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 ⓒ주피터필름영화
영화 ‘대호’의 제작비는 170억 원이었다. 손익분기점은 600만이었다. 그러나 관객수는 200만에 못 미쳤을 뿐이었다. 이런 결과는 흥행스타로 확고하게 보였던 배우 최민식의 이미지를 구겼다. 무엇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제작사의 손실은 21억 원이었다.
영화 ‘도리화가’는 95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지만, 영화를 본 관객은 31만 명에 불과했다. 손익분기점은 260만 명이었다. 관객동원 기록은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류승룡과 수지의 지명도에 비한다면 충격적이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은 제작비 120억 원이 들었고, 관객 수는 43만 명이었다. 손익분기점 350만 명에는 한참 부족했다. 하반기에 영화 ‘내부자들’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배우 이병헌은 스캔들과 영화 참패로 이제 끝인가 싶었다.
새삼 2013년 가을 개봉한 영화 ‘관상’이 소송 전에 휘말렸다. 애초에 소송은 영화 ‘관상’의 감독이 흥행 시 받기로 한 1억 8000만원을 달라고 한데서 비롯했다. 이 영화는 9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이른바 대박 영화의 반열에 오르고 제작사는 44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감독에게 흥행 보너스를 주지 않은 것일까. 바로 제작비가 초과했다는 것. 그렇다면 초과제작비가 수익을 넘어섰다는 말일까. 애초에 4~5개월 제작기간이 7개월로 늘어나면서 초과제작비가 15억 5천만 원 발생했다는 것. 법원은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무리 제작비가 넘어섰어도 지급하기로 한 액수에 대해서는 지불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더구나 흥행수익이 수십억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제작사는 소송장을 냈다. 억울하다는 것. 애초에 제작기간을 준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2~3개월 늦어진 것은 감독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에 영화 제작사는 소송을 통해 한재림 감독에게 8억 원의 비용을 청구했다. 이 금액은 초과 비용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제작비에 관계있는 이들은 제작사 외에도 투자배급사가 있다. 영화 ‘관상’의 투자배급사는 쇼박스다. 더구나 제작기간 가운데 영화 제작사는 촬영기간을 지키라고 강조했고,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이러한 간섭을 제어했던 상황이라고 알려졌다.
쇼박스는 2015년에 영화 ‘암살’과 ‘내부자들’, 그리고 ‘사도’를 투자 배급했다. 모두 흥행작들이다. 영화 ‘강남1970’은 219만명 ‘조선명탐정:놉의 딸’ 387만명, ‘극비수사’ 286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을 넘겨 모두 손해 보지는 않았다. 쇼박스의 이런 흥행작 제조 비결은 만족할만한 품질이 나올 때까지 장기 계약을 한다는 점이라고 이 회사의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한 바가 있다.
이런 면은 결국 영화 '관상'에서 왜 투자 배급사 쇼박스가 감독 편을 들었는지 짐작을 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질을 중요시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기간의 진행이 늦어질수록 발생하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 비용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따져야 하는 일이 생긴다.
초과 발생 비용 15억 5천만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감독이 책임져야 한다면, 제작사와 투자배급사가 책임져야할 비용은 형평성 기준의 관점에서 맞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억울하거나 분통이 터질만한 일이 될 지 모르겠다. 제작비의 대부분을 자신들이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즉, 투자 배급사에게는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에게 전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투자배급사에서 감독의 진행을 인정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손해를 끼치기 위해 제작 일정을 늦춘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제작 일정이 늘어날 것을 생각해 준수 계약을 맺었다면, 그것은 실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감독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적절했다. 물론 감독에게는 합당하고 이유 있는 촬영 지연의 소명은 의무적이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제작비를 들이고도 흥행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흥행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나눠 먹을 콩 한쪽도 없다. 한국 영화 10편 중 3편 정도만이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일 우선은 관객들의 기호에 부합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더구나 흥행수익이 많이 났는데도 감독에게 응당 주어야 할 흥행보너스를 주지 않으려 했다가 법원의 판결 뒤 다시 초과 제작비를 청구하는 것은 모양새로나 명분상으로 얻을 실익이 없다. 부당한 진행 스케줄이 증명이 되어야 하지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을 법원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은 예술창작의 과정을 상품공정으로 만들어 놓은 일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자충수였다.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제작단계에서 제작사, 투자 배급사, 감독이 상호 합의를 하고 진행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만약, 법원이 제작사의 편을 들어준다고 해도 영화 제작 환경에 그렇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제작비를 준수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영화나 흥행 영화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상업 영화는 대중흥행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매우 크다. 그 리스크를 제작사나 투자배급사가 감독에게 전가한다고 해서 그 근본적인 리스크가 해소될 수는 없는 점이다. 정책 비용도 그렇지만 특히 콘텐츠의 창작의 영역에서는 가외 비용이 필수불가결하다. 가외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최대화 할수록 그 결과물이 형편 없어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애초에 추가 제작비 발생이 잦은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연출계약을 맺었다면, 그것은 제작 투자배급사가 감내할 몫이 크다. 그런 성향을 감내하려 한 것은 그 연출자의 능력을 산 것이기 때문이다. 그 능력을 산 것이라면 책임의 귀책은 선택한 이들에게 더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제작비의 추가 발생은 관련 주체들의 상호 협의를 통해 객관적인 책임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쨌든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만 영화 '관상'은 그 반대의 경우를 보여주어 씁쓸한 일이었다. 문화콘텐츠계에서는 오히려 곳간이 채워질수록 분란이 더 일어난다. 그럴수록 건설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이 되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