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테크놀로지

나쁜 기억만 지우는 기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4. 7. 07:22

아픈 기억만 골라서 지울 수 있을까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현실로

2014년 04월 04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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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콘텐츠에서 주로 사용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에서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평범하고 착한 남자 주인공인 조엘은 따뜻한 여자 주인공인 클레멘타인을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성격에 이끌려 사귀게 되지만 성격차로 인해 점차 지쳐가고, 어느 날 심한 말다툼 후 조엘은 기억을 지우고 싶어한다.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회사를 찾아가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신경과 치료를 통해 나쁜 기억만 선택해서 지울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이전까지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지만, 2013년 12월 ‘Nature Neruscience’를 통해 발표된 네덜란드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나쁜 기억만 선택해서 지우는 것이 전혀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한 남자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제로 기억을 지우는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0 Universal Studios Home Entertainment

표적지향적 치료를 통해 우울증 환자의 특정 기억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세탁물에 묻은 오염물을 부분세탁을 통해 지우는 것처럼 말이다. 네덜라드 네이메헌 라드바우드 대학교의 마린 크로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연구 결과이다. 

연구팀은 중증 우울증으로 진단받아 전기경련요법을 처방받은 환자 42명을 대상으로 재강화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기로 했다. 먼저 환자들에게 두 편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한 편은 자동차 사고 장면이며, 또 다른 한 편은 물리적 폭력이 행사되는 장면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연구진은 환자들에게 두 편의 동영상 중 하나의 일부분을 보여주며 그 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전기경련요법을 이용하여 환자들의 기억을 공략했다. 전기경련요법을 치료받은 지 하루가 지난 후, 연구진은 객관식 문제로 기억력을 테스트 했다. 

그 결과, 한 번만 시청했던 동영상은 잘 기억했지만 두 번째로 시청했던 동영상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기충격요법을 받은 지 90분 후에 실시된 기억력 테스트에서는 두 번째로 시청했던 동영상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기경련요법이 기억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재강화 과정을 잠시 차단한다는 것을 뜻하며, 타이밍 상으로 볼 때 나쁜 기억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번 연구에서 제시된 내용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탐닉, 강박장애와 관련된 기억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 이러한 기억이 영구적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데 성공하기도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반대로 가짜 기억을 주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와 미국 MIT가 공동으로 설립한 신경회로유전학센터 연구진은 2013년 7월 쥐의 해마에 가짜 기억을 심는 데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마는 뇌에서 학습과 기억 등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쉽게 말해서 쥐가 실제와는 다른 기억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광(光)유전학을 이용하여 가짜 기억을 만든 것이다. 빛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냈고, 이를 이용하여 뇌의 활동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생후 8~14주 된 유전자 조작 쥐와 크기 및 재질이 다른 상자 여러 개를 준비한 뒤 먼저 쥐를 아무런 장치가 없는 상자 A에 넣고 환경을 기억하도록 했다. 다음 이 쥐를 꺼내 바닥에 금속판이 깔린 상자 B에 넣고 전기를 흘려 쇼크를 줬다. 

이때 쥐의 뇌에 삽입한 광섬유로 레이저를 쏘아 상자 A의 기억이 저장된 세포를 활성화시켰다. 쥐가 상자 B에서 받은 고통을 상자 A에서 있었던 일로 기억하게 한 것이다. 뇌의 기억은 몸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상자 B에서 쥐를 꺼내 안전한 곳에 뒀다 다시 상자 A에 넣자, 쥐의 활동이 급격히 둔해졌다. 전기쇼크를 받았다는 가짜 기억으로 인해 공포에 질린 것이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그리고 왜 잘못된 기억을 갖게 되는지 알게 해주었다. 

유아시절 기억, 몇 살때부터 잊어버리게 될까

기억은 자라면서 새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람들은 어렸을 때의 일을 몇 살때까지 기억할까. 기존의 설명은 유아기 때는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신경조직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허핑턴 포스트를 통해 지난 1월 말 보도되었으며, 이 연구는 ‘기억’(Memory) 저널에 실렸다. 이번 연구는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진행했다. 연구팀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몇 살 때부터 잃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83명의 아이들을 3살 때부터 6년에 걸쳐 관찰한 것이다. 

아이들이 3살 때 이들의 부모들로 하여금 아이들이 겪은 6가지의 일에 대해 물어보도록 했다. 예를 들면 동물원에 간 것이라든가, 아이의 생일날 파티를 한 것이라든가 등이었다. 연구팀은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 더욱 기억을 잘 되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 후 아이들을 총 5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각각 5,6,7,8,9세가 됐을 때 3살 때의 기억을 유지하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아이들은 7세 때까지는 3살 때 기억했던 것의 63~72%를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8세와 9세 때에는 단지 35%만 유지됐다. 

즉 대체로 8세 무렵부터 유아기 때의 기억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5~7세 사이에도 3세 때의 일에 대한 기억은 이미 서서히 흐릿해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억은 다양한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모든 기억이 통째로 저장되지 않고 조각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효율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키워드 중심으로 분배했다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끄집어내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기억은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가 재구성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기억의 진실성이 어떻든, 지금 이 순간 괴로움을 경험하기 싫어 기억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기억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다. 

전기경련요법 : ETC. Electroconvulsive Theraoy. 전기충격요법(electroshock therapy)라고도 불린다. 두피에 부착한 전극판(electrode pads)을 이용하여 뇌에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써 경련을 유발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재강화이론 : memory reconsolidation theory.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은 저장장치에서 인출되어 읽혀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뇌회로에 겹쳐쓰기(re-writing) 방식으로 되돌려진다는 이론.


이슬기 객원기자 | justice0527@hanmail.net

저작권자 2014.04.0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