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테나> 범작의 조짐과 걸작의 기대 사이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43

<김헌식 칼럼><아테나> 범작의 조짐과 걸작의 기대 사이

 2010.12.15 09:07

 




[김헌식 문화평론가]니체는 말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본질이 탄로날까봐서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자신을 숨기려고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두렵고 공포스럽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침묵을 참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분석되기도 한다. 

겁이 많은 개일수록 오줌을 싸가면서 낯선 사람을 향해 짖기도 한다. 맹견은 무조건 짖는 것이 아니라 적은 소리를 내면서도 적절한 기회를 본다. 화려한 화장과 명품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혼의 허전함을 외모적 수려함으로 채우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우성과 김태희가 출연했던 영화 < 중천 > (2006)은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흥행에서 참패했다. 2010년 정우성과 김태희는 대규모 제작비가 투여된 드라마로 안방극장에 컴백했다. 김태희가 출연한 드라마 < 아이리스 > 는 4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정우성은 드라마 < 아이리스 > 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 아테나-전쟁의 여신 > (이하 아테나)에 출연하게 되었다. < 아이리스 > 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서 액션장면이 많기는 했지만 특수효과나 액션 자체에 사활을 걸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준비했던 단단한 짜임새의 스토리 라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 아테나 > 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화려한 액션과 특수효과를 통한 볼거리다. 다른 하나는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많은 사람이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영화 < 중천 > 의 경우에도 컴퓨터 그래픽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었다. 역시 IT강국이기 때문에 CG효과는 뛰어나다는 비아냥도 감내해야 했다. 사실상 < 중천 > 의 패인은 바로 화려한 특수효과에 비해서 스토리와 결말에 흠집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제작비가 바로 특수효과에 들어간 것이다. 

< 아테나 > 의 경우에도 복잡해진 인물구도와 특수효과가 이러한 징후로 읽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된다. 일단 드라마 < 아이리스 > 이후에 후속편이 제작 방영된 기간이 너무 짧다. 물리학적인 한계성이다. 집적 효과를 기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배치와 연출이 제한되어 있다. 초반부의 장면들과 같이 일정정도는 웰 메이드의 액션이나 장면연출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물리적인 제한여건을 생각하면 우려스럽다. 

사실상 < 아이리스 > 나 < 추노 > 에서도 후반부에 이를수록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례가 많이 노출되었다. 만약 초반부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규모 액션 신을 전진 배치한다면, 부실한 스토리라인에 대한 허점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는 장(醬)과 같다. 1만시간의 법칙과 같은 절대량이 아니라해도 일정한 시간과 여건이 흘러야 숙성한다. 

그 다음으로 < 아테나 > 의 이야기는 < 아이리스 > 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다. 드라마는 대중성을 크게 의지하기 때문에 많은 배경 지식을 요구한다면 몰입감이 떨어진다. 여기에 < 아테나 > 에는 너무 많은 비중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정해진 인지적 에너지의 분산효과가 일어나는 것도 결국 몰입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몰입감이 떨어질 때 화려한 볼거리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무엇을 위한 이야기 구조인지 명확하고, 일관되게 진행되지 않고, 지엽적인 에피소드들이 개입되어 있다. 무엇보다 전작 < 아이리스 > 에서는 추리와 퍼즐 맞추기 같은 과제가 일관되게 주어졌다. 현준의 출생의 비밀, 아이리스의 정체 등에 궁금증이 일관되게 흘렀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실체에 대한 추적은 이미 써버린 탄알이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문화적 요인들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국민드라마가 되기에는 불리한 요인들이 많다. 예컨대 사랑 이야기와 멜로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징후적으로 감지된다. 드라마 < 아이리스 > 에서 두 주인공 남녀의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힘이 복선적 구도 안에서 순조로운 관계를 방해하는 멜로였다. 이미 써버린 멜로라인을 다시금 < 아테나 > 에서 반복하기는 쉽지 않기도 하다. 

스핀오프에서는 전작의 후광효과를 무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전작의 아우라가 여전히 작용해야 한다. 전작과 인물구도도 별개가 아니라 많이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은 스핀오프에서 한국의 드라마와 미국의 드라마가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 실존적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 드라마가 될 징조도 보인다. 각 캐릭터들은 각기 자신만의 외형적 상황에만 즉응적인 모습들을 보인다. 

이러한 점들이 근본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드라마가 어떠한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드라마 < 아이리스 > 는 70년대의 핵무기 개발에 태생적 연원을 두고 있다. < 아테나 > 에서는 신형원자로를 둘러싼 각국의 각축전이라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세계는 이미 신(新)에너지에 사활을 건 경쟁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계의 첩보기관들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대로 경제안보를 위해서 뛰고 있다. 특수효과와 그래픽, 구비 장비들은 미래형같이 매끈하지만, < 아테나 > 는 자칫 미래가 아니라 과거 속에 갇힌 드라마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남북한의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얼개가 얼마나 미래적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빈수레가 요란하지 않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은, 맹견의 마지막 한방이 있는 작품이어야 좋겠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