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국가 만들기

김수현을 둘러싼 한국적인 문화적 정서법. 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5. 3. 25. 00:10

글/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 교수,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권리를 위한 투쟁(Der Kampf ums Recht)’으로 유명한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1884312일 빈 법률가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초고 제목은 법 감정의 형성에 관하여. 그는 기존 법체계나 판결에 따른 처벌에 관해 다른 견해나 생각이 있을 때 항거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봤다. ‘법 감정’(Rechtsgefuhl)은 법에 대해 갖는 국민의 마음 작용을 말한다. 감정과 정서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정서’(emotion)감정’(feeling)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감정은 집중적이며 즉각적인 반응이고 정서는 전체적이고 지속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두 개념의 결정적인 차이는 감정은 생각이 덜 개입하는 본능의 영역이 강하다면 정서는 생각이 더 미칠수록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타당하지 않을 때 감정은 분노로 쉽게 드러나고 정서는 희로애락의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한다. 사실 법 감정보다는 법 정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법 감정(정서)을 사회 통념(A common sense in the society)이라고 하거나 합법적 마음’(legal mind)이라는 용어와 밀접하다. 법리적으로는 타당해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적절하지 못하게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매우 중요한 대중문화계에선 법리보다는 이런 국민 정서와 감정, 통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여기에선 이를 문화적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마다 사회적 통념이 다 다르고, 이는 문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대로 모든 걸 해결하거나 개인주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문화권과 그렇지 않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보이는 법 정서나 리걸 마인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법적인 부분, 절차상의 형식주의를 강조하며 문제없음을 강조할 때 역풍이 불 수 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해야 할 쪽이라면 이를 간과하면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이는 김수현 논란 사례에서 드러났다. 사태가 악화한 이유는 무엇에 많은 이들이 공분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문화적 정서법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김수현이 김새론과 연인관계였고, 김새론의 소속사도 김수현 자신의 신생 기획사로 이적하게 했는데 정작 김새론에게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오히려 치명적으로 타격을 가한 것이라는 도식이 사람들에게 형성되었다. 여기에 이른바 한국적인 문화적 정서가 작용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수현 측은 연인관계는 부정하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법리적인 부분을 크게 강조했다. 김수현은 김새론의 변제를 위해 먼저 대신 7억 원을 냈고, 나중에 20231231일까지 갚기로 각서를 썼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아 2024315일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했다. 7억 원을 되돌려 받지 못하면 배임이 되기 때문에 소속사 차원에서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수현은 이런 사실을 계속 항변하며 김새론을 외면하지도 않고 압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국적인 문화적 정서법이 작동하게 만드는 소지가 있었다. 김수현 축은 법무 법인을 통해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이행하지 않을 시 민·형사 소송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김새론은 민/형사 소송이라는 말이 매우 충격과 부담을 느꼈고 이에 대해서 김수현에게 문자로 절박하게 표현했다. “오빠 나 새론이야. 내용증명서 받았어. 소송 한다고···. 나한테 시간을 넉넉히 주겠다고 해서 열심히 복귀 준비도 하고 있고, 매 작품 몇 퍼센트씩이라고 차근차근 갚아나갈게. 안 갚겠다는 소리가 아니고, 당장 7억 원을 달라고 하면 정말 할 수가 없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건데, 꼭 소송까지 가야만 할까. 나 좀 살려줘. 부탁할게. 시간을 주라."

 

이런 김새론의 문자에 김수현 측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일단 김수현은 김새론의 문자에 대해 반응하지 않았다. 더구나 알려진 바로는 유족 측의 견해에 따를 때 2차 내용증명을 보냈다. 응답이 없는 대신 2차 법적 조치 예고만 보냈다면 더욱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고, 너무 냉혹한 태도로 보인다. 이에 대해 김수현은 문자에 대응하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비전문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법무 법인을 통해 소속사 차원의 처리를 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형식적인 사무와 법의 논리를 강조하는 태도인데 이는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게 보는 대응 유형이다.

무엇보다 유족 측에 따르면 김새론은 신생 기획사였던 골드메달리스트로 이적하면서 창업 멤버로 무급으로 지분도 없이 열심히 일했던 김새론은 음주운전 사고 이후 재계약도 받지 못했고, 그 대신 법무 법인 명의의 내용증명만 왔으며 당사자인 김수현은 사라졌다. 믿었던 이에 대한 실망감은 삶 자체를 놓아 버릴 수 있게 하니 이런 행보에 대해서 사람들이 정서상 좋게 생각할 리 없다. 한류스타인 김수현이 개인적으로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사무적으로 처리를 하는 게 맞는지 인간적으로 용인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대중스타는 인간미가 좌우하는데 이와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더해 연인관계였는데 말이다. 더구나 그냥 연인관계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미성년자 그루밍 의혹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국적인 문화적 정서법을 건드린 것이 미성년 여성과 성년 남성의 연예 프레임이었다. 미성년자였던 2015년부터 만 15세 중학교 3학년 김새론과 사귀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이고 일찍부터 있었고, 그 주장은 김새론이 남긴 메모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행법으로는 스킨쉽만 해도 범죄가 성립되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신뢰를 잃었다. 김수현은 처음에 김새론과 사귄 적이 없는 것으로 부정했는데, 유족 측이 사진 등의 증거를 폭로하자 말이 바뀌었다. 대중 스타에게 중요한 신뢰의 상실이었다. 핵심 쟁점이 미성년 김새론과 연인관계였는지에 대해서 성인 이후 1년을 사귀었다고 했으나 이미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지금으로서는 여러 정황 증거 자체가 미성년 연애가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관련 법의 미비였던 시점이라 법적 처벌은 어려워도 도덕적 윤리적으로 용인하기 힘들다. 만약 사실이라면 2015년의 일이라 현행법으로 처벌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문화적 정서법이 작동한다. 가장 주목할 점은 문화적 정서법 차원에서 미성년이냐, 성인이냐를 넘어서 한때 연인이었고, 같이 소속사를 일군 어린 여성을 매몰차고 가혹하게 대한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고 있는 대중적인 정서다. 이러한 때일수록 법적 논리적 대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유족 측에게 사과하고 국민의 성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다만, 문화적 정서법이 적용되어야 하지 대중적 감정법이 적용되면 곤란하다. 특히, 분노 중독에 빠지면 여러 사람에게 힘들다. '분노 중독이라 책에서 영문학자 겸 정신분석학자 조시 코언이 분노의 본질을 탐구하며 분노를 반복적으로 터트리며 쾌감에 빠지는 현상에 경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악플은 물론 무차별적인 분노 표출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분풀이 방식에 집중하다 못해 집착하는 것은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지 못할뿐더러 공정하지 않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버릴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김수현에게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