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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표절이 박지성에게 부끄러운 이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23

<김헌식 칼럼>이효리 표절이 박지성에게 부끄러운 이유

 2010.06.25 11:10

 




[김헌식 문화평론가]스포테이너는 스포츠와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급조된 단어다. 여기에서 스포테이너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애써 '사람'에 함몰된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현상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이다. 

이 스포테이너와 이효리의 표절이 무슨 관계일까.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인다. 당장에는 없지만, 좀 더 맥락을 연결해보면 깊은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실체성 여부'는 물론이거나와 적어도 '자생성'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여겨진다. 

스포테이너는 자생생이 기본이어야 된다. 여기에서 자생성은 무슨 말일까. 스포테이너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바로 박지성이나 김연아 선수와 같다. 그들은 계속 좋은 경기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대중들이 선호하고 대중매체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되기에 이른다. 

이효리 표절사건의 핵심이 본인이 자신이 발표한 노래가 표절인지 사전에 알았는가하는 점에 모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효리라는 가수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알고도 이를 묵인했다가 자진 시인한 것도 부차적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애초부터 이효리를 뮤지션으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효리는 이른바 만들어진 가수이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 여부에 대해서 표절 여부를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공방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효리가 음악적 역량이 뛰어나 대중이 선호한 것도 아니다. 하나의 이미지 상품이라는 것을 충분히 다 알고 소비해왔다. 하지만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독자적인 생존 능력의 문제이다. 그것은 이효리를 둘러싼 기획제작 참모진들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문제이다. 

사실 이효리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근본적인 음악적 허약성이다. 이효리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그에 상응하는 노래를 계속 뒷받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렇기 때문에 표절의 유혹에 노출이 되게 마련이다. 음악적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높은 기대치의 결과물을 충족하려는 욕망은 교묘하게 표절을 숨긴 곡들에 달려들게 만든다. 

이효리는 가수를 벗어나 다른 영역-MC와 연기자의 영역으로 진출하고자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영역으로 맴돌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음악의 결과물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생산물은 아니었다. 음악적 '불임'이었다. 더구나 그러한 불임이라면 다른 걸그룹과 마찬가지의 특징을 보인다. 

대중 가요계를 휩쓸고 있는 걸그룹은 이른바 섹시 컨셉의 여성가수들을 궤멸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효리에게 새로운 앨범은 많은 부담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걸그룹의 범람은 이른바 물량공세를 통한 음악적 파이의 독식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고, 그 가운데 이효리에게 돌아갈 파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표절곡의 접근은 쉬웠는지 모른다. 

스포테이너의 장본인들은 지속적인 자생력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생명이 보장된다. 차두리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실체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박지성의 경기 결과물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인기 가수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진하고 남는 음악적 결과물은 빈약해진다. 그것은 철저하게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단기적 수익을 남기는데 치중하는 시스템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실제 결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물을 위해서 박지성과 같은 존재는 스스로의 자생력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대중문화계의 결과물은 과연 그 결과물을 누가 만들었는지 실체가 있는지 불분명하다. 그러한 면에서 걸그룹이 당장에는 인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자생적 실체가 없는 면에서 언제나 표절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효리의 몰락은 걸그룹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며 그런 면에서 침몰하는 배에서 다른 배로 옮겨타는 듯한 연기자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표절 논란은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