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심리와 의사결정

드라마 'SKY 캐슬'이 진짜라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1. 16. 08:17

-입시문화는 왜 생기고 그들은 왜 사교육에 올인하나



물론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입시 코디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드라마 속 입시 코디는 있을 수 없다. 드라마란 극단화시켜 극적 효과를 꾀하는 법, 재벌가와 강남 대치동이 결합한 것 자체가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국내 대학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는 오히려 해외 대학에 진학해 세계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기 위한 요건으로 진학하거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반영한 대치동이라는 공간도 재벌들이 사는 곳은 아니다. 주거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의사, 변호사, 교수 등의 집단이 사는 곳이다. 공부를 통해 즉 대학 입학을 통해서 부를 자녀에 이르기 까지 증대시키려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강남 사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들의 목적의 최정점은 의대에 있다. 한 점이라도 부족하거나 어긋나면 의대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코디가 필요한 것이다. 여하간 드라마에서는 항상 주로 재벌가를 그려야 주목받는다. 잘 모르지만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재벌가는 관음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벌가의 입시 코디가 결합했다. 


어쨌든 현실을 얼마나 잘 리얼에게 그렸는가와는 별도로 자녀 입시는 전국민의 관심사항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기도 하면서 실제적인 생존이라고 여긴다. 비록 그것이 못다이룬 부모의 대리충족의 시도라고해도 말이다. 어설픈 시대에 부모의 역할이 좌우했던 탓에 더욱 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부모가 된 지 오래다. 자칫 이 드라마 때문에 일부에 불과했던 입시 코디라는 직종이 더 각광(?)받는 직종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컨설턴트와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점이 더 증폭 될 소지는 충분하다. 실체는 잘 모르는 상황에서 본질이 뒤바뀌는 일이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서 얼마든지 벌어져 왔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에 입시 코디를 내세워 이른바 장사를 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서 학부모들을 현혹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이 대목에서 현상의 이유를 분석하지 말고 드라마를 우리는 왜 봐야 하는 것일까라는 가치도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입시에 도움이 될까봐 보는 것은 서로 골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완전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지만 사실 ‘대학 모델’의 작동 동인은 트리클다운이다. 학술 연구는 대중적이지 않은 역할이다. 몇몇 학교와 학과가 선호되니 그것 때문에 비슷한 모델의 대학이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 대학은 더 좋은 취업은 물론 신분상승, 부의 축적과 연결되었다. 소수의 전문직 진출과 달리 대부분은 기업 취직이었다. 한 때는 그러한 점이 한국 경제의 고성장기와 맞물려 효과를 발휘한 적도 있다. 가족문화는 입시문화였다. 가족은 물론 가문의 명운이 이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고성장기도 아니고, 무조건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취업이 정해지는 시대도 아니다. 좋은 일자리 수는 더욱 적어지게 되고 그 자리를 두고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 지는 알 수가 없다. 더욱 입시에 도움이 될만 한 것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심지어 드라마도 보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니, 근원적으로 한국에는 대학이 많을 뿐더러 사립대학이 너무 많다. 대학생의 거의 80% 가까이가 사립대학에 다닌다. 사립 대학은 등록금이 당연히 비싸다. 이 때문에 학생은 물론 학부모의 사정을 어렵게 한다. 이는 저출산을 유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이기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는 사립대학이 거의 없다. 프랑스 등은 평준화되었다. 스위스는 각 지역마다 공립대학이 하나 있을 뿐이다. 75%는 대학을 가지 않는다. 25%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이른바 대학은 갈 사람만 간다. 진로는 일찍부터 정해지기 때문에 가용자원이 소모적인 것이 덜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개인이나 나라 전체가 사는 길은 이러한 불합리한 모순 구조를 깨어야 한다. 초기부터 셋팅이 잘못 된 것을 바로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겠지만 대부분은 들러리에 불과하고 개인과 사회 전체가 착취당하고 노예화 되는 현상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중간의 귀한 가치들이 전혀 그렇지 않는 이들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밴드웨건 효과는 이제 그쳐야할 때는 이미 지났다. 


대학에 당연히 가야 하는 문화도 미래에는 바꾸어야 산다. 이미 대학 자체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문화는 대기업 나아가 재벌 시스템에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드라마 속 재벌가는 국내 대학에 연연하지도 않기 때문에 트리클 다운은 시작되었으니 정말 위기는 사립대학들일 것이다. 먼 미래는 아니기 때문에 공공정책이 과연 그럼 어디에 모아지고 확충되어야 하는가는 이미 자명한 일이다.    


글/김헌식(카이스트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박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