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역사는 현장, 영화도 현장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2. 7. 6. 08:20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리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상을 휩쓸자, 엉뚱하게도 다른 분야에서 더욱 반색을 했다. 관광업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 봉준호 효과를 생각했던 것이다. 서울시, 고양시 등 각각 지자체가 나서서 기생충의 촬영 장소를 투어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심지어 정치인들은 봉준호 감독의 생가 기념관과 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촬영공간은 아미를 포함한 팬들의 성지 순례지가 된 지 오래다. 엔터투어먼트라는 개념도 다시금 부상했다. 케이 팝이 한류 현상을 일으키며 세계 팬들을 한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일은 근래 핫하지만, 영화의 촬영 공간에 대한 관심은 케이 팝 뮤직비디오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코로나 19 팬데믹 때문에 더 이상 외국인들이 촬영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오히려 국내 관객들에게 영화의 공간은 오히려 안전하고 특별한 여행길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장소성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함이 더 배가된 점 때문인지 영화의 공간에 관한 책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2020년에는 양경미의 한국 영화의 공간, 2021년에는 오동진의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가 영화 속 공간들을 방문해 속속들이 현장감을 전해준다. 다만, 양경미의 책이 주로 멜로 영화의 공간을 재미있게 다뤄내고 있다면, 오동진의 책은 한국 영화 30년사 속에서 손꼽을 수 있는 작품을 장르를 불문하고 담아낸 점이 다르다. 두 책은 모두 영화를 감성적으로 터치하는데 하나는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들을 주로 다룬다면, 다른 하나는 사회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감성적인 소회를 결합시켜 낸다. 더구나 몸으로 겪어온 체화된 지식들이 이러한 결합을 단단하게 한다.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에서 저자는 영화 속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영화는 늘 원래의 공간을 재창출하지만, 원칙적으로 영화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공간 자체의 힘이 크다.” 본래 공간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미학은 영화를 만들게 하고, 관객을 끌어들이는 근원적인 힘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오동진의 책을 보면서 처음부터 인식하는 점은 영화의 공간이 실제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는 실제 촬영공간이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일 수 있다. 다른 이유는 영화 속 배경 공간이 다른 곳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나무 숲은 신흥사에 있었지만 베어냈기 때문에 대나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주민들은 무심히 없어진 대나무밭을 자꾸 왜 찾느냐는 소리를 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 남부군처럼 영화의 배경과 실제 장소가 다를 수 있다. 당연히 지리산에서 촬영한 줄 알았는데, 포항 보경사 인근의 12폭포가 실제 촬영장소다. 실제 사실에 바탕을 뒀다는 영화일수록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묘한 배반감(?)도 들 수 있다. 이른바 추체험(追體驗)을 더욱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꼭 그 영화 속 공간과 실제 공간이 일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신세계는 인천 차이나타운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지만, 부산에서 촬영했어도 배반감이 들지 않는 이유다. 적어도 차이나타운에 관한 매력을 그 영화 때문에 느끼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영화 공동 경비구역 JAS’처럼 비무장지대가 아닌 서천 한산의 갈대밭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은 순례의 동기를 부여한다. 어차피 DMZ는 우리가 쉽게 갈 수 없는 공간이다. 현실의 결핍은 오히려 대체적 실제 공간에 대한 매력을 높이기도 한다.

 

저자가 주목하듯이 영화 속 공간은 꼭 하나의 장면이나 한 작품에서만 생명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도시 전체가 영화 속 공간으로 각별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영화 남자가 사랑할 할 때를 통해 군산의 장소성을 통시적으로 짚기도 하고, 영화 경주를 통해서는 경주,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통해서 전주의 장소성을 공시적으로 깊이 담아낸다. 도시는 낭만과 전통에서만 똬리를 틀지는 않는다. 저자는 영화 꽃잎‘, ’택시 운전사‘, ’박하사탕을 통해 광주를 관통시킨다. 현대사 속에서 타의로 얻은 상처들, 하지만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도시 밖에서 그 상처 때문에 일어난 고통을 잊으려 한 점을 반성하게도 한다. 뿐만아니라 책에서 공간성은 더욱 확장되어 나간다. 영화 지슬이나 이재수의 난을 통해서는 제주라는 큰 섬이자, 자치도를 조선과 4.3을 가로지르며 폭넓은 체험으로 재인식시킨다. 코로나 19 장기화에 따라 어느새 탈출처로만 인식되는 제주의 아픈 역사와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오름이나 바다 등의 장소성 속에서 적극 공감시키려 한다. 아울러 영화 감독들의 장소성에 대한 일관된 창작 태도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다. 북촌을 배경으로 주로 영화를 촬영하는 홍상수 감독이나 부산을 배경으로 주로 영화를 창작하는 곽경택 감독은 그들의 전작들을 통해 장소적 일관성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관되게 로컬리티 영화를 중앙의 영화계로 진입시키는 노력도 계속 시도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다.

 

결국, 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점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현장이다. 무조건 그곳에 가봐야 통시의 깨달음이 온다. 이번 여행길로 한가지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영화도 때론 현장이란 점이었다. 영화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종종 스크린의 산을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작품을 통해 감독이 해내고자 한 성취의 메시지가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의하지 않는 것은 영화가 때론이 아니라 항상현장이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공간성을 배제한다면 영화는 성립할 수 없고, 이는 영화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본령일 것이다. 더구나 이제 시대 정신은 자기 머릿속의 기획된 공간을 현실 공간의 편집을 통해 형상화하기보다는 그 반대다. 공간에서 작품을 도출시킨다. 더욱이 추체험(追體驗)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그런 공간에 대한 방문이 더욱 각별한 감흥을 주게 된다. 이 책에서 더 한계가 드러나지만, 명작일지라도 그 공간적 추체험의 감동이 덜한 것은 이런 고민이 덜했기 때문이다.

/글 김헌식(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정책학 박사 전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