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봉준호 감독이 시사 만화가 였기 때문에 거장이 되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9. 4. 15:39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

 

김헌식(문화평론가, 박사)

 

 

봉준호 감독이 학창시절 대학교 신문에서 시사만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 같은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약자에 대한 시선이 역동적인 이유다.

 

우선 그의 그림 실력은 그가 영화를 만들기 전 제작 콘티를 직접 그린 점에서 드러난다. 이런 그림 실력이 영화 제작에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적 상상력과 구도들은 영상화하는데도 용이할 수 있다. 그냥 단순이 제작 과정만이 아니라 그의 작품 세계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사만화는 시사 현안을 다루기 때문에 사회적 주제의식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가운데 만화라는 대중적인 장를 통해 그 주제의식을 녹여낸다. 단순히 재미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것은 수준 높은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시사만화가 예술적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가 9의 예술이라고 불릴만한 이유가 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는 것은 만화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액션 오락, SF판타지, 스릴러, 풍자/블랙코미디 등등의 장르적 혼종성은 201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기생충에서도 여실히 증명이 되었다. 무엇보다 장르가 다르거나 혼종되어도 그의 작품들이 보여준 세계관은 약자들의 삶과 생활이다.

 

봉감독은 31살의 이른 나이에 플란더스의 개’(2000)에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반려견을 둘러싼 구성원간의 갈등을 다루면서 동물권은 물론 인간과 도시 속에서 관계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반려견에게 의존하는 약자, 홀로 연로한 독거 할머니와 소외된 상처의 여성이 등장하는가하면 한쪽으로는 개가 짖는 소리가 싫다는 이유로 살해하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극단적인 인물조차 불우한 처지 때문에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게 되고 심신이 지친 아내의 개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반려동물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된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에서도 더 확장되어 탄생한다. 글로벌 기업이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서 수퍼 돼지를 대량 생산하려는 음모 속에서 미자는 돼지를 단지 식용의 대상이 아니라 가족으로 생각해서 옥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매처럼 생활을 한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처럼 강원도 산골에 사는 미자와 옥자의 마지막 장면은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감독의 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봉준호 감독이 주안점에 두는 사회적 집단은 가족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플란더스의 개뿐만 아니라 괴물’,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가족이 등장하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다. 괴물에서는 한 가족을 통해서 괴수와 고군분투하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환경문제는 옥자와 같이 소시민의 삶을 파괴할 수 있음에 지나침이 없다. 괴수가 우리에게 익숙한 한강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이러한 일깨움을 강하게 할 수 있었다. 국가의 폭력성을 통해서 약한 개인들이 어떻게 자구책을 모색할 것인가를 가족주의 관점에서 반추하고 있는 괴물의 기조는 기생충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가족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통해서 삶을 투사하고 있다는 점이 역동적으로 담겨진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서민 가정이 등장하며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지만, 그것이 욕망의 심화를 통해서 파멸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역동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을 통해서 인식의 전복으로 사회적 주제의식과 함께 그의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리는 이유가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영화 마더’(2009)는 모성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큰 반향을 불러 모았다. 독특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지적 장애인 아들과 어머니를 등장시키며 장애인 가족을 전면에 부각했다. 한국 여성의 자식에 대한 집착적 사랑, 즉 모성의 과잉성을 드러내주는 면에서 평가가 많이 이뤄지고는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장애인 가족이 겪게 되는 현실을 리얼하게 그린 면도 있다. 장애인은 무조건 동정과 배려의 존재도 아니지만 장애인이 있는 가정에서 겪게 될 고통이 비정상적인 행태로 변이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만 적절치 않은 방식으로 그에 대응하는 것 자체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장애인의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 살인 누명이 씌워진 장애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장애인이 미디어 등장하는 셈인데, 그 설정에서 전복기한 것이 도준(원빈)이라는 캐릭터가 지적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이 두 영화는 같이 쌍으로 움직여야 완결성을 갖는 이유가 되겠다. 살인의 추억은 자칫 장애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사회 구조, 백광호(박노식)은 향숙이를 좋아했기에 향숙이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아니 지적 장애인이라는 이유가 결정적으로 범인으로 몰리는 까닭이 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범인으로 몰렸지만 역설적으로 백광호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용의자에서 제외된다. 바로 화상으로 손가락이 붙어 버렸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살인의 추억을 생각하고 영화 마더를 본다면, 원빈은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 범죄자로 몰릴 수도 있지만 장애인의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장애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이분법적인 빈부격차와 양극화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기생충이 누군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기존의 물음을 전복시키기 때문에 불편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불편감 때문에 칸은 영화 기생충에게 황금종려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불편은 기존의 인식 체계를 뒤집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포함하여 약자와 소수자에 관한 시선은 끊임없이 전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고 진보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시사 만화 경력을 말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그에게 사회현상은 단일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과 관점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할 가치를 탐구할 대상이었다. 그 중심은 여전히 장애인과 같은 약자와 소수자가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을 위한 진정한 해방을 위해 미물이라는 개와 돼지까지도 품어내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김헌식(문화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박경리 토지 문화관 외래 교수, 카이스트 미래 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E美지- 장애인예술 매거진 2019 가을호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