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사람을 이어주는 뻥튀기.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4. 16:22

뻥튀기의 생존과 사람과 사람사이의 '뻥튀기'

우리는 화려한 포장 속의 달콤한 과자만을 과자로 여겼다. 서양식 과자면 금상첨화다. 반대 급부로 이 과자는 과자로 대접받지 못했다. 이 과자는 먼지 많은 시장에서 지저분하고 더러운 공장에서 나오는 불량 식품이라고 천대받기도 했다.

쌀을 튀겨서 만드는 이 과자는 달콤하지도 향기로운 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장난하냐'고 쫓겨 나갔다. 아무런 향신료도 없고 색소도 쓰지 않아서 과자로 취급받지 못했다. 포장도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있어도 밋밋한 비닐에 담아 팔기 때문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상품성 없는 전래 과자의 대명사라고 치부되었다. 경쟁력 있는 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표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우리는 이 과자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무관심과 박대를 하여왔다.

그러나 무수한 박대 속에서도, 냉정한 외면과 무수한 발길질에도 이 과자는 살아남았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앞에 살아 버텼다. 냉소와 소외를 견디어낸 이들을 우리는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과자보다 많은 시장 장악률을 보이고 있다.

단지 이 과자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이 과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살렸다. 실직을 당해서 당장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에게 자본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장사의 하나가 되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계를 위해서 파시는 물건의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정년 퇴직하고 사회적 활동을 하시려는 분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기도 했다. 한창 꿈 많은 젊은이들이 학비를 대는데 유용한 수단이 되어주기도 했다. 시골에서 빚에 쫓겨 도시로 오면서 장사 밑천을 만들 수 있게 해 주기도 했다. 차가 막히는 어느 곳이라도 등장하는 것이 이제 뻥튀기 장사다.

또한 분열된 사회의 공통성을 가지게 하였다.

압구정동에도 봉천동 수퍼마켓에도 있다. 산동네 구멍 가게에서부터 큰길의 대형마트에도 있는 과자이다. 이 과자는 잘 사는 동네 못사는 동네 어디라도 있다. 자동차와 건물이 많은 도회지에도 있고 버스가 비가 오면 빠져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논 많고 산 많은 동네에도 있다.

육지의 어느 곳에 있듯 사람 사는 동네라면 이 과자는 항상 있다. 이 과자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바탕 위에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과자는 단지 먹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화 없는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한다.

입맛이 서로 달라진 현실에서 공통성을 느끼게 한다. 이 과자는 달콤하고 화려한 과자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부터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즐겨먹는 과자이다. 젊은 고등학생과 아버지가 함께 먹는 과자이기도 하다.

이 과자는 딸과 엄마가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같이 먹는 과자이다. 젊은 아가씨도 나이든 총각도 즐겨먹는 과자이다. 예비역과 새내기가 함께 먹을 수 있는 과자이다. 신입생을 위해 선배가 부담 없이 사줄 수 있는 과자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 갈라지고 벌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하나의 공통된 추억으로 연결시켜 준다.

손자와 할아버지는 공통의 추억을 가지게 된다. 엄청난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손자와 할아버지는 하나가 된다. 시골 장터의 대명사는 이제 뻥튀기를 빼놓을 수 없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고 해도 우리는 장터의 뻥튀기를 통해 더 동질감을 형성한다. 우리는 자율 학습시간의 끝머리에, 학원 시간 뒤에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뻥튀기를 추억한다. 그것은 단지 뻥튀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뻥튀기가 맺어준 사람과 사람사이의 시간 사이의 즐거움을 기억하게 웃음 짓게 한다.

뻥튀기 앞에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도, 세대의 차이도 없어진다. 입맛이 너무나 달라진 세대들의 입맛의 동질성을 확인시켜준다. 이는 의사 소통이 없어진 우리 가족 구성원들의 대화통로이자 대화 코드가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하급자, 학교에서는 선배와 후배의 공유 통로가 된다.

무엇보다 이 과자는 우리 과자로 당당하게 우리 곁에 살아 남아 의미를 던져준다. 달콤하고 화려한 과자 틈에서 실속보다는, 내용보다는 껍데기와 포장에만 치중하는 서양식 과자들을 물리치고 과거를, 화려하지 않으면서 화려하게 재현시켜 놓았다. 어설프게 사람들의 입맛을 홀리던 과자들이 냉대하던 이 과자는 이제 그들을 물리치고 있다.

화려하고 현란한 외면과 맛이 아니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로 다가왔다. 냉소와 외면에도 무던하게 부담없는 소박함과 담백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자리 매김 했던 이 과자는 마침내 부담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점과 통로가 되어 시장에도 거리에도 구멍가게, 수퍼에도 대형 마트에도 그리고 학교에도 직장에도 길에도 언제 어디서나 그 모습을 보이면서 사람 사이의 섬을 이어주려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골을 메워주고 있다.

사람들 중에도 뻥튀기 과자 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 사회는 살만하다.

2002.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