안경을 다시 쓸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기 때문이다.

10여년이 지나 다시 아바타가 속편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처음부터 입체관람용 안경이 개인에게 무료로 지급되고, 이는 한번만 사용되었다. 1월 18일 기준으로 400만개가 넘었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관객이 한 번 쓴 안경은 모두 버려진다. 지난 10년 사이 코로나 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위생 관념이 강해진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양산되는 쓰레기양 때문에 환경 감수성도 많이 증가한 상황이다. 영화 ‘아바타’를 이렇게 쓰레기를 양산하면서 봐야 하는가 싶다. 더구나 해양 생태계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영화인데 말이다. 물론 플라스틱이 해양 생태계를 어떻게 교란하는 지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해양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은  20세기적이다.

왜 20세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영화 시리즈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원의 약탈과 동물의 남획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속편 ‘물의 길’에서는 마치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바로 툴쿤이라고 하는 해양 생물체를 사냥하는 것이다. 이 툴쿤을 고등 생명체로 그리고 있는 점은 겉모습과는 달리 해양 생명체의 지적 수준을 인간 이상으로 가치 평가해주어야 한다는 관점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툴쿤이 미세 플라스틱에 괴로워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즉 3D입체 안경에서 나온 쓰레기가 미세 플라스틱이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는 하나의 인과 고리 속에 있다. 

즉 환경을 위협하는 것은 특정 누군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긴다면 20세기적 사고라는 이유다. 마치 특정 탐욕의 악당들만이 환경을 오염 시키고 생명체들을 해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있다. 이러한 점은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근본적으로 한계에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로 보인다. 지난 12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로모션 행사에서 제임스 카메론등 제작진은 돌고래 쇼를 감상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여 관련 글로벌 시민단체에서 비판을 받았다. 잔혹하게 잡혀 와 갇힌 채 사육 조련된 돌고래 들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돌고래 쇼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쇼가 끝나고 "모든 돌고래가 이 쇼에 출연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확신한다"고 농담하며 "나는 돌고래의 지성과 사회성, 교감 능력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돌고래를 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해명을 했는데 자신은 돌고래 쇼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망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과연 이 말이 진실일까? 이는 영화의 내용을 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는 문제다. 왜 일본 측이 돌고래쇼를 준비했을까도 역시 그러하다. 아바타 1에서는 나비족이 익룡 유형의 이크란을 길들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게 제이크 설리에게 전수된다. 특히 가장 거대하고 다루기 힘든 토르크를 길들이는 제이크는 토르크 막토 즉 부족 지도자가 된다. 도쿄 프로모션에서 돌고래들이 사육사를 부리에 태워 높이 던지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이크란이 길들여지고 교감을 한다는 생각은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왜 이크란이 인간을 태우고 무겁게 날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전투도 해야 한다. 왜 그러한 행동을 해야하지는 동기부여를 짐작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숲에서 바다로 공간이 이동하는 아타바 속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날치류의 이크란이 등장한다. 단지 바다 생명체이기 때문에 숲과 다른 조건에서 길들여야하는 까다로움이 등장할 뿐 주종관계의 모순은 여전하다. 역시 왜 날치 이크란이 인간을 태우고 전투에도 나서야 하는지 그들의 관점에서 말하지 않는다. 또한 툴쿤이라고 하는 고등 생명체가 소년과 교감하고 돕는 장면들도 모두 인간중심적이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지 않는 인간을 오히려 이해하고 능동적 헌신을 하는 동물 캐릭터들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게 구성했다. 주인공들은 선하기 때문에 무조건 생태적으로 옳고 중심이라는 20세기 이분법적 사고는 계속된다. 이러한 사고가 있는한 여전히 자연생태는 인간으로 인해 위험할 수 있다.

생태의 위기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로 인해 벌어지고 있다.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와 재원을쓰고 자원을 소모하고 있으며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다.영화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그런 정도의 인식은 하고 있지 않나. 실천이 안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