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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대처하는 곽원갑의 자세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5. 02:55

외로움에 대처하는 곽원갑의 자세

 06.04.01 16:09 김헌식 (codess)



곽재구는 포구기행에서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서 사랑이 찾아오는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라고 했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충분히 견뎌내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아파하고 방황한다. 스스로 얻어지는 그 외로움은 상대방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고수일수록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 <무인 곽원갑>

ⓒ 쇼이스트

아버지의 패배와 그로 인한 치욕스런 수모에 곽원갑(이연걸 분)은 최고수를 꿈꾼다. 오로지 그의 목표는 최고수에 고정되어 있어 심우(心友) 농경손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마침내 진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희와 즐거움이 아니라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무리하게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다 보니 진정한 동지와 무예 형제는 없었다. 진대인의 처와 간통을 하고서도 오히려 진대인이 무고한 사람을 때렸다고 고한 부하와 그를 옹호하는 오합지졸만 득시글했다. 더구나 덕있는 진대인을 무참하게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곽원갑의 딸과 어머니를 죽음으로 돌아갔다. 결국 가족도 동지도 그리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무도인의 길도 피로 더렵혀졌다. 그에게 남은 것은 외로움과 그로인한 방황이었다.

곽원갑은 이 외로움을 충분히 견뎌내며 삶을 사랑할까? 아무리 고수라해도 그는 역시 사람이고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아파한다. 결국 곽원갑은 자살을 하기 위해서 물에 뛰어든다. 주인공이 벌써 죽으면 말이 안되는 법. 방황의 깊이를 알려주듯이 멀리도 갔나 보다. 외진 농촌 마을의 소수 민족 사람들이 그를 구해준다. 그 마을의 시각장애인 소녀 문(쑨리 분).

그 소녀는 곽원갑의 삶을 바꾸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녀는 눈은 안보이지만 부엌일은 물론 농사일도 적극적이며 피리도 잘 부른다. 그녀는 13살부터 갑자기 눈에 안개가 낀 것같이 되더니 그 안개가 다시는 걷히지 않았다고 한다. 앞이 안보이게 되자 그녀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곽원갑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근심과 생각이 많은 것을 알고 머리를 감겨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풀지 못할 매듭은 없다."

그녀와 마을 사람들을 통해 곽원갑에서 일깨우고자 했던 것은 생명성이었나 보다. 오로지 질긴 생명이야말로 끊임없이 매듭을 풀기 위해 노력한다. 곽원갑은 동네 사람들과 같이 모를 심는다. 그러나 빨리 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급하게 서두른다. 잘못 심은 것이다. 시각장애인 소녀는 다시 처음부터 조용히 심는다.

"모가 나부끼니 생명이 있다."

모를 남보다 빨리 심어야 한다는 자신의 목적만이 앞섰을 뿐. 마치 고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심리만 있었던 것과 같다.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 있을까. 무엇이든 움직이면 생명이 있다. 혼자만 움직이면 그 또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무를 스르륵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바람은 호흡하는 마을사람들로 인해 생명성을 얻는다. 생명성은 상호간의 호흡으로 비로서 의미를 얻는다고나 할까.

이 때문에 곽원갑은 스스륵 생각한다. 그는 보이는 눈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이기려고 하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했다. 그것이 갈수록 증폭되어 진대인의 생명도 빼앗게 되었다. 그 때문에 친구도 잃고 가족도 잃게 된 것이다. 결국 생명을 상호간에 느끼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된다. 다른 이들을 외롭게 고통스럽게 만들면 고스란히 자신의 외로움과 고통으로 돌아온다.

그녀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그는 그녀가 부모님 산소를 갔다온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그래야겠다고 한다. 부모님은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어 준 존재이며, 그들의 죽음은 생명의 종착역을 통해 겸손함을 일깨운다. 곽원갑은 문에게 돌아오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처음 밝힌다.

그러자 시각장애인 소녀는 그제야 자신의 이름은 문이라며 곽원갑의 얼굴을 만진다. 존재의 확인은 형식적이 아니라 비로소 상대방에 대한 심적 인정일 때 이루어질 터다. 그것은 단번의 시각을 통한 인식과는 매우 구별되기 마련이다.

다시 천진으로 돌아온 곽원갑은 폭력을 자제하며 무도의 철학을 추구한다. 정무체육관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 고수들을 차례로 격파해서 중국인의 단결을 유도한다.

소녀와 사랑은 그대로 영혼의 여운을 남기고 만다. 이연걸이 등장하는 영화에는 흔한 키스신조차 없는데 <무인 곽원갑>에서도 소녀와의 사랑은 애가 닳게 남고 만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장면, 영혼의 조우를 통해 생명은 곧 스러지지만, 그 여운은 긴 시간 남는다는 의미를 일렁이게 한다. 마치 곽원갑이 끝없이 재현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가 그렇듯이 사실과 실존을 상징하는 영혼의 예술적 재현으로 생명성을 얻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