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금화의 언니는 왜 신이 되었을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3. 14. 11:43

-영화 사바하에 비친 현대인의 존재감


            김헌식(문화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박경리 토지 문화관 외래교수)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그 분별이 힘든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맥락과 함의 아니 인생의 은유일지 모른다.


금화’(이재인)는 다리가 불편한 채로 태어난다. 다리가 불편한 이유는 같은 배안에 있던 쌍둥이 언니 때문이다. 쌍둥이 언니가 금화의 다리를 긁어 먹었던 것이다. 시골집에서 아이를 받아내던 시골 어르신들은 곧 그것들은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리를 온전하게 쓸 수 없었던 금화는 움직일 때마다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니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공존하고 집은 벗어나야할 공간으로 보인다. 비록 창고에 갇혀 지낸 쌍둥이 언니지만, 짐승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살고 있지만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았다. 어떤 살아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사바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생각하지도 못한 운명이 이미 배태되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러한 것일까. 이름조차 갖지 못했던 언니는 사이비 교주 김제석(유지태)의 종말을 이끌어낼 대척점의 인물이었다. 티벳 승려를 통해 자신을 멸한 존재의 도래를 알게 된 김제석은 이를 막기 위해 많은 소녀들을 죽게 만든다. 정나한(박정민)도 바로 그 소녀들을 살해하는 역을 맡게 된다. 막상 금화를 죽이려 하다가 쌍둥이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된다. 금화의 집으로 간 창고에서 정나한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고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했던 존재가 결국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에서 정말 무엇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를 따지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다. 오컬트 영화 취향에서 요구하는 그러한 그럴 개연성만 갖추면 메타포로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금화가 김제석을 멸할 존재인 것처럼 보여졌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에 빙의했던 금화의 언니는 비록 나름의 생의 목적이 있던 존재였다. 아무리 보기에 낯설고 친근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진짜는 무엇이고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인가, 선과 악은 상대적으로 분별하기 힘들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영화의 내용 가운데 언급되어 있는 불가에서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는 특정 종교의 교리에만 해당되는 것일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비교 대상 속에서 무기력과 비하 속에 살아가는 구조에 처하게되었다. 잉여인가, 익명속에서 불안정한 존재로 처리되는 것일까. 취직이 안되거나 아예 배제되고 일찍부터 방출되는, 그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지금 현재  얼핏 남에게 해를 주고 모습이 평편없이 보인다고 해도 뭔가 사회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존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