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비교문화

중국, 안방극장 쇄국정책 … 한류 겨냥했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2. 2. 18. 14:54

중국, 안방극장 쇄국정책 … 한류 겨냥했나



중국이 TV 황금시간대(오후 7~10시)에 외국 드라마와 영화 방영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따라 한 해 1500여만 달러(2010년 기준)에 이르는 한국 드라마의 대중(對中) 수출 전략에 비상등이 켜졌다.

 14일 신화통신은 국가라디오·영화·텔레비전총국(약칭 광전총국·廣電總局)이 지난 9일 각 TV 방송국에 '외국 영화·드라마 관리 강화 방안에 관한 통지'를 하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시청률이 가장 높은 오후 7∼10시 시간대엔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일절 방영할 수 없다. 매일 드라마·영화 편성에서 외국산의 비중도 4분의 1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 광전총국은 국무원 산하 직속기구로서 국내 영상미디어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지역방송을 포함한 중국 전역에 적용되며, 위반 시 엄중 처벌된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이번 조치는 외국산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타깃은 한류 콘텐트로 보인다. 한국의 대중 드라마 수출은 2010년 1519만9000달러(약 170억원)로 전년 대비 172%나 급증했다.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불을 댕긴 한국드라마 붐은 2005년 '대장금'이 그해 최고 시청률 9%(동시간대 평균 3%)를 기록하면서 수직 상승했다. 최근에도 '가을동화' 등이 높은 인기를 누렸다. 2008년 중국 네티즌들이 중국중앙방송(CC-TV) 드라마 채널에서 주요 시간대에 방송하는 작품이 한국산 일색이라고 성토해 신문기사로 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실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문서로 공식화됐다 뿐이지 최근 중국 TV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한국 드라마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새 지침이 실질적으론 이미 반영돼 왔다는 것이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박창식(김종학 프로덕션 대표) 협회장은 “그동안에도 한국 드라마 방영 조건으로 주·조연에 중국 배우가 3~4명 포함될 것과 중국 촬영분이 있을 것 등을 내세워 왔다”며 “규제가 심한 나라에서 올 것이 왔을 뿐”이라고 했다.

 업계는 공동제작 형태로 중국에 우회 진출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김종학프로덕션이 제작하는 '풀하우스2'는 중국 자본을 30% 투자받고, 전체 20부작 중 2~3부 정도를 중국 로케이션으로 찍고 있다. 중국 방송국이 제작하는 드라마에 한류 배우가 출연하거나 국내 프로듀서·작가·스태프가 현지 제작에 합류하는 방식도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영일 정책연구원은 “중국에 완성품을 수출하는 데는 규제가 많기 때문에 양국 합작을 통해 자국산으로 인정받는 게 차선책으로 보인다”며 “채널 간 유대와 공동위원회 등 정부 차원의 지원 노력도 계속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다 주목할 것은 중국이 미디어콘텐트산업에서도 '대국굴기(大國<5D1B>起·대국으로 우뚝 일어섬)'하려는 움직임이다. 중국 문화산업은 2004년 이후 평균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중국 도시 인구가 문화오락 상품에 쓴 돈은 총 2조 위안(약 357조원)을 넘어섰다. '미디어=프로파간다(선전)'로 규정해온 중국 정부는 시장 확대와 함께 콘텐트 통제도 강화해 왔다. 특히 지난해 10월 '사회주의 문화 대발전'을 주제로 공산당 17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7기6중전회)를 개최한 이후 TV를 포함한 각 문화 분야에서 보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올 초 주요 TV 황금시간대에서 오락 프로그램을 다수 없애고 뉴스·경제·문화·법률 등 교양 프로그램으로 대체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다. 공산당 기관지인 '추스(求是)'는 신년호에서 “(서방) 적대 세력들이 중국의 서방화와 분리를 획책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중국에 (서방)문화를 침투시키려 한다. 이에 대한 방어와 대응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중국은 안방 문은 걸어 잠그면서 해외 콘텐트 수출에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문화상품의 수출액은 187억 달러로서 전년 대비 22.2% 성장했다. CC-TV는 미국 워싱턴에까지 진출했다. CC-TV 아메리카를 통해 매일 4시간 방송을 내보내 중화문화의 국제 영향력을 제고한다는 구상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강혜란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theother/

 

[만물상] 한류 수출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까마득히 먼 윈난성(雲南省), 그중에서도 오지인 샹그릴라에서 만난 40대 여성 공산당 간부가 "한국 여자들이 부럽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피부가 고와서"라고 했다. 티베트 고원 중턱에 사는 샹그릴라 사람들은 햇볕과 바람에 노출돼 살갗이 거칠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한류 팬이었다. 그 즈음엔 '대장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한국에 갔다가 비싼 한국 화장품을 사왔다"고 자랑했다.

▶중국에서 한류 팬을 가리키는 '하한쭈(哈韓族)'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1990년대 후반이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같은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하면서였다. 1980년대 일본에선 홍콩 영화의 유행을 '항류(港流)'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대만 대중문화 붐을 가리키는 '대류(臺流)', 중국 문화의 인기를 일컫는 '화류(華流)'라는 말도 있다. 한류는 이들과 경쟁하며 전 세계에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다.

 

▶1962년 우리 국민소득은 87달러, 수출액은 5481만달러였다. 그 해 열일곱 살 소녀 가수 윤복희가 '코리안 키튼즈'라는 걸그룹을 만들어 동남아 공연에 나선 게 한류의 시초쯤일 것 같다. 궁핍하던 그 시절을 윤복희는 이렇게 돌아봤다. "나는 무대가 아니면 길거리에 내던져져 있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밤엔 명동 시공관 분장실에서 자거나 길거리 교회 지하실에서 자기도 했습니다."(윤복희 자서전 '저예요, 주님')

▶지난해 한국의 영화·TV·음반 수출액이 7억9400만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문화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은 1997년 500만달러 첫 수출을 올릴 때까지 한 푼도 없었다. 14년 만에 160배 성장한 셈이다. 한류가 넓게 퍼지면서 관광객이 급증하고 패션·미용 같은 관련 산업까지 덕을 보는 것을 감안하면 한류의 효과는 드러난 액수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때 "한국 반도체·여자골프·바둑이 세계 일등이 된 것은 정부 안에 그 분야들을 담당하는 과(課)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있었다. 정부가 섣불리 '지원' 운운하며 간섭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냥 놔두는 게 저마다 자생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지금 한류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