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정준영..연예인 실명 보호와 알권리의 경계를 어기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9. 27. 16:20

헌법 제27조 4항은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조항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무죄추정의 대상은 형사 피고인이다. 형사 피고인 조차 무죄 추정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형사 피고인이 아니라면 어떨까. 당연히 더욱 유연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

아직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되지 않고 범죄의 혐의점도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무죄 추정은 인신 구속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식적 구속이다. 이는 디지털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무차별적으로 실명이 공개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지와 인지도를 통해 활동 기반이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연예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성추문에 휘말린 정준영은 2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논란이 된 동영상은 몰래 카메라가 아니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성추문에 휘말린 정준영은 2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논란이 된 동영상은 몰래 카메라가 아니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정준영 사례에서도 미디어 매체들은 그를 성폭력 범죄자로 그 실명을 공개해버렸다. 물론 사실 확인관계는 없었다. 단지 그런 제기가 있다는 점을 그대로 전달해도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칫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그 상처는 오래 남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그들이 공인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은 감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공인이 아니라 유명인일 뿐이다. 공인이란 공적인 업무를 맡거나 공적인 지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나라가 주는 세금을 그에 직무와 지위에 상응하여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연예인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서만 자신의 입지와 경제적 수익을 얻는다. 그 대가는 그들의 이미지와 인지도에 따른다. 따라서 알권리의 대상도 아니다.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그냥 관음증적 호기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적 언론 개념과 제도들이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은 공인이나 알권리의 대상이 아니라 인권을 가진 개인이다. 인권의 주체는 자신의 동의에 따라서만 사적인 내용들이 공개 되어야 한다. 이런 대목에서 강력하게 대응을 하지 못하는 연예인일수록 무차별적으로 당하는 경향이 있다. 즉,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의 경우에는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약자의 위치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들이 타켓이 된다. 범죄 의혹에 관해서도 의혹일 뿐, 마치 범죄자인 것처럼 보도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책임은 잘 따르지 않는다. 이는 단지 연예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실명이 공개 되는 현상은 이제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달라진 미디어 연계성은 언제 누구라도 즉 일반 시민이라고해도 언제든지 이런 공개적인 노출에 띠라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

법의 원칙이 불편부당한 지도 의문이다. 모욕죄의 경우, 제 3자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해도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루머로 실명 공개를 해도 아무런 조치가 따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는 법의 형편성이나 균형성 면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인터넷을 통해 뭇사람들에게 범죄자로 각인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말이다. 물론 그에 대한 수습은 오로지 그 당사자의 몫이 되어 버린다. 오로지 혼자 잘 감내하며 버텨 나가야 한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 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의 책임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더구나 그들은 대중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을 제공해 주는 이들이다. 대리만족이라는 현실 대체재를 주기도 한다. 그들이 비난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함양미달의 콘텐츠를 줄 때여야 한다.

또한 무조건 폭로식의 보도태도만이 아니라 격화된 미디어 경쟁 환경이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면은 이번에 정준영 사례에서도 여실히 증명되었다. 일단 터트리고 보자는 심리의 목적은 매우 간단하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페이지 뷰수를 올리기 위해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의 경우에는 포털에서 높은 클릭 수를 차지하는 환경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왔다. 포털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미디어 현실은 앞으로도 이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양산될 것이다. 이런 미디어 집중성을 해소하는 일도 언제나 긴요한 일이다. 만약 이런 몰인권적인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면 이런 미디어 환경의 모순을 간과하거나 은폐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초고밀집의 네트워크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럴수록 인신을 넘어선 인지의 구속 현상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인지 자본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붕괴시킬 수 있는 루머와 카더라 담론은 횡행할 가능성이 많다.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다. 무엇보다 생각할 점이 있다. 그 현상의 피해자들은 자칫 인지적 약자들일 수 있다. 인지적 약자들이란 인지되는 것에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인지도가 해쳐질까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능동적인 매니지먼트가 가능한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같은 연예인 스타라고 해도 그들은 매우 층위와 스펙트럼이 다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구분있는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약자들을 위해서 공공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당장에 보이는 한류의 과실에 탐을 내기 보다는 이런 상황의 개선이 정책 주체가 할 역할이기 때문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