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지현의 의상 협찬은 시청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0. 10:19


400년만에 도민준(김수현)이 자신의 사랑 천송이(전지현)와 만나게 되는데, 천송이의 직업은 다름 아닌 연예인 스타이다. 더구나 그냥 얌전한 캐릭터라기보다는 허영의식이 다분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여자 주인공을 많은 직업 가운데 이런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것일까. 

독특한 소재들이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송이가 탁월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그녀가 입은 옷은 천송이 패션으로 검색어에 오르내린다. 가방이나 장신구 등도 관심의 대상이며, 심지어 실내에서 입고 있는 홈 패션도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매회마다 그녀의 옷은 실험성과 혁신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이 용인되는 이유는 그가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천송이는 내실보다는 허영끼가 다분한 캐릭터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맘껏 비웃기도 하지만 선망의식을 버리지 못한다. 그 선망의식의 한 가지 증상은 바로 패션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지니고 최고의 인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적으로나 온전한 정신 건강을 갖추지 못한 결핍의 존재가 될 때 시기와 질투는 감소된다. 동일시와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며, 그가 입은 패션 아이템들이 좀 더 모방심리를 부추긴다. 

물론 전지현은 늘씬한 신체에 비해 작은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통해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하고 있다. 타고난 신체 구조가 뒷받침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끊임없는 관리의 소산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단 신체구조상 그녀가 입거나 걸치고 착용한 아이템들은 모두 일반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전지현은 드라마 촬영 전부터 각고의 몸매와 피부 관리 모드에 있었고, 이는 드라마 촬영 가운데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옷에 맞는 몸매를 관리 유지해주어야 한다. 즉 몸을 옷에 거꾸로 맞추어 버리는 셈이 된다. 

도민준은 젊은 청년 캐릭터이지만, 대학 교수이면서 많은 부를 지니고 있다. 외계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천송이는 수많은 옷을 착용하지만, 이는 스스로 돈을 벌어 구입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것은 드라마에 사용되는 패션들이 모두 협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협찬시에는 적게는 기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이 주어진다. 그렇게 주어지는 이유는 드라마를 통해 많은 소비자들이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별에서 온 그대'는 패션광고를 위해 천송이라는 연예인 캐릭터가 인위적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송이를 통해 각인된 패션 아이템이 그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패션에 잘 어울릴 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전지현의 이미지 때문에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전지현이 아니라면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전지현은 합리적 이성적 소비자 선택을 마비시키면서 막대한 출연료를 받는 셈이다. 많은 이들이 정말 자신의 신체에 맞는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게 되는지는 그녀가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협찬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다양한 옷을 입고 런어웨이 하듯 드라마 촬영장을 휘휘 거리면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패션쇼 중계방송이라면 시청자들이 몰입을 하거나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다. 패션의 선택 기준이 드라마를 매개로 이루어진다면, 패션 디자이너들이 진정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운 셈이다. 패션 디자인의 왜곡된 유통구조는 전지현 이코노미의 동력이다. 디자이너들이 드라마 협찬에 울고 웃고 목을 매고 있는 현실에서 창조경제가 정말 구축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 선진적인 패션 제품들이 정말 세계를 선도할 수 있을지 성찰하며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막연한 환상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전국민의 체형과 외모에 맞는 패션 코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 적절한  코칭은 다시 패션 디자인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전지현에게 쏟아지는 패션 아이템은 한국인의 일반 체형과 동떨어진다. 드라마는 패션 쇼장에 그쳐서는 안되는 이유다. 다양한 체형의 여성을 통해 패션 코칭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와 장면 연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