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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과 덕만의 지략싸움은 진화론의 산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9. 27. 17:47

미실과 덕만의 지략싸움은 진화의 산물?

<칼럼>진화 심리학과 여성 리더십

 

여성들 가운데는 로봇을 좋아하는 남성을 이해 못하는 경향이 있다. 로봇태권브이에 열광하거나 예술품을 조립하듯 온 신경을 집중하는 프라 모델 조립에서 남성들의 진지한 열정은 우습게 여겨지기도 한다. 영화 선택에서도 남성들은 총싸움이나 칼싸움, 주먹 싸움이 많은 내용을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사극은 이전부터 남성의 전유물이 되었다. 사극하면 칼싸움이나 주먹싸움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사극, 특히 <선덕여왕>은 여성들이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사극을 보는 것일까. 화려한 복색이나 장신구가 많이 등장하고 멜로라인이 강화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하기 때문일까. 일종의 여성 리더십이 부각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 리더십은 <천추태후>나 <자명고> 등과 비교해볼 때 다른 점이 관찰된다. 그것은 미실과 덕만의 지략싸움에서 드러난다. 사실상 이러한 지략 싸움이 당대의 리얼리티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남성들이 로봇을 좋아하는 이유를 원시 사냥의 본능에서 찾는다. 남성들은 대개 사냥감을 추적하고 획득하는 것이 주 활동목적이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많은 사냥감을 얻는가에 골몰했다. 이를 위해 더 효과적인 사냥수단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그러한 한계를 보충해주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그러한 도구들이 진화한 것이 오늘날 남자들이 좋아하는 자동차와 권총, 그리고 로봇임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사냥보다는 마을에 남아서 아이를 키우고 다른 사람들과 지내야 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인적 관계에 익숙해야 했다. 따라서 단순 명확한 목표와 그것을 획득하는 단순한 행위보다는 일찍부터 사람 사이의 행동 분석과 심리 파악, 그리고 그에 따른 대응력을 기르는 훈련을 하게 된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얼굴 표정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물론 뇌 과학에서는 이를 뇌구조의 차이로 분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여성들이 남아있는 공간은 적과 아군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것이 때론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항상 그것을 탐지하고 대응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편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말과 대화, 수다이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말하고 대화하면서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자신의 편을 만들어 상대에 대처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의 말이 맞아서인가. 남성들이 즐겨보는 콘텐츠에는 적에 대응하는 의리와 정의의 주인공을 다룬 내용이 많지만, 여성들이 즐겨보는 컨텐츠 중에는 인간관계 사이의 사소한 사안들에 대한 형상화가 많기도 하다.

 

‘궁중암투’라는 말이 있다. 여성들이 정치 배후에서 벌이는 정치싸움을 가리킨다. 부정적인 분위기가 묻어있지만,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또한 권력에서 밀려난 여성들이나 하는 하찮은 것으로 볼 수도 없다.

 

고도의 지략과 책략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뛰어난 인류의 정치게임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남자들을 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대 정치의 핵심일 것이다. 남성들은 전쟁 그 자체에 더 쓸모가 있는 기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극에서 여성 리더십의 현실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한동안 여성의 주체적인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말을 타고, 무술 하는 여성들이 사극의 전면에 나섰다. 드라마 <다모>를 필두로 드라마 <주몽>의 소서노, <자명고>의 낙랑과 자명 공주, <천추태후>의 천추태후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지략과 책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랑 앞에 힘 없이 무너지는 캐릭터를 보여 주었다.

 

완력이 뛰어나고 무술은 잘 하지만 결국 사고체계의 합리성과 특출 난 점은 없었다. 또한 구체적이고 세세한 일상의 관계들을 해결하기 보다는 관념적인 명분과 정의에 함몰되었다. 그것은 또 다른 남성의 탄생이거나 남성 콤플렉스의 변형이었고, 그것이 정작 여성들을 위한 비전을 준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퇴조되었다. 음지의 여성 정치가 전면에 등장했다. 일단 한동안 유행했던 말타고 무술 하는 여성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덕만은 사내 아이로 변장하여 살지만, 무술을 그렇게 잘하는 것도 완력이 남성에 비해 나은 것도 아니다. 항상 부족하다. 하지만 지혜와 명민함으로 헤쳐 나간다.

 

모든 남성들을 휘어잡는 미실은 무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면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을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도에 맞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실은 언제나 고고하게 앉아 있거나 조용하게 말할 뿐이다. 항상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화를 내는 경우도 거의 없다. 미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권력의 정점에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관계적 파악과 대응능력이다. 미실의 공간은 궁의 공간이며, 그 공간은 조밀한 사람사이의 공간이다. 자칫 하면 한방에 날아간다.

 

미실은 미세한 표정과 감정의 변화도 어김없이 파악하고 그것을 분석해 대응방안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그것을 잘 관리할 줄 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궁이라는 좁은 공간은 전쟁에 나가서 적만 쳐 부수면 되는 것과 다르다. 겉으로는 모두 같은 편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이나 사냥에서는 목표물과 싸워야 할 대상은 명확하다. 하지만 집안이나 궁에서는 적과 아군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때로는 적과 아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끊임없는 탐색에 생존의 길이 있고, 그 탐색과 대응 수단 가운데 하나가 대화나 수다이다. 미실은 적과도 언제나 웃으며 대화한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상대를 파악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거나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미묘한 표정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로 상대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오히려 덕만과 그의 편들은 대화와 수다에 서툴다.

 

덕만은 자신이 미실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정말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미실을 이기기 위해 인간 사이의 현실적 전략들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미실은 인간 사이의 공간 정치학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정점에 이른 최고의 베테랑 이다.

 

미실이 가진 장점은 어쩌면 밖으로만 나다니며 사내같이 산 덕만의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다. 외향의 공간에 익숙한 덕만에게 내향의 밀실 공간에서 수십년동안 권력자로 살아남은 미실은 거대한 벽일 수밖에 없다. 향후 어떻게 덕만이 미실을 이기게 할 지 그 개연성이 궁금해진다. 최소한 덕만이 미실을 이기게 되는 과정에서 진화심리학자들의 지적은 반영해야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 여성 리더십의 전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대장금>과 마찬가지로 여성 리더십은 복잡한 힘의 관계 속에서 얽힌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때로는 전략적으로 잘 풀어내는가에 있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리더십이 외향적인 강함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단순히 여성주인공이 등장하거나 물리적 외향의 주체적인 모습만 강조한다고 해서 여성을 끌어들이는 사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중예술 미학차원의 특징이기도 하고, 시청률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