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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포왕'의 한 장면. |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경찰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의 상품화
화제의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마지막회에서 박수하(이종석)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경찰대학교 시험을 본다. 면접관들은 박수하에게 왜 경찰이 되려고 하는지 묻는다.
"복수에 눈이 멀어 비슷한 선택을 할 뻔 했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짐승처럼 지낼지도 모른다. 어이없을 정도로 속물이고 예의도 없고 겸손 없는 사람이었지만 진실을 위해 싸우기 시작하고 변했다. 그 모습이 어둠 속의 길이 되어줬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나는 여기에 오지 못했다."
유추하자면 박수하는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되려고 경찰이 되려는 것이겠다. 경찰대학제복을 입은 박수하는 장혜성(이보영) 앞에 나타나 거수경례를 하고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사실 박수하에게 던져진 면접관들의 질문은 잘못되었다. 왜 경찰이 되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왜 경찰대학에 지원했는가여야 했다. 경찰이 되는 방법은 경찰대가 아니어도 되니 말이다.
개봉 25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감시자들'에도 경찰대 출신의 감식반 신입 형사 하윤주(한효주)가 등장한다.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천부적인 기억력과 관찰력을 지니고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적인 수사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론 신입이지만 경찰대 출신이므로 계급은 경위다. 드라마와 영화엔 많은 경찰이 등장하고 주요 인물은 경찰대 출신이며 그 캐릭터들은 모두 판타지 속 이미지로 세상을 지배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 경찰대 출신 캐릭터들
MBC 새 수목드라마 '투윅스'에서 경찰대 출신의 형사 임승우(류수영)는 검거율 1위를 자랑하는 엘리트 형사로 나온다. 주연 연기자 류수영은 거친 형사이기를 바랐다고 했다. 대개 영상 속에서 거친 형사와 경찰대 출신은 거리가 멀다.
SBS '유령'에서 김우현(소지섭)은 고위 경찰 간부의 외아들로 경찰대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생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지략으로 사이버수사대 구축의 핵심브레인이다. 여주인공 유강미(이연희)는 경찰대 얼짱 출신으로 미모를 내뿜지만 차가운 행동으로 일관한다. 지성과 엘리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속으로는 덜렁거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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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시자들'의 한 장면. |
JTBC '러브 어게인'의 강력계 형사 서영욱(류정한)은 경찰대 출신으로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경찰관이지만 그러한 점 때문에 십 수 년 째 경위에 머물고 있다. 첫사랑에 설레고, 순수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JTBC '무정도시'는 마약 조직 해체를 위해 분투하는 경찰과 거대 마약 조직의 대결이 중심인데, 주요 인물들은 경찰대를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드라마에서 경찰대에 들어가는 여주인공의 동선이 중심에 있듯이 영화에서는 '감시자들'처럼 여성이 경찰대 출신으로 부각되고 있다.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처럼 한동안 유행했던 여경은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블라인드'에서 수아(김하늘)는 경찰대 출신으로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지만 시력 외의 감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여기에 추리력과 논리적 능력은 능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경찰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영화 '용서는 없다'에서 경험은 부족하지만 명석한 젊은 여형사 민서영(한혜진)도 경찰대 출신이었다.
전통적으로 비 경찰대 출신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이미지를 대중적으로 각인 시킨 박두만(송강호)에서 스핀오프 했다. 서태윤(김상경)은 서울 형사로 과학적 수사를 강조하고, 박두만은 시골 형사로 발과 감을 중요시한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최철기(황정민)는 연거푸 승진에서 누락되면서 부당한 거래를 한다. 승진을 대가로 하지 말아야할 거래를 한 그의 최후는 비극적이다. 최철기는 경찰대에 치이고 검사에 치이는 이른바 낀 경찰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합리적이거나 신사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거칠고 비윤리적인 육식남의 이미지다. 엘리트나 교양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영화 '체포왕'에서 마포서 강력팀장 황재성(박중훈)은 반칙계의 명수로 불린다. 승진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경찰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로 양복을 항상 착용하고 과학적 수사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엘리트나 합리성의 이미지 반대편에 있다. 그는 이혼해 혼자 살고 딸은 그를 무시한다.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경찰대 출신 형사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경찰대 출신의 또 다른 강력계 팀장 역할을 맡았던 이선균은 시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영화에서 경찰대 출신으로 나오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 경찰대 출신 형사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왜 이런 사과까지 해야 했을까. 그가 맡은 캐릭터가 경찰대 출신은 능력자이며 엘리트이고 과학적 논리적 합리적이라는 특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이 반드시 매우 뛰어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사법ㆍ입법ㆍ행정고시를 전부 합격한 경찰대 출신의 입법조사관이 여자 화장실 몰카를 찍다가 걸리기도 했다.
경찰대의 이미지 VS 비경찰대의 이미지
MBC '좋은 사람'의 경찰대 출신 형사반장 박준필이나 영화 '마이 뉴 파트너'의 강영준(조한선)처럼 경찰대 출신은 엘리트 합리적 과학적이라는 이미지가 작동한다. 그들은 능력자이며 스마트한 이미지를 대개 갖고 있다. 비상한 전략이나 지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최근의 경향은 한효주나 김하늘처럼 신비한 능력까지 갖고 있다. 비경찰대 출신은 비합리적 비과학적이고 반엘리트 정서가 강하다. 그들은 육감과 거친 활동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때로는 겁박과 폭력, 위압을 불사한다.
때로는 '부당거래'나 '체포왕'처럼 비경찰대 출신의 문제도 다루지만 결국 그 고정된 이미지는 잘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경찰대 출신은 매우 우월한 능력의 소유자이면서 모든 수사 현상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일수록 강하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어야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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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 |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경찰대 출신이라고 해서 실무현장에서 과학적 합리적으로 성과를 내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경찰대 출신이 엘리트 이미지를 갖거나 과학적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비경찰대 출신도 지적이고 교양과 이성의 행태들을 충분히 보일 수 있다. 그들이 엘리트가 아니라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경찰대가 아니면 비엘리트라는 도식 자체가 잘못이며 이는 대중매체에서 지양해야 할 점이다.
경찰대는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경찰대 출신들이 국민들에게 똑똑한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드라마와 영화는 한 몫을 톡톡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는 반감이 상당한 것이 오래되었다. 경찰대 출신들이 그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위 고위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4년 학부를 졸업하고 경위에 임관되는 것도 항상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1학년 순경, 2학년 경장, 3학년 경사, 4학년 경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경위 이하가 92.8%이라는 경찰 내부 자료를 통해서 보듯이 이는 지나치게 높은 직위다. 이는 수많은 현장경험과 해결사례를 남긴다 해도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경찰대 출신보다 뒤질 수밖에 없는 구조는 사기저하는 물론 동기 부여 면에서 장애를 갖게 된다.
특히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형사 역에 경찰대 출신들이 등장한다. 흥미를 극적으로 돋우기 위한 캐릭터 장치에 치중하는 것이다. 실제로 형사업무는 격무에 승진의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고, 오히려 중요한 사안일 경우 격무에 시달리다가 비난받을 가능성이 많다. 이는 오히려 승진에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출세를 바란다면 지원하지 않는 것이 통념이다.
더군다나 형사 업무에는 합리ㆍ이성ㆍ과학보다 현장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다. 경찰대 과정의 역량은 이제 변화된 환경을 따라잡을 수 없다. 대학은 전공에 대한 교양인을 육성하는 곳이다. 각 대학은 오래전부터 대학원 중심으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석ㆍ박사가 넘쳐나고 있다. 경찰 인력의 90% 이상이 대졸 이상 학력자들이다. 경찰의 전문성과 연구 역량은 학부가 아니라 석ㆍ박사 과정에서 나온다. 요즘의 과학수사는 따로 전문적인 대학원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는 비경찰대 출신도 많이 받고 있다.
대중문화는 왜 수사관 개인의 초월적 능력만을 강조할까
수사는 혼자서 천재적인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협업과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경찰대는 고등학교 성적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에 전투적인 입시교육을 감내하는 한국교육의 병폐를 그대로 담고 있다. 하위직부터 실무적인 경험으로 차근차근 밟고 교육을 이수한다면, 자연스럽게 지위를 얻는 것이 공정한 사회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은 것은 이런 중간 새치기가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대국민 서비스 조직이다. 그 서비스를 얼마나 했는가에 따라 승진이 주어져야 한다. 경찰대학 4년 동안 어떤 대국민 기여를 했기에 경위로 진급하는지 알 수 없다. 경찰대와 같이 고등학교 성적이나 입시 성적이 그러한 지위를 우월하게 확보해주는 방식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그런 방식은 가용인력이 없어 상징적 효과로 조직을 대외적으로 장식하던 과거 시대의 낡은 방식이다.
더구나 대중매체에서 경찰대 출신 수사관들을 그리듯이 혼자 능력이 출중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엘리트주의는 실제 현실에서는 장애가 될 뿐이다. 그들은 결국 현장이 아니라 상위직으로 러시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상위로 향하는 집중은 결국 이론적 추상화에 몰입하게 한다. 이러한 모순 구조를 지적하지 않고 그 후광에 의지하여 안일하게 모순을 감추는 미디어의 모습은 식상하게 된 지 오래다. 그러니 갈수록 경찰대 출신의 캐릭터에 이상한 초인적인 능력을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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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