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이론적 인공지능을 넘어
글/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교수, 정보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거나 쓰던 언어를 갑자기 없앤다면 사람들은 대화와 소통을 못 할까?
그럴 수도 있지만 새로운 언어는 생성될 수 있으며, 이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다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점은 새로운 미래 세대에게서 더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
디즈니의 2023년 실사 영화에서 인어공주 에리얼(Ariel)은 왕자를 만나기 위해 바다 마녀와 거래를 한다. 인간으로 거듭나는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맡겼는데 조건이 있다. 바로 3일 안에 인간 세계의 왕자와 키스를 하면 다시 목소리를 돌려준다는 것. 여기에서 키스는 왕자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녀는 처음부터 목소리를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나아가 온전히 인어공주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목소리를 거래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인어공주가 왕자의 목숨을 폭풍우 속에서 구해주었어도 목소리를 잃었으니 그러한 사정을 밝힐 수가 없을 것으로 여긴 것이다. 또한, 대화가 되지 않으니 사랑이 싹틀 수 없고, 키스 따위를 못 할 것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비록 목소리가 없어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인어공주 에리얼(Ariel)은 왕자와 교감을 할 수 있었고 사랑은 깊어졌다. 그러자 마녀는 당황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인간으로 변신해 둘을 떼어 놓으려고 나선다. 마녀의 개입은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결국은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되찾으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만약,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되찾지 못했다고 생각해보자. 인어공주가 왕자와 관계를 지속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졌을 것이고, 왕자는 그녀를 배우자로 선택했을 것이다. 마녀가 우려한 그들의 사랑은 목소리와 상관 없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둘만의 기호와 상징을 사용했을 거고, 이는 육지와 바다 어느 곳에 없는 언어였을 것이다.
1769년 1월 16일 제임스 쿡 선장과 선원들은 영국 군함 인데버호에서 내려 육지에 상륙하기로 했다. 그곳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최동남단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에 있는 굿 석세스만이었다. 물과 땔감을 보충하기 위해 오른 그들은 이전에 하지 않았던 시도를 작정했다. 바로 원주민과 대화를 나누는 것.
대단한 용기였다. 무리를 지어 있는 원주민에게 다가간 그들은 우선 막대기를 들어 보였다가 옆으로 던졌다. 그 의미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이해할까 싶었다. 하지만 이를 원주민은 이해했고 그에 자신들의 방식으로 응답했는데 제임스 쿡 선장 일행도 우호적인 느낌을 이해했다. 친밀감을 표시하고 서로 어울린 그들은 배에 원주민을 승선시키기도 했다. 고기와 빵을 먹고 브랜디는 목이 타는 듯하다고 표현한 원주민들은 두 시간쯤 뒤에 뭍에 가겠다고 표현한다.
서로 통하는 언어가 없는데도 그들은 충분히 대화할 수가 있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통하는 언어가 없을 때는 새로운 언어체계가 급조된다. 자신들만의 기호와 상징을 만들어 가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새로운 언어의 탄생이었다.
인어공주도 인간 왕자와 나름대로 언어체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원주민이나 인어공주가 그대로 더 지속했다면 새로운 언어는 더욱 정교하게 바뀔 것이다. 예컨대 아이티 크리올어는 18세기에 프랑스어와 서아프리카 노예들이 썼던 언어가 혼합되어 생성되었고 지금은 1천만 명 이상의 사용자로 불었다.
1970년대 말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 청각 장애 학생들은 공인된 수어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사, 비장애인들과 대화할 수 힘들었다. 그러다 손으로 뭔가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니카라과 수어의 탄생이었다. 새로운 청각 장애 학생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점차 그 언어는 정교하게 생성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언어는 더욱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들은 인공지능 이론을 달리 보게 한다. 현재의 의사소통이론은 전기 공학자였던 클로드 세넌의 연구에 빚지고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 작성 기밀 연구를 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다. 바로 정보이론의 아버지로 불리게 하는 이론의 시작이었다. 그의 이론은 전기 신호처럼 인간의 언어는 발신기와 수신기 전달하는 것과 비유되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발신기는 부호화하고 수신기는 이를 다시 원래의 메시지로 복호화한다. 사람이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귀로 듣는다. 전화기로 말을 하면 상대방은 듣는다. 이메일을 보내면 다른 이가 그것을 받고 인식한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동영상을 전송 수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 이르러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같다고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것이 바로 인공지능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정보이론에서는 원래의 메시지를 잡음으로 훼손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원본 메시지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보존되어 온전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마치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편지는 전혀 변함이 없이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 위를 넘어 뭍에 닿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과연 새로운 창조와 진화를 위해 바람직할까. 편지는 변함이 없다. 틀리든 맞든. 인간은 즉각 대응적이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상대에 따라서 변화한다. 그러면서 의미는 물론이고 언어도 새롭게 그에 맞춰 달라지게 생성시킨다. 그 때문에 많은 신조어가 생긴다. 수사, 은유, 농담, 재치 등은 모두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이 즐겨 쓴다.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많이 활용하고 시도하는 패러디는 이를 종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사실 지능이 높은 즉, 아이큐가 높거나 정보가 많은 즉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외려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서툴고 매력도 덜하다. 수사, 은유, 농담, 재치, 패러니 등 과연 인공지능이 이러한 점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약간은 할 수는 있겠지만 다변하고 순발력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 경계선을 구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즉각 대응적인 반응이 우선이지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구현할 수 있는 창조적 역량이자 결과물 산출의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언어’라는 책에서 모텐 크리스티안센과 닉 채터는 인간의 언어 생성과 진화에 대해 제스처 게임이라 칭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언어를 제스처 게임으로 본다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고 제스처 게임으로서 언어 은유는 언어가 다른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정해진 부호를 이용해 고정불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을 암시한다.” 라고 했다. 또한 그들은 “그들은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창의력은 물론 장난기까지 필요할 수 있다. 실마리를 해석하는 일은 단어 그 자체만이 아니라 앞서 들은 이야기, 당면한 주제와 관련한 알고 있는 것과 현재 상황과 움직임, 감정 등까지 포함해야 한다.”라고 했다.
언어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은 무엇보다 현재 지금이 매우 중요하다.
감성형 인공지능이 주목받고 있지만, 단순히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관계성 속에서 순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새로운 형식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멀티채널이나 모듈을 넘어서서 멀티모달의 시대라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더 즉각 대응적이고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지식과 정보를 통해 언어를 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어울리면서 그 같은 진화를 만들어 간다.
더구나, 한사람과 나누거나 지속하는 관계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 속에서 많은 시간 속에서 상호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 간다. 생성형 인공지능 등은 여전히 과거 데이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제한적인 피드백을 수용한다. 그들은 사람의 얼굴이나 몸짓을 읽거나 새로운 기호나 상징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창조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감성적으로 표현을 해도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원본의 메시지가 잡음을 뚫고 온전한가, 옳으냐 그르냐의 세계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옮고 그름의 모범생들에게 생성형 인공지능 등은 위협적이지만 본래의 인간의 즉응적 진화 궤적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덜 위협적일 것이다. 정답만을 추구하고 온전한 질서를 더욱 가중치 있게 고집하던 영역은 그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을 강요했던 시대는 저물고 알파 세대는 정보이론에서 구축한 의사소통의 틀에서 벗어나 좀 더 즉응적 창조력을 배가시키는 쪽으로 더욱 진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