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분석

미생의 후유증이 배회한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12. 22. 18:38

소재주의나 포맷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마음에 닿아야

만화와 드라마 ‘미생’은 대한민국 노동 형태에 대한 적나라한 재확인이었고, 이에 대한 대중심리를 잘 파악한 사례였다. 현실을 잘 반영하면서 이상적 지향점을 탐색한 하나의 성공적인 콘텐츠 모델로 자림매김하게 되었다. 성공사례는 하나의 신화가 되어 콘텐츠의 비교모델이 되는 것이 통례라고 할 때, ‘미생’ 역시 이러한 입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언론 미디어를 중심으로 ‘미생’을 중심에 두거나 하나의 성공 모델로 견주는 경우, 각 해당 콘텐츠의 본질적인 면모에 관한 평가를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 ‘송곳’도 ‘미생’과 마찬가지로 웹툰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제작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여러가지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었고, ‘미생’의 성공에 따라서 ‘송곳’도 좀 더 부각된 면이 있다. 하지만 노동현실이라는 점에서는 평가의 대상이 될만 했지만, 대중적인 정서 관점에서는 전혀 달랐다. ‘미생’은 젊은 인턴 사원들을 중심에 두면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오피스 공간에 현실적인 설득력과 공감의 장치와 연출적 구성을 통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인턴이라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부각시켜냈기 때문이다. ‘송곳’은 대형 유통마트를 직원들이 벌이는 노동쟁의 과정을 중심에 두고 있다. 개인적인 경쟁과 분투에 초점을 맞춘 ‘미생’과는 달랐던 점은 차별적이고 더 현실적이었다. 그런데 대형마트는 골목상권을 휘저으며 많은 서민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점은 간과되었다. 더구나 그 내부의 직원들이 살아남기 위한 분투에 초점이 맞춰졌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 가는 과정에 더 집중했다. 그 고통스런 과정을 상세하게 연출한 것은 수작의 평가를 들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대중적 정서를 친밀감 있게 만드는 점에서는 실패했다. 애초에 ‘미생’과 비교할 수 없는 콘텐츠 심리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같이 동질감이나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제한되어 있었다. ‘미생’은 훨씬 더 교묘하게 대중적이었던 것이다. 


2015년에는 이런 노동 관련 영화도 여러차례 화제가 되었다. 독립 영화나 다양성 영화로 ‘위로 공단’이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인턴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 작품은 해외 영화로 ‘인턴’, 그리고 ‘오피스’, 최근의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가 대표적이다. ‘미생’의 평가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대표적인 예는 영화 ‘인턴’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반응은 뜨거웠다. 인턴의 현실을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시니어 인턴을 통해 젊은 여성 기업가가 겪게되는 상황을 코믹 휴머니즘 관점에서 다뤄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인턴제도는 현실과는 관계없는 환타지에 가까운 영화적 설정이었던 것이다. 즉 마음을 건드려준 점은 분명히 있었다. 영화 ‘오피스’는 배우 고아성을 내세워 인턴들이 겪는 차별적인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주인공의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공포스릴러 영화가 되었다. 노동 구조가 아니라 개별 구성원에 대한 그 구조에서 형성되는 살인의 광기가 중심이 되었다. 상황은 비극적 종말이었고, 어떤 희망이나 대안도 없는 현실에서 파국적인 결말을 공유하고 싶은 대중 정서는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영화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는 제목과 내용이 불일치하는 대표적인 영화가 되었다. 이러한 점은 열정페이와 미생 신드롬에 따른 전형적인 후유증이라고 볼 만 하다. 애초의 영화 홍보는 인턴이라는 비정규직 기자의 일상을 드러내줄 것으로 예측하게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연예부 기자가 겪게 되는 고충을 통해서 올드 미디어인 신문매체와 그 안의 종사자인 기자들의 곤란한 지경을 묘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상 비정규직 인턴의 일상은 스쳐지나가고, 스타와 연예기획사 그리고 연예부 기자의 관계가 영화 서사의 중심이다. 애초에 ‘미생’의 그림자도 기대를 하면 안되는 영화인 셈이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들이 등장하는 것이 꼭 ‘미생’의 성공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 엄혹하게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현실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기준이 모두 ‘미생’에 연원해야 하거나 비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생’ 자체도 결국은 초반부에 적나라한 현실과 감정묘사를 감당하지 못하고 환타지 만화로 틀어져 버렸다. 

‘미생’에 뭇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주제의식이나 사회적 가치 때문만이 아니라 대중적인 상처와 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즉 공감과 동일시의 마음을 동시에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는 무조건 오피스 공간이나 회사원, 비정규직이라는 소재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화가 된 사례와 비교하면서 기획 제작을 하거나 평가를 하는 것도 콘텐츠의 다양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인디 예술이나 다양성 영화가 아닌 대중적인 콘텐츠에서 우선해야 하는 것은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것이다.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