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통쾌하다거나 재밌다거나의 의미로 '사이다같은 맛'이라고 표현한다. 인터넷 화면 캡처.
요즘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이다 같은 맛'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특히 젊은 세대의 문장에 이런 단어의 등장을 흔히 볼 수 있다. 왜 다른 무엇도 아닌 사이다일까. 비슷한 음료로 탄산수나 콜라도 있는데 말이다.
사이다와 콜라는 모두 청량음료다. 하지만 인스턴트 음료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탄산수에 설탕물이라는 점도 다르지 않다. 요즘 설탕에 관한 논란이 많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콜라나 사이다는 차이가 없겠다. 사이다나 콜라는 모두 살을 찌게 만들 뿐이다. 비만의 원흉이기 때문에 웰빙 라이프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그럼에도 사이다 같은 맛이라고 표현한다. 일단 언제 사용되는 지 보자. 우선 이는 반드시 음식에만 국한된 용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문화 콘텐츠나 현상을 바라보고 평가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 이런 말을 사용하고는 한다. 사이다는 콜라와 다른 감각적 즐거움을 갖고 있다. 사이다는 일단 시각적인 청량감을 지닌다. 콜라와 달리 투명한 액체를 갖고 있고, 탄산수의 기포가 확연하기에 깨끗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웰빙 열풍이 불었을 때 한 사이다 회사는 이러한 특징을 잘 살려 광고를 했고 크게 차별성을 지니며 성공했다.
무엇보다 사이다는 청각적인 느낌을 통해서 그 시각적 감각을 강화했다. 여기에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감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음식에 사이다가 많이 쓰인다는 사실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예컨대, 깍뚜기와 나박 김치, 동치미를 담글 때 사이다를 많이 사용한다. 투명한 액체의 사이다는 단맛과 시원한 맛을 동시에 충족 시킨다. 콜라를 사용한다면 이러한 음식에 사용할 없다. 이런 음식 재료 사용을 모두 다 인지하고 있다는 말은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충분이 그러한 맛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자주 젊은 세대가 쓰는 단어로는 꿀잼이 있다. 사이다 같은 맛은 꿀잼이라는 말과는 달리 즉응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꿀잼이란 뭔가 찐뜩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꿀이라는 말은 달콤함을 내포하고 있으니 시원한 맛과는 다른 결을 가진 감각적인 즐거움을 말한다.
사이다는 쿨한 느낌을 준다면 꿀잼은 핫한 느낌에 기우는 느낌이 있다. 쿨한 태도를 강조하는 젊은 세대에게 사이다 같은 맛이라는 표현은 더 적절하게 사용될 만하다. 특히 청년 심리학의 관점에서 젊은 세대는 세상을 단순 명확하게 파악하기를 더 좋아한다.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도 아직 축적하지 못했으니 그 감각의 정도에 충실해야 한다. 반드시 청년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은 단순 명확한 파악을 원한다. 이를 인지적 구두쇠 효과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울러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그런데 탄산수와 다른 점도 생각하게 한다. 탄산수는 그냥 시원한 맛이다. 달지 않다.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요소는 없는 것이다. 현실을 잠깐이라도 잊게 하거나 고통을 잊게 만드는 요소가 없으니 탄산수는 덜 매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탄산수 같은 맛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사이다 같은 맛이란 어느 정도 인스턴트 요소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감각적인 흥미가 많을수록 이에 부합한다. 발효 식품처럼 은근한 맛이라면 사이다같은 맛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답답함을 단번에 시원하게 풀어주면서 흥미를 유발하는 대상에 대해 사이다 같은 맛이라고 표현을 한다. 맛이 시각적 즐거움과 연결되는 것은 그들이 이미지 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공감각을 느낄 때 쾌락은 더욱 증가하는 법이다.
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정보는 너무 많다. 짜증이 나게 만든다. 그러한 상황이 될수록 더욱 더 감각적인 재미가 부각될 것이다. 시원한 무엇이다. 그러나 그러기 쉽지 않아서 오히려 그렇다. 스마트 모바일 환경이 진전될수록,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순간적으로 이해하고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이어야 한다. 머무는 시간이 더욱 더 줄어드는 하이퍼텍스트 환경이다.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한다. 사이다 같은 맛은 이런 인스턴트 컨텐츠의 속성이 강할 때 부각이 되는 것이다.
꿀잼이란 좀 더 오래 느낄 수 있는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하나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이다가 많을수록 꿀같은 지극한 맛을 원할 것이며, 지극한 꿀맛이 오래일수록 사이다 같은 청량감의 맛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각각의 성향은 이미 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꿀단지는 옆에 두고 싶지만 사이다는 그렇게 옆에 두고 싶지는 않는다. 순간순간 소모될 뿐이다. 우리는 사이다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