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영화에서 장애인의 복수극은 안되는 걸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8. 2. 7. 11:15

영화에서 장애인의 복수극은 안되는 걸까.

-장애인 영화와 장르 영화의 결합, 영화 <지렁이> 리뷰


최근 몇 년간 대중문화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사적 복수코드가 지속되었다. 사적인 복수는 어려운 말은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에 복수극이 유행했는데 사적 복수극에서는 주로 그 복수가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 데 모아졌다. 그런데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 방식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왜 문제일까. 이런 개인 차원의 복수는 경찰이나 검찰, 법원과 같은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기관을 통해서 공적인 절차를 거쳐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적인 절차가 아니어도 충분히 복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그 수단이 합법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폭력이나 살인을 통해서 해결하기에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작품이란 바람직한 이상적인 방향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좋은 평가를 듣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대중문화의 기능가운데 하나는 대리충족이 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는 것을 말한다. 대중오락영화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악의 세력을 응징하는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렁이 영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중요한 것은 이런 사적인 복수가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이다. 그것은 제도와 법이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벗어나면 강자는 얼마든지 약자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 대리충족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를 바람직하다고 찬양하지는 않는다. 오죽했으면 그러하겠냐는 현실의 절박함과 극단의 상황을 강조하고 부각하기 위해서 그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 영화에서는 이런 사적인 복수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대부분 장애인을 담아내는 영화는 아름답거나 현실을 드러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 <지렁이>는 감동적이면서 아름다운 영화는 아닐 수 있다. 이 영화는 장애인 부모와 딸이 교육문제와 직면하게 겪게 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보통의 교육문제를 장애인 가정과 연결시키고 있다. 장애인 영화는 대개 장애인의 현실을 고발하거나 사실감 있게 묘사한다. 아울러 어려운 상황이나 조건 장애물을 극복하는 감동적인 내용을 주로 담는다. 장애인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극적인 감동을 주는 영화들은 어떻게 보면 장애인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을 소외 시킬 가능성도 있다. 정말 복수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복수가 결코 장려될 수는 없을 지라도 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원술(김정균)은 온갖 어려운 상황을 견디며 딸 자야(오예설)을 키운다. 아내 없이 혼자 키우던 중 딸 자야를 어린 시절 복지기관에 뺏길 뻔도 했던 주인공 원술은 딸을 위해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생계활동을 한다. 그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자야가 가고 싶어 하는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시킨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원술에게서 인상적인 것은 뇌성마비장애인임에도 트럭을 운전을 하며 의류를 판매한다는 점이다.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자녀를 다른 부모들과 다를 바 없이 양육하여 간다. 뇌성마비장애인은 근육을 조절하는 뇌기능의 저하로 얼굴 근육이나 몸 근육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 때문에 말을 할 때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발음을 하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또한 몸을 이동시킬 때도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옷 판매를 하며 딸을 키워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사실 뇌성마비 장애인 가운데는 지적인 능력이 뛰어는 이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일과 생계를 꾸릴 수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이점을 반영하고 있으며 부모의 역할을 잘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딸은 구김살이 없고 오히려 밝고 당차다. 그러나 그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지렁이 영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영화는 자녀교육에서도 왕따와 폭력, 성매매, 성폭력 등 학교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례들을 농축하여 담아 내고 있다. 당차게 살던 자야는 집요한 폭력과 왕따에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게 된다. 그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는 뇌성마비 장애 부모를 약점 잡아서 그것을 도구화하는 이들과 권력 주변의 비열한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장애인 부모에게 이중적인 차별과 고통이 가해질 수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를 통해 단지 장애인들에게만 한정돼는 것이 아니라 권력층의 부당한 전횡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 권력있는 자들의 폭력성을 인식한 사람들에게는 같이 공분하고도 남는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빤한 스토리 라인과 그에 따른 극적인 효과를 꾀하고 있는 영화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 부모와 그 자녀가 겪고 있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단지 허구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극단적인 원술의 선택에 모아지고 있다. 자신의 딸을 해친 이들에 대한 통렬한 복수극을 펼치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장애인 영화에서는 잘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원술의 행동은 단순히 한순간에 일어나는 충동적인 것은 아니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수 십 년 오랜 동안 가슴에 쌓인 고통과 원한이 한꺼번에 폭발한 행위로 봐야 한다. 아름답고 소소한 감동의 결말을 주로 내리는 장애인 영화와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장애인 장르영화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추천되지는 않을 지라도 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본의 하드코어 복수극을 장애인 영호에 일정 정도 결합시키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사적인 복수를 꿈꾸는 것은 현실의 제도와 법, 공권력이 자신들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약자의 처지에서는 그러한 마음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장애인들의 삶을 더욱 더 그러하다. 물론 이 영화에서 복수를 감행한 주인공 원술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폭력이 사용되었지만 그것을 우리는 모두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 부모와 자녀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영화는 그것이 쉽지 않은 현실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경종을 강력한 방법으로 울리고 있을 뿐이다. 장르 영화들이 장애인 관련 담론을 더 풍부하게 만들려는 시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청불영화 딱지가 붙어도 말이다.

/김헌식 평론가 박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