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사만다의 붉은 반점은 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8. 5. 10. 16:02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속 붉은 반점의 가치.



디지털 가상 공간은 현실의 자신을 넘어서 좀 더 나은 존재이고자 한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아바타로 부른다. 당연히 현실에서 쓰는 이름이나 얼굴, 몸이 아닌 캐릭터이다. 또다른 분신이되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 자신을 이러한 캐릭터가 아바타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곳.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도 마찬가지다. 오아시스는 가상현실공간으로 누구든 어떤 캐릭터도 돨 수 있고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상상대로 실현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흥미진진하다. 2025년 제임스 할리데이는 오아시스를 만들어 엄청난 부를 쌓았는데, 퍼즐을 푸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남긴다는 유언을 남긴다. 2045년 수많은 이들이 퍼즐을 풀기 위해 도전을 했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물론 그 퍼질은 가상현실에서 캐릭터로 플레어이가 되어 미션을 완수해가는 것이다. 물론 미션은 주인공이 달 성할 것이다.





하지만 가상 현실에서 파시발로 활동하는 주인공 웨이드 와츠는 아르테미스(사만다)에게 반한다. 마침내 사만다에게 현실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자신의 본명을 밝힌다. 오아시스 퍼즐을 풀고 있고 이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본명을 알게 되면 현실 공간으로 찾아와 위해를 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쩌랴 사랑에 빠져버린 이 남자는 그런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려 한다. 아르테미스는 웨이드를 만나지 않으려 한다. 현실에서 실제로 만나면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말이다. 가상현실에서 아무리 멋지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다르기때문에 가상 공간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이러한 말에 웨이드는 상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만났을 때 실망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만날 수 밖에 이미 없었다. 본명을 밝힌 웨이드는 오아시스의 지배자인 아이오아이 전투군의 공격을 받고 거주하고 있던 공간의 이모가족이 폭파된다. 가까스로 아르테미스가 보낸 대원에게 구출된다. 알고보니 아르미테스는 아이오아이에 대한 저항군이었다. 납치되다시피 저항군의 아지트에 온 웨이드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만다(아르테미스)가 앉아 있는 것을 본다.


비로서 사만다가 왜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게된다. 사만다는 피부 장애가 있었다. 오른쪽 눈주위에 붉은색 반점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눈 주변을 가리고 있었다. 당연히 가상 현실의 아바타에도 이런 붉은 색 반점은 기색조차 없다. 사만다는 날 때부터 자신은 그 반점이 얼굴에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점은 사만다가 왜 소극적인지 게임에 빠져들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아무래도 대인관계에도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만다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자신이 태어나보니 붉은 반점이 있었을 뿐이니 말이다. 물론 가상 현실에서는 멋진 오토바이 레이싱 선수로 이름이 높은 데 말이다. 


선천성 모반은 신생아 2만명 가운데 한 명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멜라닌 피부가 증식하여 발생하는데 보통 20센티 이상이고 아이가 성장할수록 커진다. 처음에는 연한 갈색이지만 성장하면서 색이 진해진다. 절제를하는것이 좋을 수 있지만 범위가 넓으면 상층부를 레이저로 깎고 피부를 배양하여 덮는다. 그러나 이식 배양을 하게 되면, 흉이 질 수 있다. 빈민촌 출신의 사만다에게 이러한 선천성 모반은 어려운 장애였을 것이다.  


웨이드는 그런 사만다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실망하거나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남자가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나게 한다. 세개의 열쇠를 찾아야하는데 두번째 열쇠는 사만다가 찾기도 한다. 만약 사만다가 없었다면 세번째 마지막 열세까지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웨이드가 최종 세번째열쇠를 넣어 실질적으로 승리를 할 때까지 사만다의역할은 눈부셨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최선을 다하는 사만다의 모습은 멋졌다. 


그런데 사만다의 아바타 즉 아르미테스의 얼굴에 붉은 반점이 그려진다. 붉은 반점은 현실의 사만다 얼굴에 있는 붉은 반점이다. 더이상 붉은 반점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만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표시되는 장면이었다. 붉은 반점은  더이상 숨길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스스로 그러한 것을 자인하고 긍정으로 품을 때 우리는 스스로 결핍감에서 자유로우면서 되도록이면 완전하게 된다. 그것은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 나아가 사랑하는 이에게도 연결이 되고 상호 성장할 수 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할리데이가 키라에게 키스를 하지 않아서 사랑하는 키라와 결혼하지 못하는 전철을 밟지않으려한 웨이드는 현실에서 사만다에게 키스를 해버린다.  가상현실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사만다와 웨이드는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역설에 있다.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 결핍 때문이다. 그 결핍이 없었다면 성공도 사랑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면에서 스티블 스필버그에게 게임은 질병이 아닌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는 게임을 질병으로 등록시키려 하는 데 말이다.  게임도 즐기면서 사회적 활동도 의식있게 할 수 있다면 정말 환타스틱한 일이겠다.


글 /김헌식 평론가.박사, 드라마 스쿨 외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