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베트남전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전쟁의 슬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4. 16:27

베트남전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전쟁의 슬픔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어떠한 전쟁 명분도 인간을 파괴할 수는 없다

2001.11.20 09:34




미국의 일방적인 폭격은 테러의 응징이라는 이름으로 아프카니스탄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과연 테러의 응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는 끊이지 않았다. 역으로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는 테러의 전쟁을 계속하는 급진회 회교 단체의 전쟁 명분론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도 끊이지 않았다.

바오 닌의 소설인 전쟁의 슬픔이 제기 하듯이 민족해방전쟁, 위대한 사회주의 혁명전쟁이라는 화려한 명분과 수사 뒤에 사람들의 소중한 꿈, 사랑이 어떻게 무참하게 훼손 당하며 전쟁으로 사람들이 어떠한 고통과 상처를 지니며 삶을 보듬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많은 호평을 받은 것이고 많은 평자들이 지적하는 것이지만 자칫 개인주의화되는 것을 포커스에 맞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자신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 때문이라고 일관되게 중심에서 말하고 있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 소설을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문학지망생이라고 뻐기면서 읽을 만한 소설이 이제는 없다고 말하면서 99년에 나온 이 소설을 단숨에 읽은 것이다. 소설을 읽고 눈물이 핑돌기는 매우 오랜만이다.

보통 이 소설이 베트남최고인민상을 받았고 그것도 혁명정신에 위배된다고 이름을 사랑의 슬픔으로 바꾸고 2000부만 출간하여 결국 절판되었던 소설이라는 점, 이 때문에 해적판과 복사판이 음성적으로 부르는 게 값인 소설, 디어헌터,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같이 미국인의 고통과 상처만 다룬 것이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고통과 상처를 다룬 것이 한국인 중심의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과 안정효의 '하얀전쟁',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지도 모른다. 또한 운동권의 필독서인 '사이공의 흰옷' 같은 기존 베트남 소설과도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그 무수한 전쟁에서 나 보다는 남을 위해서 죽어간 무수한 베트콩들의 모습들에 눈물이 돌았는 지 모른다. 그들은 꿈과 사람을 가지고 있었으며 통상적인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었다. 다정하게 이야기하던 사람들, 가족 이야기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던 사람들. 그들은 한 순간에 무참히 스러져 갔다. 그리고 작가를 살게 해주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살아 남아서 다시 살아남게 하기 위해 글을 쓰게 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위대한 민족해방전쟁, 그것을 수행해 낸 전쟁영웅만이 존재하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무시했기 때문에 오늘날 하노이는 그렇게 초라한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인간의 의무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여러 가지 면을 두루 경험하는 것이지 ... 희생에 네 인생의 가치를 두지 말기를 바란다. 또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목숨을 내버리고 싶은 유혹을 경계하라고 충고하고 싶구나" p75(끼엔 어버지의 말)

자유로운 삶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반드시 문제의답을 해결해주는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에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또 언제 그 길을 찾아 낼 수 있는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p120'

삶은 죽음으로 가고 그 죽음이 결국은 과거와 현재의 미래이고 '죽음은 결코 끔찍한 것이 아니며 그저 이루지 못한 희망에 대한 슬픔과 회한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144쪽 '

그 미래에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죽기 전에 꼭 해결하고 싶은 근심이나 빚이나 의무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p150'

그리고 자신은 오늘을 있게 한 과거의 모든 이들을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을 글쓰기를 통해 글속에서 다시 생명을 주고 부활 시킨다. '그가 일상 생활의 다른 모든 욕구를 저버리고 남은 시간 동안 오직 글을 쓰는 데만 전념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저물어 가는 그의 시대가 남긴 메아리와 꿈 그리고 강박관념을 종이에 적어 가는 것이 바로 그에게 지워진 부채였다. p151'

이러한 말들과 함께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을 살리고 죽어갔는지 이야기하면서 내가 잘나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에 살아 있고 브레이트 식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는 다른 슬픔이 있게 된다고 강조하는 듯 하다.

그리고 과거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연장선상에서 살아 숨쉬며 현존재를 있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섣부른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아닌 개인주의적인 색채 때문에 열광한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결국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람들의 도의적인 순수한 선(善)을 강조하는 것이지 개인주의가 아니다.

전쟁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인간을 파과할 수 없으며 이 시간에도 전쟁에서 일어나는 고귀한 인간애를 침범할 수 없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을 끊임없이 파과하려 고통을 가하고 있는 전쟁은 거부되어야 한다. 고통,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는 상처는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성전도 테러 응징의 명분도 상처를 너무 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