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핵무기만 중요해?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0. 27. 23:46

드라마 ‘아이리스’에 비친 한국인의 핵무기 열망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두고 어차피 같은 민족끼리인데 우리 것 아니냐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비핵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450만부 이상 팔린 것을 생각하면 그 심연의 대중 심리를 간과할 수만은 없다.

사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많은 판매부수에도 불구하고 문단에서는 찬밥이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또한 고 이휘소박사의 존재를 널리 알리게 된 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이휘소 박사를 다룬 다를 저작을 표절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간 항간에 파다한 이야기를 이 소설이 폭발적으로 홍보한 셈이었다.

그 내용은 박정희 시대의 핵개발이다. 하지만 못 다 이룬 꿈이었다. 핵무기 개발을 돕다가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무궁화 꽃은 피어나지 못했다. 이휘소에 관한 관심은 지속적이었다. 고은의 시집 '만인보'에도 이휘소는 들어 있다. 그에 관한 책으로 강주상의 '이휘소 평전', 공석하의 '소설 이휘소', 이용포의 '이휘소' 등이 있다.

어린이 위인전도 여러 권 있다. 하지만 이휘소 박사는 입자물리학이 전공이었지 핵무기 개발과는 관계없다는 것이 유족들의 기본적인 입장이고, 이 때문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저자 김진명은 유족들에게서 고소를 당한다.

중요한 것은 이휘소 박사가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참여했는가가 아니라 천재적인 학자가 외세에 꺾여 개발을 못했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구조이며 그것에 투영된 한국인의 심리다. 어쨌든 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한국인들의 열망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못 다 이룬 핵개발에 대한 열망은 다른 문화콘텐츠에서 지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대중적 주목을 받고 있는 드라마 '아이리스'에도 핵무기 중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등장한다. 그 같은 열망은 담겨 있다. 최승희(김태희)의 연인 김현준(이병헌)은 청와대에 가보고서 언젠가 자신이 그곳에 와 본 적이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그의 부모님이 자신이 일곱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핵물리학을 전공한 분들이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된다.

이럴 때 시청자들은 김현준의 부모가 이휘소 박사를 모델로 했음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김현준은 7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삭제 당한 채 고아원에서 자랐고, 어느새 비밀요원이 된 것이다. 물론 현실과는 다른 일이다. 드라마에서 대통령은 1970년대 중단된 핵무기 기술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 기술을 얻으려 한다. NSS(국가안전국)의 부국장은 1970년대 핵무기 기술의 행방을 알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렇게 핵무기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한참인 가운데, 핵무기에 대한 열망이라는 한국인들의 무의식을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다. 원자력에 대한 높은 기술과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은 핵무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만약 한국이 그때 핵무기를 개발했더라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무의식이 한국인들을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핵이 지니는 위험성도 간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외세에 맞서 강소국이 되려는 한국인의 심리를 이해못하는 이들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핵을 보유하는 것이 동북아에서 어떤 역학구도를 만들게 될 지 다 아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아이리스'는 앞으로 핵무기의 향방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연 아이리스 대신에 무궁화 꽃은 필 수 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핵이 아닐 것이다.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파키스탄 출신 압두스 살람은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 년 앞당긴 천재였고, 나 보다 그가 상을 받아야 했는데 부끄럽다"고 했다. 199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헤라르뒤스 엇호프트는 "내가 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양자역학에 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휘소 박사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나라의 힘을 기르는 것은 핵 그 자체가 역시 과학 입국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핵이 아니라 핵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이다. 어디선가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와 연구원들이 정치인이나 첩보원도 더 소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