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왜 한국인은 명절에 해외 여행을 가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9. 22. 01:01

올 추석 연휴에 해외에 나간 사람들이 사상 최대로 약 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보다 14% 정도 증가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올해만이 아니라 해마다 해외를 찾는 경향은 증가일로에 있다. 뿐만 아니라 추석연휴 기간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추석에는 고향을 찾거나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 친구와 같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틈만 있으면 어딘가로 가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탈출의 심리에 더 가깝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2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는 출국 인파로 복잡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2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는 출국 인파로 복잡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이렇게 여행을 가는 것은 평소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면이 있을 것이다. 좀 더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특정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이 바뀐 탓이다. 어느새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힐링이나 행복은 어떤 특정 공간으로 떠나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보다는 이곳을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보내야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소소한 행복보다는 뭔가 큰 일을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공간으로 가는 것 자체가 좋다 그르다라는 평가 잣대로 재단을 할 수만은 없다. 다만 어떤 강박관념과 같은 것이 문화심리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주변에 대한 의식이 들어 있기도 하다. 다른 이들에게 유명한 명승지나 관광지를 갔다 온 사실을 드러내려는 심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보다는 해외에서 보내는 것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존재감을 드러내주기 알맞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해외에서도 유명한 곳을 중심으로 방문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유명한 곳은 가봐야 한다는 의식이 작용하기도 한다. 마치 그곳에 가지 않으면 제대로 삶을 누리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대부분 그런 공간에 가는 것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인식의 창인데도 말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특별한 존재들만이 이용하는 곳을 가면 좋겠지만 최소한 뒤처지지 않을 공간을 갔다와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한국에 대한 자학 의식도 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더 넓은 세계가 있으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무의식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세계인이 되는 듯 싶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그 무의식이 접근되기도 한다. 특히, 자녀들을 동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뭔가 해외에 나가면 큰 이득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목적적인 의식이나 목표 단계가 없으면 단지 해외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갔다온 곳에 대해서 자랑하는 일에 더 치중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은 충분히 그곳을 접하거나 즐기지 않고 겉만 보고 오는 경우가 많다. 일종에 수학 여행이나 등산하듯이 갔다온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SNS가 발달하면서 그곳을 채우기 위해서 해외 여행을 가는 듯 싶게 되었다. 아이들이 기죽지 않거나 위축되지 않기 위해 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뭔가 앞뒤가 바뀌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추석에 이렇게 해외 여행 등을 가는 것은 추석에 대한 관념이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맞다. 한쪽에서는 추석을 없애야 한다는 말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추석은 이미 많이 쇠퇴했다. 그것은 세대 문화이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기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픈 이촌향도의 행태에 따른 문화적 현상으로 정착되었다. 국가권력 차원의 음모라고만 할 수 없는 문화적 요인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산업화 시대의 세대는 역사에서 스러지고 있기 때문에 추석 문화가 번창하게 될 리는 없다. 다만, 가족주의 차원에서 명맥을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추석을 없애자고 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추석 자체를 노는 날 즐기는 날로 말하는 것도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와 현실 유희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추석마저 그런 날로 만드는 것은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다. 아니 그것은 일부 지식인들이 주장하지 않아도 대세가 될 것인데 오피니언 리더나 지식인이라면 다른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행복과 향유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에 가족을 찾고 조상을 생각하며 고향과 지역을 돌아보는 사회적 행동들은 기괴해 보이는 시대이다. 추석에서 과도하게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은 과감하게 없애거나 간소화하는 노력이 분명 필요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례허식이나 과시욕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행동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연휴에는 어디 멋진 곳을 가서 즐기다 오는 것이 좀 더 깨어 있으며 삶을 바람직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그렇게 옳지만은 않아 보인다. 여기에서 즐기지 못하는 이가 다른 곳에서 제대로 즐길지는 알 수가 없다. 또한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대부분 남들이 좋다는 곳을 가기 일쑤인 것이다.

어쨌든 올해도 추석연휴를 어떻게 보람이 있고, 만족되게 보낼 수 있을 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증가일로에 있다. 그러한 의미 부여와 콘텐츠의 구축이 갈수록 긴요해지고 있다. 무조건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의 반대 방향으로 극단적인 탈출을 감행하는 것도 우리를 피곤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미 있는 것이거나 만들어져 있는 곳을 소비하는 차원의 행복과 즐거움이란 끊임없이 그런 것을 찾아가도록 만든다. 소비의 행복 중독이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즐거움과 행복이란 바로 여기에서 스스로 만들고 향유하는 삶에서 비롯한다. 추석도 스스로 만들고 함께 향유하는 날로 바뀌어갈 것이다. 이제 추석은 그러한 문화 창조의 날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