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메디컬 드라마인데 간호사 드라마는 왜 없을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9. 22. 12:16

우리가 병원가면 제일 많이 접하는 사람은 의사일까 간호사일까. 당연히 의사보다는 간호사를 더 많이 접한다. 환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간호사의 노고는 더 밀접하고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는 결국 의사중심일 뿐이다. 메디컬 드라마가 간호사들의 현실이 환자와 어떤 연관관계에 주목하지 않는 것은 의사를 바라보는 편견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용팔이’에서 한여진(김태희)가 감금된 VIP병동 12층을 통제하는 황간호사(배해선)가 있는 반면 외과 수간호사(김미경)는 한여진(김태희)를 살려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수술에 참여했을 뿐더러 한여진의 생존사실을 잘 지켜냈기 때문이다. 한편, 중환자실 수간호사(오나라)는 산재를 당한 김영미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지만 실패하고 대신 한여진을 살리는데 일조하게 된다. 한편, 영국BBC 드라마 ‘캐주얼티’(원제:Casualty)의 영향을 받은 듯 재난 의학드라마를 내세우고 있는 JTBC ‘디데이’ 1회에서는 간호사 박지나(윤주희)가 레지던트 정똘미(정소민)를 대신해 기흉 증상에 대처했다. 그러나 이 간호사들은 많은 사례 경험과 의료지식, 노하우를 지니고 있지만 언제나 의사들의 주변부 인물 혹은 보조자에 머문다. 의학드라마를 내세우면서 의사들의 성장기나 의사들의 성공 그리고 치열한 권력다툼이나 두뇌플레이를 다룬다. 

드라마 ‘용팔이’도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황간호사(배해선)는 한여진을 질시하고 괴롭히다가 오히려 자신을 고용한 이들에게 죽임을 당할 뿐이다. 외과 수간호사(김미경)와 중환자실 수간호사(오나라)는 용팔이 의사 김태현(주원)의 희생과 헌신의 태도와 마음에 경외와 존경심을 갖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일반 간호사인 송간호사(문지인)는 이름도 제대로 불리지 않으며, ‘돈벌레’라며 주원을 흠잡기 바쁘다. 일반 간호사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근무하는지 보여주지 못하며 툴툴거리는 철없이 공상 많은 인물로 등장할 뿐이다. 드라마 ‘디데이’의 의료팀의 주인공은 외과의 이해성(김영광), 정형외과 레지던트 정똘미(정소민), 일반외과 부교수 한우진(하석진), 응급실 실장 강주란(김혜은), 정신과 정문의 김정화(은소율), 병원장 박건(이경영) 등의 의사들이다. 숫자 면에서 절대 부족하며, 박지나는 응급실 간호사이고 김현숙은 노처녀 간호사로 나올 뿐이다. 박지나는 주인공 이해성을 짝사랑하는 존재로 마치 드라마 ‘허준’의 예진 캐릭터와 겹쳐 보인다. 김태현은 재발 상속녀와 결혼을 하고, 이해성은 어린 레지전트 정똘미를 선택한다. 


메디컬 드라마는 의료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메디컬’을 의학이라는 말로 번역해 붙이기도 하지만, 이런 단어는 철저하게 의사들이나 의학자들의 관점이 담겨 있다. ‘의료’(醫療)라고 할 때 현대적으로 그것이 이뤄지는 공간을 ‘병원’(病院)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이 말도 그렇게 썩 좋은 말은 아니다. 질병, 병원균의 ‘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원’(醫療院)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의료가 이뤄지는 공간이고, 그것은 환자치료중심의 공간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과 대응하여 의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의원이라는 개념은 전근대적이라거나 동네치료기관이나 사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하지만 병원은 말 그대로 ‘病源’임을 메르스 사태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병원을 고치는 공간이 아니라 병원균이 많아 질병을 얻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병원을 얻는 공간에서 묵묵하게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단지 의사들만이 아니다. 메르스 사태에서 많은 간호사들이 2차 감염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메디컬 드라마의 주인공은 항상 의사들이고 그들의 삶과 사랑이 중심이지만 메디컬 드라마가 ‘의학드라마’가 아니라 ‘의료드라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간호사들의 역할도 의료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기에 그들도 주인공으로 등장해야 한다. 궁극의 이유는 바로 환자와 맺는 관계성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신 있는 외과의들이 좌절과 장애를 겪는 장면이 빈발하지만 소신과 경험 노하우가 있는 간호사들의 울분과 고통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욱 많다. (간호사가 경험과 지식 노하우가 많으면 의사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의사들이 고생을 하는 장면만 담아내는 것이 의학드라마들의 단골 포맷이지만 간호 인력들의 현실적 어려움도 적극 부각되어야 환자중심의 의료 환경을 환기시키고 현실적인 개선의 계기를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들에서는 박봉에 불합리한 의료체계와 의사결정구조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간호사들의 고통은 오히려 부차적이며, 오히려 의사들의 권위를 높여주는 장치로만 활용되기 일쑤인 것이다. 

보건노조의 자료에 따르면 간호사당 담당환자수 비율은 미국 1:4~5, 일본 1:7인데 한국은 1:15~20이나 된다. 법정 간호인력 준수 병원 비율은 전체 1801개 병원의 13.38%(2012년 기준)에 그쳤다. 이렇게 사람이 적으니 당연히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만두기 쉽다. 2015년 병원노동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9년에 머물렀는데 간호사들은 더 짧아, 7.4년이었다. 근무 연차수가 짧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임금피크제로 고용이 늘어날 수도 없는 지경인 것이다.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국립중앙의료원, 국립대병원,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 적십자혈액원과 적십자병원, 보훈병원 등도 턱없이 부족하며, 오히려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인력감축을 감행한다. 오래 근무한 간호사들에게는 훈장이라도 줘야 할 판이다. 


흔히 메디컬 드라마는 흥행 불패라고 말한다. 물론 드라마 뱀파이어를 다룬 드라마 ‘블러드’(KBS)처럼 아예 독특한 포맷이나 서사를 취하지 않는 바에는 말이다. 그렇게 의학드라마들이 대중적인 주목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환자와 의료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의사들을 선망과 성공의 존재로 부각하기 때문이다. 흔히 환자가 이런 드라마에서 배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에서 의료와 의료 인력들의 분투를 그려내는 것이 메디컬 드라마의 본령이라고 할 때, 이제 간호사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도 나올 때가 되었다. 그것이 누가 더 역할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들을 위한 의료행위가 무엇인지 그 본질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