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을 기대했나? 달달한 로맨스로 끝난 '프로듀사'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7. 8. 10:32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프로듀사' 시즌 2, 기대 없습니다

[미디어오늘 김헌식 문화평론가]

드라마 ‘프로듀사’는 금토일 케이블의 아성을 넘어 성공했다. 특히 잘 다져 놓은 금요일 시장에 파고든 강력한 스타파워는 여전히 통했다. 물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스타 파워만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흥행을 보장할까.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가 아닌가. 물론 치밀한 마케팅 작전이 뒤따라야하며 이러한 조건은 여지없이 ‘프로듀사’에도 적용되었다. 시즌2의 제작이 열화와 같은 마당에 ‘프로듀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시샘하거나 삐딱한 배아픔 정도로 여겨질 법하다. 기적의 시청율을 기록한 드라마라고 연예매체의 평가가 내려지는 마당에 말이다. 하지만 성공한 콘텐츠일수록 오히려 간과할 수 있는 모순이나 오류를 짚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공의 후광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후속 시리즈의 실패로 이어질 개연성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예능은 예능일뿐이라는 말이 금언(?)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런 금언에 따른다면,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는 말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예능은 예능일 수 없으며, 드라마는 드라마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 방송매체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분석이나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영성을 강조하는 방송 매체라는 특성이 있다면,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다. 김수현 출연 드라마에 뭘 기대하겠는가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지만, 적어도 공영방송 KBS의 드라마라면 다른 사회적 가치나 공공적인 의미를 검토할 수도 있어야 한다. 아니 어느 방송사의 드라마라도 사회적 가치와 의제를 반영하는 대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첫번째는 로맨스 깔대기 효과이다. 드라마 ‘프로듀사’는 홍보방식이 나영석류의 냄새가 짙었다. 스타를 활용해 슬금슬금 연기를 피워내는 방식이 꼽을 수 있다. 그 연기 피우기 전략에서 강조했던 맥락은 바로 방송제작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는 전문직 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가고 남았다. 따라서 드라마 ‘프로듀사’는 이름 자체가 전문직업을 함의하는 듯 싶었다. 전문직업인을 함의하는 ‘사’자가 들어가니 말이다. 드라마 ‘프로듀사’는 한국 전문직 드라마의 기본 법칙을 피해가지 않았다. 기본 법칙은 다른 게 아니라 기자나 의사, 피디, 변호사, 스포츠 선수의 이야기를 다루어도 결국 로맨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는 것. 그것도 보통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들이 삼각, 사각관계에서 사랑의 작대기를 매번 교차시켰다. 이럴 때, 애초에 전문직 드라마가 가져야할 해당 직업이나 그 분야의 생활은 매우 사소해져 버린다. 드라마 ‘프로듀사’가 제작진에서 프리랜서 피디를 내몰고 새로운 피디를 영입한 결과는 달달한 로맨스의 강화였던 셈이다. 


다음으로 방송 노동자 문제를 들 수 있다. 애초에 시작전부터 바람을 많이 잡았던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우리는 한국의 방송제작현실을 본격적으로 다뤄줄 것으로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백승찬(김수현)이 신입 막내 피디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는 홍보는 ‘미생’을 연상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즉 신입, 막내라는 단어가 장그래를 떠올리게 했으니 말이다. 이같은 점은 많은 언론매체의 홍보성 기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방송제작 현실은 일반 조직 생활과는 다르지만, 충분히 막내 피디의 생활을 통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될 수 있었다. 오히려 ‘미생’ 보다 낫지 않을까 싶었다. ‘미생’에는 사랑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런 사랑타령 없는 내용이 좋다고 말했지만, 은근히 기대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출발점부터 달랐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 것이 잘못이었다. 우선 백승찬은 짤릴 염려가 없는 정규직이었다. 비록 조직 전체에서 최하위에 있기 때문에 힘든 면들이 있지만, 절박한 생존의 조건에 있지는 않았다. 백승찬은 어리바리해도 퇴출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생존할 수 있었다. 누군가(선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어 보이니 말이다. 어리바리한 비정규직이었다면, 당장에 인턴은 물론 계약직 사원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외주제작사 피디가 아니라 공영방송 KBS의 피디였다. 

애초에 각 지상파에 배분하듯이 김수현의 출연을 맡았던 키이스트의 ‘프로듀사’(KBS)는 중국 자본을 물적 토대로 출발했다. 간접광고도 같은 맥락안에 있었다. 키이스트와 KBS의 본격적이고도 야심찬 한류기획물이었는데, 물주들이 원하는 것은 김수현이었다. 그 김수현에게 원하는 것은 제작을 하는 피디가 아니라 사랑의 주인공이었다. 김수현이 해품달(MBC)에서 왕이었어도, 별그대(SBS)에서 교수였어도 요구되었던 것은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다. 중화권 팬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한국의 방송제작현실이 아니라 비현실 속의 로맨스 주인공이었다. 그들의 현실을 벗어나 한국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랑의 환타지였다. 한국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수출이 좀 된다고 해서 한국방송국에 대한 선망이 있을 것이라는 기획자들은 거대한 착각을 한 것이다. 중화권에서 별그대의 그림자를 넘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에 결핍된 김수현의 환타지였기 때문이다. 이는 이민호의 영화 ‘강남 1970’의 오류와 같았다. 그러니 어차피 한국의 방송 현실은 그냥 웃음을 유발하는 배경 장치이거나 로맨스의 세트장에 불과해도 그만이었다. 더구나 중화권의 사람들이 한국의 방송현장에서 일하고 싶을 만큼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니다. 중화권에서 드라마나 예능 포맷에 대한 선호도가 조금 있다고 해서 착각하면 안될 일이었다. 자본이나 시스템 그리고 급여나 출연료조차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후속타는 없으며 기대효과도 미흡하다. 앞으로 김수현은 물론 한국 방송사는 중국의 요구대로 맞춤식 드라마 제작에 나서겠지만, 이로써 이도저도 아닌 작품이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어디 그것이 중국 물주들의 요구만의 문제였을까. 달달한 로맨스가 더 중요할 뿐 방송의 제작현실 따위는 그냥 재미와 유희의 장치로 지나면 그만이라는 국내시청자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방송가의 비정규직이나 노동구조의 모순에 대해서는 골치 아프니 차라리 환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버릴 뿐이다. 중화권을 제외하더라도 막장 드라마와 차별하되기만 하면 마니아는 생기는 법이니 더욱 그러하다. ‘프로듀사’의 시즌2에 장그래의 현실을 적용했으면 싶지만, 과연 ‘프로듀사’의 경로의존성이 이미 확립되었으니 그 선회가 쉽지 않보인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다큐가 아니라는 금언 아닌 사이비 원칙이 있는 한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은 더 진일보할 수 없다. 최소한 형식적 융합이나 재창조는 할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다. 아뿔사, 그래서인지 처음에 제작진이 호언한 예능과 드라마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했는지 평가하는 목소리는 모두 주인공들의 로맨스에 묻혔다. 예능과 드라마의 결합은 역시 방송포맷을 중화권에 팔기위한 미끼 상품에 불과했던 것이 확증되었다. 그들이 미끼 상품을 못 알아볼 리 만무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