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말을 못하면 사랑을 못하나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8. 3. 13. 11:48

말을 못하면 사랑을 못하나요?


쉐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농인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욕실에 물을 받아 놓고 그 안에서 자위를 즐긴다. 이런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기에 좀 약간 당황스러움을 보는 이들에게 안길 수 있다. 첫번 째 장면에서는 잘못 봤나 싶다. 두번 이상 반복되면 그때서야 관객들은 자신이 짐작한 내용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된다. 물론 반복적으로 여러번 나온다. 반복이라함은 패턴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그녀의 삶 일상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혼자 욕실에서 자위를 하는 장면은 19금에 해당라는 장면이기 때문에 단지 선정적인 장면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장애를 가진 여성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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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웃은 회사에서 쫓겨난 장년 남성 뿐. 그는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그는 회사에서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을 오래했지만 이제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쫓겨난다. 1960년대 우주개발이 미소간에 이뤄지고 있을 즈음 미국 사회는 이런 미디어 변혁기에 있었고, 많은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기에 있었다. 그는 간간이 집안에서 일감을 하지만 외로움에 시달린다. 그는 농담삼아 섹스를 많이 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그가 발기부전의 상태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엘라이지와 성관계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남자는 발기가 되지 않고, 여성은 성적 욕망이 여전하다. 그렇다면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남자를 찾아야 한다. 이 영화는 기존 장애인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장애의 성적 욕망을 다루고 있다. 대개 성적 욕망을 다룬 영화가 있더라도 그것은 남성 장애인들의 성적 욕망이었다. 특히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자원봉사자들이 풀어주는 문제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녀는 우주개발 기지에서 청소를 한다. 청소를 한다는 것은 남들이 더럽힌 곳을 치우는 행위를 전담하는 청소부를 말한다.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찾는다. 우주 비행에 사용하기 위해 남미에서 데려온 괴생명체. 반은 물고기이고 반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주경쟁에 소련과 대결을 벌이고 있던 미국에서는 그 생명체를 길들이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쉽게 순응하지 않아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여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일라이자는 그 생명체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실험실에서 연민의 정을 느낀 일라이자는 집에사 삶은 계란을 그 생명체에게 주면서 점차 호감을 사랑으로 바꾸어 나간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언어다. 농인 일라이자는 수화로 괴생명체에게 의사 표현을 한다. 계란을 수화로 표현할 때 괴생명체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괴생명체가 영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말이 안통한다고 답답해할 일도 없고 무시할 일도 없다. 일라이자에게 많은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말을 한다. 일라이자의 말을 들을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단짝 친구인 청소원도 쉴새 없이 수다를 떤다. 다른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주의를 주지만 일라이자를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없다. 괴생명체는 일라이자의 표정이나 움직임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쓴다. 일라이자의 친구인 자일스도 때로 수화에 힘들어하고 자신의 일을 우선하는데 비해서 말이다. 일라이자의 말을 그대로 흡수한다.


그런데 우주개발 계획을 서두르기 위해 괴생물체를 해부하기로 한다. 이 때문에 다급해진 일라이자는 자일스를 설득해서 몰래 빼내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자신의 집으로 괴생물체를 끌어온다. 목욕탕에 물을 채우고 소금을 넣어 간신히 살려낸다. 우연히 목욕탕에서 살이 부딪힌 일라이자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고민을 하던 일라이자는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 괴생명체와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혼자 자위를 하던 욕실은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비록 인간이 아닐 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는 존재를 만난 것이다.


일라이자의 직장동료이자 친구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많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을 뿐더러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고 그 말을 통해 통제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소통하기 위한 말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사람이 언어가 없다면 상대방에게 더욱 각별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취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이영화에서는두 존재가 언어에서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인 언어 소통을 부각시킨다.


천마디 말보다 온 몸의 교감이 오히려 마음을 더 잘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욕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찌되었든 혼자 자위를 하는 것보다 비록 괴생물체일지라도 누군가와 상호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그냥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일라이자 역시 괴생물체라는 겉으로 드러난 외모만을 중요시했다면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말못하고 항상 갇혀 있으면서 학대당하고 억압당하는 처지 말이다. 사랑의 시작은 동병상련. 어둡고 음습한 공간이어도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곳의 사람을 찾으라. 븐명 있으리라.

 

글/김헌식(연구자/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